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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5.02.26 16:30
수정
2025.02.26 17:05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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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군산 - GM 공장 폐쇄 후 자신만의 정체성 되찾는 여정

편집자주

한국일보와 포스텍 사회문화데이터사이언스 연구소(소장 배영ㆍ이하 ISDS)는 액티브 시니어(액시세대)가 은퇴 후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에 적당한 지역이 어떤 곳인지, 액시세대를 불러들이기 위해 각 시·군은 어떤 노력을 하는지 파악하기 위해 지역을 찾아가 그곳에서 생활하는 은퇴자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또 양적 질적 조사 방법을 사용해 해당 지역의 장점과 약점을 분석해, 10회에 걸쳐 매달 네 번째 목요일에 게재한다.

군산 근대문화거리. 군산=최흥수기자

군산 근대문화거리. 군산=최흥수기자

전북 군산은 “신이 한쪽 문을 닫으면, 다른 쪽 문은 열어둔다”는 헬렌 켈러의 말을 곱씹게 하는 고장이다. 오늘날 군산은 너른 들에서 생산되는 농산물과 인근 바다와 갯벌에서 나오는 해산물, 잘 정돈된 근대 건축물 등 다양한 관광지가 조화를 이뤄 수도권 은퇴자가 한번 살아보고 싶은 동네로 떠오르고 있다. 이는 2000년대 제조업 도시로 성장하려던 꿈이 좌절된 후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활로를 모색한 군산 주민들의 노력 덕분이다.

군산은 2000년대 들어 진행된 산업구조 고도화 과정의 대표적 희생양이라 할 수 있다. 1990년대까지 고속 성장을 이끌었던 한국 제조업이 중국의 부상 등으로 점차 경쟁력을 잃어가던 시기의 아픔을 고스란히 껴안아야 했다. 1997년 완공된 대우자동차 군산공장이 그 상징이다. 곧이어 불어 닥친 외환위기와 함께 주인이 GM(제너럴모터스)으로 바뀌었고, 한때 GM의 소형차 주요 생산기지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그런 호황은 오래가지 못했다. 글로벌 금융 위기로 GM이 2009년 파산 위기에 빠지자 구조조정이 시작됐고, 전체 판매의 70%를 차지하던 유럽 시장에서 2013년 쉐보레(GM 하위 브랜드)가 철수하면서 가동률도 급속히 낮아지다 결국 2018년 폐쇄됐다. 2019년 문재인 정부의 ‘세계적 전기차 생산기지’를 만들겠다는 화려한 약속과 함께 정부와 지자체가 3,800억 원을 투입한 ‘군산형 일자리’도 결국 지난해 초라하게 막을 내렸다.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는 2010년 준공됐지만, 역시 중국의 성장과 세계적 조선업 불황이 맞물리며 2017년 가동이 중단됐다. 다행히 조선업 경기가 되살아나 2021년 다시 가동하면서 이제는 완전히 정상화했다.

이 과정에서 군산에서는 수만 개의 제조업 일자리가 사라졌고, 그 상처는 인구 변화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군산에 공단이 본격적으로 건설되던 2000년 이후 40·50대 인구는 증가세를 보였으며, 30대 인구 역시 4만 명 이상을 꾸준히 유지했다. 하지만 제조업 경기가 침체로 접어들던 2016년 전후부터 30대가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하고, 이어 40대도 감소로 전환했다. 이제 유지되는 경제활동인구는 전직이 어려운 50대뿐이다. 이는 전체 인구 감소로 이어져 2022년 소멸 위험지역으로 지정됐다.

군산시 산업별 지역내총생산 추이

군산시 산업별 지역내총생산 추이

2000년대 군산에 없는 것을 유치해 발전하려던 전략이 실패하자, 오래전부터 군산에 있던 존재들이 지역 소생을 이끌고 있다. 군산 토박이 주민은 그 계기를 1998년 개봉한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로 기억한다. 주인공이 운영하던 초원사진관 등 영화의 무대가 된 군산 시가지의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풍광에 매료된 젊은이들이 군산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타짜'(2006) '아저씨'(2010) '변호인'(2013) 등 히트작을 포함 매년 100편가량 크고 작은 영화가 군산에서 촬영된다. 이 과정에서 ‘근대유산문화의 거리’도 조성됐다. 오래된 맛집들도 재발견돼 인기를 끌며, 관광도시 군산의 가능성을 입증했다. 이후 2016년 군산과 선유도를 잇는 고군산대교 개통을 계기로 관광객이 급증해 그해 관광객 200만 명을 돌파했고, 이듬해에는 366만 명까지 늘어났다.

이와 함께 매일 새벽 열리는 군산 역전시장은 싸고 신선한 해산물과 농산물로 이름이 알려져 주변 지역에서도 일부러 찾는 명물 시장으로 자리 잡았다. 여기에 목포 여수 전주 익산 등과 적당한 거리로 떨어져 있어, 군산 주변 농민들의 판로가 보장되는 점 등도 군산 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으로 지역 농산물을 지역민과 직거래하는 로컬푸드직매장이 활성화해 지역민은 품질 좋은 농산물을 싸게 구입하고, 지역 농민은 탄탄한 판로를 확보해 안심하고 생산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이런 로컬푸드직매장이 외지에도 소문이 나면서 역전시장과 더불어 외지 관광객들의 필수 쇼핑 코스가 됐다.

액티브 시니어란

1980년대 미국 심리학자 버니스 뉴가튼은 ‘50~75세로 경력과 경제력 및 왕성한 소비력을 갖춘 세대’를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라고 정의하면서 ‘어제의 노인과 다른 오늘의 노인’이라고 범주화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액티브 시니어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은퇴 생활에 접어들게 된다. 대체로 1964~74년생으로 분류할 수 있는 이들을 ‘2차 베이비 붐 세대’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1955~63년생인 ‘1차 베이비 붐 세대’와 비교하면, 고도성장기에 성장한 덕에 고학력과 노후 준비가 잘된 이들의 비중이 높다. 액티브 시니어의 표준화된 한국어 번역이 아직 없어, 기획에서는 ‘액티브 시니어’로 쓰되, ‘액시세대’로 줄여 부른다.

문화·여가 분야 양호, 의료는 부족

근대 유산, 들, 바다, 섬이 어우러진 풍광, 싸고 품질 좋은 먹을 거리, 저렴한 주거비 등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군산은 액시세대가 살고픈 동네가 될 잠재력을 고루 갖추고 있다. 포스텍 사회문화데이터사이언스연구소(ISDS)가 개발한 ‘액티브 시니어 지표’를 통해 군산이 액시세대의 정주 여건을 얼마나 잘 갖추고 있는지 객관적으로 살펴본다.

군산 서비스 인프라 요소

군산 서비스 인프라 요소

우선 액시세대의 사회활동 편의성을 평가할 수 있는 문화·여가 분야에서 인구 대비 관련 시설을 얼마나 갖추고 있나 측정하는 인프라 요소를 보면 군산의 지표는 2.28로, 전국 평균인 2.19보다 높았다. 군산은 액시세대들이 이용할 문화기반시설, 체육시설, 사회복지시설을 잘 갖추고 있다는 의미다. 액시세대가 참여할 만한 각종 프로그램 운영, 활동 지원과 교육 등을 측정한 서비스 지표에서도 군산시의 평생학습관이나 시니어클럽 등이 제공하는 각종 문화프로그램과 활동 지원 등이 양호한 평가를 받았다.

공원 및 녹지 인프라도 전국 평균보다 50% 이상 우수한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개별 공원을 연결하는 연결 녹지는 다소 부족하다. 이런 문제 해결책으로 구도심에 장기간 방치돼 있던 군산선 폐철도 용지에 도시 철길숲 조성 사업을 추진하고 있어 주민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군산 고령자 대상 시설 의료 인프라 주거 및 편의성 전국비교

군산 고령자 대상 시설 의료 인프라 주거 및 편의성 전국비교

반면 의료 인프라 요소에서는 전국 평균보다 크게 부족했다. 상급병원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대형 의료기관은 군산의료원, 동군산병원 정도에 그친다. 2027년 개원 예정인 군산 전북대학병원이 문을 열기 전까지는 불편을 감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액시세대를 대상으로 한 의료서비스 요소는 타 지역과 비슷한 수준으로 평가됐다.

액시세대의 이동 편의성을 살펴보면 버스 정류장 수와 택시 면허 대수가 전국 평균보다 높아 긍정적이다. 그러나 버스 노선 수와 버스 차량 수, 그리고 버스 이용량이 전국 평균을 밑돌고 있다. 군산시는 교통 취약지역을 정규 노선에 따라 운행하거나, 예약을 통해 찾아가는 ‘행복 콜버스’를 운행하면서 불편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조사를 진행한 포스텍 배영 교수는 “이번 군산 딸기농장 사례는 귀농을 하려면 먼저 지역 수요를 면밀히 파악해야 안정적 정착과 지속적 운영에 큰 도움이 된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기후나 풍토는 물론 작물의 종류에 대해서도 지역에 대해 미리 알아보고 대응책을 준비한다면 실패 위험도 크게 줄어들고 귀농 지원프로그램의 혜택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자료 정리: 전종석(포스텍 소셜데이터사이언스전공 박사과정) 천지향(포스텍 IT융합공학과 학부생)

정영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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