편집자주
새로운 '먹거리 산업'으로 거론되지만, 불확실성도 여전한 한국 바이오 산업. 바이오 분야 '1호 교수 창업자'이자, 지난 27년간 글로벌 수준의 과제에서 성패와 영욕을 경험한 김선영 교수가 우리 산업 생태계의 이슈와 문제점을 진단하고 세계 진출 방안을 모색한다.
신약개발과 스타트업 - 미국 사례(1)
제넨텍, 바이오 창업의 원조
시장 패러다임까지 바꾸며
창업 모델과 벤처 역할 제시
![인류역사에서 최초의 유전공학 의약품으로 기록된 제넨텍이 개발한 인슐린. 대량생산은 릴리사가 맡았다. 김선영 교수 제공](https://newsimg-hams.hankookilbo.com/2025/02/12/6c8f16d0-8138-4fb1-8140-afca8eb2be89.jpg)
인류역사에서 최초의 유전공학 의약품으로 기록된 제넨텍이 개발한 인슐린. 대량생산은 릴리사가 맡았다. 김선영 교수 제공
지난 번 글에서 의약의 경제적 가치를 다뤘다. 그랬더니 독자들이 그런 고부가 의약을 만들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무엇인지를 물어왔다. 신약 개발의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의 사례를 본다면 스타트업과 벤처기업을 활성화 시키고 이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지난 50여년 동안 바이오 산업에서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꾸거나 거대한 규모의 시장을 새롭게 만들어 낼 정도로 임팩트를 줬던 과학적 발견이나 발명은 거의 모두 대학에서 나왔고, 이를 시장에 적용하기 위한 실험적 시도와 상용화 개발은 대부분 스타트업을 통해 이루어졌다.
스타트업은 과학자, '앙트레프레뉴어', 자본이 합작하여 시작된다. 여기서 굳이 기업가라는 표현 대신 '앙트레프레뉴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뭘까. 이들은 혁신을 통해 새로운 길을 개척하며 도전과 리스크 감수를 기꺼이 선택한다는 점에서 일반 사업가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바이오의약의 시대를 연 미국의 '제넨텍'은 가히 바이테크의 시조라 할 수 있다. 1973년 전후 스탠포드 대학교와 캘리포니아 주립대(UCSF) 연구진들은 유전자 즉 DNA를 자르고, 그 자리에 다른 유전자를 넣은 후, 이를 박테리아에 집어넣어, 새로 삽입한 유전자가 실제로 기능할 수 있음을 밝혔다. 하지만 이는 대학 실험실 수준의 초보적 기술이었다. 이를 이용하여 새로운 의약을 만들수 있는 것을 증명하며 바이오산업이라는 새로운 장르와 거대 시장을 창출한 "게임 체인저"는 스타트업으로 출발한 제넨텍이었다.
![제넨텍 설립자인 허버트 보이어 교수(좌)와 로버트 스완슨(우). 김선영 교수 제공](https://newsimg-hams.hankookilbo.com/2025/02/12/a15166e4-347e-478d-a979-0f5276d0a684.jpg)
제넨텍 설립자인 허버트 보이어 교수(좌)와 로버트 스완슨(우). 김선영 교수 제공
로버트 스완슨은 MIT에서 화학(학사), 경영관리(석사)를 공부한 후 1970년부터 뉴욕의 벤처투자(VC)사에서 일했다. 1975년에는 샌프란시스코의 다른 벤처사로 자리를 옮겼는데, 인근 대학의 교수들이 개발한 유전공학 기술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1976년 1월 17일, 29세의 스완슨은 핵심 연구자였던 UCSF의 허버트 보이어 교수와 10분 미팅을 가질 예정이었다. 하지만 짧은 만남 후 의기투합의 가능성을 직감한 이들은 곧 부근 다른 장소로 옮겨 3시간의 긴 미팅을 가진다. 이들은 맥주를 마시며 테이블에 있던 종이 냅킨 위에다 창업의 틀을 그렸고, 일단 회사 설립에 필요한 법무 비용으로 각자 500달러를 투자하기로 합의한다.
이후 스완슨은 자신이 속한 VC 회사인 클라이너퍼킨스로부터 10만 달러의 투자를 이끌어낸다. (당시 환율은 달러당 450원대). 3개월 후인 4월 7일, 제넨텍이 법적으로 탄생한다. 투자 후 총 주식 수는 7만주로서, VC는 2만주(28.6%), 스완슨과 보이어가 각각 2만 5,000주(35.7%)를 갖는 구도였으며, 투자 후 회사 가치는 35만 달러였다. 굳이 계산하자면 500달러를 투자한 스완슨과 보이어의 지분 가치는 각각 12만 5,000달러가 되어 250배 투자 효과가 생긴 셈이다. 이러한 투자 방식, 가치 평가, 지분 구도는 미국 바이오 분야에서 과학/기술 창업의 모델이 되었다.
1980년 제넨텍은 상장하며 3,500만 달러를 확보하였고 상장 첫날 회사의 시총은 5억5,000만 달러가 되었다. 이 때 창업자들은 각자 12%의 지분을 갖고 있었으니 이들은 천만장자가 된 것이다.
제넨텍은 이후 수많은 신개념 의약을 개발한다. 일부만 언급하면 세계 최초의 재조합 단백질 의약 인슐린의 상용화(1982년), 바이오텍 기업으로서는 최초로 자체 생산한 재조합 인성장호르몬의 상용화(1985년), 최초의 항체 항암치료제 리툭산(1997년), 유방암 치료제 허셉틴(1998), VEGF 활성을 저해하여 혈관 형성을 억제하는 원리로 만든 최초의 항암치료제 아바스틴(2004년)과 같은 원리의 황반변성 치료제 루센티스(2006년) 등이다. 모두가 신개념·신기술 의약으로서 제품당 십조원 대의 시장 창출은 물론 의약 개발의 패러다임을 바꾼 대역사(大役事)였다.
제넨텍은 바이오 창업에 불을 붙였다. 1978년 바이오젠, 1980년 암젠, 1981년 카이론 등이 잇따라 생겨났다. 이 회사들은 모두 과학자들이 주도한 스타트업이었다. 2024년 기준 바이오젠과 암젠의 매출액은 각각 약 15조원, 50조원으로 예상되며 1월 기준 시총은 각각 약 24조원, 230조원에 달한다. 참고로 같은 시기 삼성전자 시총은 300조원대 수준이다. 카이론은 2006년 노바티스에 합병되었다.
1970년대까지 미국의 생명과학 분야는 유럽 학계의 영향을 받아 순수과학 정신이 대세였다. 그러나 1976년 이후에는 새로운 이론이나 기술이 나오면 과학자와 앙트레프레뉴어들이 스타트업을 만들며 실용화를 선도했다. 29세의 젊은 VC와 39세의 생명과학자가 창업한 작은 벤처회사가 학계의 풍토와 연구 문화를 바꾸며, 의약 개발에서 스타트업의 역할을 제시하며 바이오산업의 대서막을 연 것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