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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 명태균, 김종인 만난 뒤 중앙 무대로... '가덕도 신공항'도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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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태균은 정치 컨설턴트인가 정치 브로커인가. 서울중앙지검이 본격 수사에 착수하면서 명태균 사건은 '태풍의 눈'이 될 조짐이다. 한국일보는 명태균 통화 녹취록과 메시지 내역 등 방대한 분량의 자료를 입수해 그를 둘러싼 불편한 얘기를 가감없이 공개한다. 파편적이고 편향적으로 제기됐던 각종 의혹들을 검증하고 향후 어떤 의혹을 규명해야 하는지도 살펴봤다. 여론조사와 선거 캠프 등 정치권의 고질적인 문제점도 분석했다.
명태균씨가 2021년 4월 25일 자신의 SNS에 올린 게시물. 명씨는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제주도의 한 별장에서 사진을 함께 찍었는데, 이 별장은 오세훈 서울시장의 지인인 사업가 김모씨 소유인 것으로 알려졌다. SNS 캡처
2020년까지만 해도 '무명'이던 명태균씨를 중앙정치 무대로 끌어들인 것은 당시 국민의힘 지도부였다. 장기였던 여론조사를 제공해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와 잇따라 관계를 맺은 명씨는 윤석열 정부에선 대통령 부부와 직거래하는 '정치 브로커'로 성장했다.
25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명씨가 김종인 전 위원장을 처음 만난 시점은 2020년 11월로 추정된다. 명씨는 검찰 조사에서 김 전 위원장을 알게 된 경위에 관해 "2020년 11월 3일쯤 김영선 전 의원 소개로, 서울 종로구의 김 전 위원장 사무실에서 처음 만났다"고 진술했다. 명씨는 이 자리에서 '외부 인사인 김 전 위원장이 어떻게 단기간에 당권을 장악할 수 있었는지' 나름의 분석을 말했는데, 김 전 위원장이 "당신 누구야"라며 인정해줘 정국에 대해 수시로 상의하는 사이가 됐다고 한다.
명씨는 "김 전 위원장이 여의도연구원 자리를 제안하며 지상욱 당시 원장과의 만남을 주선해줬다"는 취지로 주장한다. 여의도연구원은 주요 정책 현안이나 선거에 대한 여론조사 활동을 주된 업무로 하는 국민의힘 '싱크탱크'로 이사장은 당대표(또는 비대위원장)가 맡는다. 김 전 위원장은 당 비대위가 출범한 직후인 2020년 6월 지상욱 전 의원을 원장으로 선임했는데, 여론조사에 능통한 명씨에게 그를 도와주게 한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김 전 위원장은 본보에 "(명씨에게 자리를 제안하거나 지상욱 전 원장을 소개한) 그런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무렵부터 명씨와 김 전 위원장, 지 전 원장 간의 연락이 빈번해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 검찰이 확보한 명씨의 카카오톡 내역 등에 따르면, 명씨는 2021년 1월부터 지속적으로 김 전 위원장 등에게 공표 여론조사와 설문지를 사전에 보고하거나 비공표 여론조사를 제공했다. 명씨는 이후 주요 현안에 관한 정보를 김 전 위원장과 지 전 원장에게 공유하고 여기에 자신의 의견을 덧붙이면서 신뢰를 쌓아간 것으로 해석된다.
그는 정책 여론조사에도 관여했다. 명씨는 2021년 2월 여의도연구원의 '가덕도 신공항 정책 여론조사'와 관련해 지 전 원장에게 "전국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하면 부산 비율이 너무 낮아진다"며 여론조사 방법, 설문지, 기존 여론조사 결과 등에 대해 코치해준 것으로 파악됐다. 지 전 원장에게 '한일해저터널' 관련 보고서를 받은 뒤 "정치 이슈화가 되니 찬반 여론이 정당 지지율을 크게 넘지 못할 것"이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여론조사에 한정돼 있던 명씨의 역할은 2021년 오세훈-안철수 서울시장 단일화,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 등 주요 현안을 거치며 확대됐다. 명씨의 검찰 진술 등에 따르면, 명씨는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 후보를 만나 김 전 위원장의 의중을 전하는 한편, 김 전 위원장에게는 "단일화 시기를 후보자 등록 이후로 늦추면 오세훈에게 유리한 국면을 만들 수 있다"고 제안했다고 한다. 명씨는 박완수 당시 국민의힘 의원을 찾아가 이준석 의원 지지를 설득하는 등 이 의원의 당대표 당선을 도왔다고도 주장한다. 명씨는 당대표 경선 지지율 여론조사를 여러 차례 진행해 출마 당사자인 이 의원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국민의힘 지도부와의 긴밀한 관계는 '이준석 체제'에서도 이어졌다. 명씨는 이 의원이 당대표 시절 치러진 2022년 지방선거와 관련해 경기도지사, 대구시장 등 비공표 여론조사 결과를 이 의원에게 보낸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명씨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대선 출마를 선언한 뒤 윤 전 총장 측과 당 지도부 사이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했다. 검찰이 확보한 명씨의 카카오톡 내역에 따르면, 그는 윤 대통령과 이 의원의 첫 만남인 2021년 7월 6일 비공개 회동 일정이나 김종인 전 위원장과의 만남을 조율했다
이 의원이 성접대 의혹으로 당 윤리위원회에 회부되자 일선에서 물러난 김 전 위원장을 통해 명씨가 이 의원을 구명하려 한 정황도 포착됐다. 명씨는 2022년 6월 22일 김진태 당시 강원도지사 후보에게 카카오톡으로 "이준석 대표(가) 우크라이나 가기 전에 윤리위원회에 회부된 것(을) 해결해 달라고 해서, 김종인 위원장님께 제가 부탁드려 해결해 줬다"고 전했다. 김 지사는 이에 "어제 김종인 위원장께 '이준석 살려달라'고 말씀드렸더니 '이미 이양희 (윤리)위원장'에게 말했다고 그러셨다"고 답했다. 명씨 주장이 맞다면, 그가 국민의힘 윤리위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정치권에선 명씨를 단순히 사기꾼으로 치부하긴 어렵다는 평가도 나온다. 소통이 부족한 보수진영 내 주요 인물들을 오가며 결론을 이끌어내는 면모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명씨는 결과적으로 자신의 인맥을 '김영선 공천'이라는 사익을 추구하는 데 활용했다. 정치인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제공한 여론조사 일부가 조작됐다는 의혹도 검찰 수사를 통해 가려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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