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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들 보이'와 배우 이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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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티모테 샬라메와 이준혁. 연합뉴스, 스튜디오S·이오콘텐츠그룹 제공
할리우드에서 몸의 부피가 남성 배우의 인기를 좌우한 시절이 있었다. 떡 벌어진 어깨, 터질 듯한 가슴 근육, 통나무처럼 굵은 허벅지가 슈퍼스타의 ‘자질’로 여겨졌다. 영화 속에서 그들은 근력을 써서 악당을 벌하고 세상을 구했다. 마블 히어로 중 ‘캡틴 아메리카’가 대표적이다.
□ 요즘은 아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누들 보이’ 같은 배우가 대세다. 누들은 스파게티 면을 연상시키는 가는 몸통과 팔다리, 스프링 모양의 푸실리 파스타처럼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을 가리킨다. 티모테 샬라메가 선두 주자다. NYT는 ‘Wispy(가냘픈)’ ‘Twiggy(나무 잔가지처럼 빼빼 마른)’ ‘Feeble(허약한)’ 등의 수식어로 ‘누들 보이’를 설명했다. 그들은 다정하거나 심약한 캐릭터로 묘사된다.
□ 이유 없는 사회 현상은 없다. 극우·보수가 이끄는 미국 정치·사회 공론장에서 ‘마초 정치’가 득세하는 데 대한 반작용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공격적이고 호전적이고 약탈적인 남성성이 아닌 다른 것을 원하는 것이 대중의 욕망”이라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를 대선 후보로 선출한 지난해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미국 프로레슬링의 전설 헐크 호건이 무대에 올라 셔츠를 손으로 찢으며 포효한 것은 상징적 장면이었다. 국가인권위원회와 경찰서에 난입하려다 체포된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가 왜 ‘캡틴 아메리카’ 복장을 하고 있었는지도 설명된다.
□ 살을 빼자는 얘기가 아니다. 핵심은 ‘나와 세계를 위협하지 않는 남성’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부양자가 아닌 동반자로서의 배우자, 나를 이끌기보다 나란히 걷는 애인이 사랑받는 시대다. 드라마 ‘나의 완벽한 비서’(SBS)가 인기를 끈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배우 이준혁이 맡은 주인공 ‘유은호’는 여성 보스를 보좌하는 남성 비서이자 싱글 대디로, 판타지 수준으로 따뜻하고 무해하다. 그는 기자간담회에서 “사람 마음을 사는 건 (은호처럼) 말 한마디라도 곱게 해주는 것, (다친 사람에게) 반창고를 붙여 주는 것처럼 쉬운 일이더라”고 했다. 몸에서만 힘과 매력이 나오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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