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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언제 타인의 고통에 둔감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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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라네바다 산정을 넘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도너 파티' 상상도. britannica.com
미국인의 서부 이주가 1849년 골드러시로 시작된 건 아니다. 건국 후 반세기가 지나면서 동부의 인구 및 토지 압박은 날로 심해졌고, 광활한 서부는 황금이 없었어도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이주민들은 호전적인 원주민이나 야생 동물의 습격, 기후 재난과 사고 등에 대비하기 위해 주로 가족 친지 단위로 무리를 지어 말과 마차의 긴 행렬을 이뤄 평원을 건너곤 했다. 조지 도너(Geroge Donner) 일가 등 87명의 ‘도너 파티(Donner Party)’도 약 500대의 마차에 이삿짐과 식량을 싣고, 1846년 봄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와 미주리주 인디펜던스를 떠났다.
통상 4월에 시작되던 일정과 달리 건초 등을 모으느라 5월 중순에야 출발한 그들은 4~6개월이 걸리던 ‘캘리포니아 트레일’ 대신 지름길이라 알려진 ‘헤이스팅스 트레일’을 선택했다. 솔트레이크 사막과 로키산맥의 산군들, 네바다 훔볼트강을 건너며 일행은 지치기 시작했고 적지 않은 마차를 잃기도 했다. 그들은 11월 초 어렵사리 시에라네바다에 도착했지만 해발 2,000m가 넘는 산정 아래 트러키 호수(Truckee Lake, 현 도너 호수) 인근에서 이른 겨울 폭풍을 만나 발이 묶였다. 일행 중 일부가 도보로 산맥을 넘어 구조를 요청했지만, 캘리포니아의 구조대가 현장에 도착한 것은 약 4개월이 지난 이듬해 2월 19일이었다. 생존자는 48명뿐이었다.
그들은 식량이 떨어져 말과 개를 잡아먹었고, 삶은 가죽과 나무껍질 등으로 연명하던 끝에 굶주림과 추위로 숨진 동료의 인육까지 먹어야 했다. 길 안내역으로 고용됐던 두 명의 원주민은 자신들도 살해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도망치다 피살당했다. 여러 끔찍한 설이 있지만, 도너 파티가 처음부터 '사냥'의 의도로 그들을 살해했는지는 불분명하다.
내가 고통스러우면 타인의 고통에 점차 둔감해지는 게 본능적 반응일 테지만, 그 문턱과 기울기는 사람마다 현저히 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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