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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초콜릿 소녀

입력
2025.03.01 04:30
19면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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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유럽 궁정의 럭셔리 드링크 핫초콜릿

장 에티엔 리오타르, ‘초콜릿 소녀’, 1744년경, 알테 마이스터 회화관, 독일 드레스덴

장 에티엔 리오타르, ‘초콜릿 소녀’, 1744년경, 알테 마이스터 회화관, 독일 드레스덴

이 그림은 핫초콜릿 한 잔과 물 한 컵이 담긴 쟁반을 들고 있는 아름다운 소녀를 묘사하고 있다. 우아하고 섬세한 파스텔 초상화로 유명한 18세기 스위스 화가 장 에티엔 리오타르(Jean-Étienne Liotard)의 걸작이다. 이른 아침, 이제 막 잠에서 깬 여주인에게 가져다주려는 것이리라. 초콜릿 음료는 당대 유럽 궁정과 귀족들 사이에서 매우 인기가 있었다. 소녀는 옅은 분홍색 보헤미안 보닛을 쓰고, 회색 치마 위에 미세한 구겨짐이 있는 긴 앞치마를 입고 있다. 소녀가 사뿐사뿐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치마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만 같다. 반짝반짝 윤이 나는 옻칠 쟁반 위 유리컵에는 창틀 프레임이 그대로 반사되어 있다. 컵에 담긴 물은 너무도 맑고 투명해 마른 목을 축일 수 있을 것 같고, 마이센 도자기에 담겨 달콤한 냄새를 풍기는 초콜릿 음료는 미각을 자극한다. 전체적으로, 파스텔로 그렸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생생한 사실적 디테일과 절묘한 질감 표현이 탄성을 불러일으킨다.

이 매혹적인 소녀는 누구일까? 그림 속 모델에 관해서는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첫 번째는 비엔나 은행가의 딸 샬롯 발도프라는 설이다. 그녀는 합스부르크가 궁정의 시녀로 들어갔다. 귀족 가문의 소녀들은 궁정에서 왕족을 위해 봉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1913년 출간된 한 요리책에 의하면, 궁정에서 샬롯을 본 오스트리아의 유서 깊은 명문 디트리히슈타인가의 한 왕자가 그녀에게 푹 빠졌다고 한다. 후에 그녀는 디트리히슈타인 백작 부인이 되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라 한층 낭만적이다. 디트리히슈타인 가문의 왕자가 비엔나에 있는 초콜릿 가게에 들러 당시 한창 사람들의 입길에 오르내리는 초콜릿 음료를 마셔 보았다. 그곳에서 초콜릿을 서빙하는 가난한 웨이트리스 안나 발도프에게 첫눈에 반했고,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녀와 결혼했다. 왕자는 결혼 선물로, 스위스의 유명 화가 리오타르에게 아름다운 아내의 초상화를 의뢰했다. 리오타르는 이제 오스트리아의 가장 유명한 귀족 가문의 공주 신분이 된 발도프에게 초콜릿 음료를 서빙하는 시녀의 모습으로 포즈를 취하게 했다. 결혼식 날, 안나는 함께 일하거나 놀았던 친구들을 초대하여, "봐! 이제 나는 공주가 되었어, 내 손에 키스해도 좋아."라고 말하며 신데렐라가 된 자신의 행운에 맘껏 기뻐했다.

입맛을 사로잡는 이 달콤한 초콜릿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인간은 언제부터 초콜릿을 먹기 시작했을까? 약 4,000년 전, 메소아메리카 원주민은 야생에서 자라는 카카오나무에서 카카오콩을 수확했다. 마야인은 카카오콩을 볶고 갈아서 물, 옥수수가루, 고추와 섞어 걸쭉하고 거품이 많은 음료로 만들었다. 15세기경, 카카오는 아즈텍인에게도 전해졌다. 초콜릿은 아메리카에서도 지배층을 위한 사치품이었다. 아즈텍인은 활력과 에너지를 주는 초콜릿을 '신들의 음식'이라고 하며 신성하게 여겼다. 카카오콩은 화폐로 사용했으며 금보다 귀한 것으로 취급되었다.

16세기 아메리카에 도착한 스페인 정복자들이 카카오를 유럽에 소개했다. 유럽인은 쓴맛의 카카오 음료에 설탕이나 꿀, 계피를 첨가해 마셨다. 17, 18세기 무렵, 유럽 왕실과 귀족, 부유층 사이에서 아침 식사로 초콜릿 음료를 페이스트리와 함께 먹는 유행이 퍼졌다. 1657년, 런던에는 최초의 초콜릿하우스가 문을 열었다. 이 값비싸고 이국적인 음료는 엘리트 사회에서 유행했고, 초콜릿하우스는 부유층의 만남의 장소로 번성했다.

다시 그림으로 돌아가 보자. 이 그림은 당대에 엄청난 화제를 일으킨 걸작으로 회자되었다. 리오타르와 동시대인으로, 역시 파스텔 그림의 대가였던 로살바 카리에라(Rosalba Carriera)는 ‘이제까지 본 것 중 가장 아름다운 파스텔’이라고 격찬했다. '초콜릿 소녀'는 독일 드레스덴의 알테 마이스터 회화관의 보물 중 하나가 되었고, 그녀의 모습과 이름은 위대한 예술가에 의해 불멸의 존재로 남았다.

'초콜릿 소녀'는 한 유명한 초콜릿 회사에 의해 더욱 유명해진다. 미국 최초의 초콜릿 회사 월터 베이커 앤 컴퍼니의 사장 헨리 피어스는 독일 방문 시 이 그림을 보고 완전히 매료되었다. 피어스는 그림 속 소녀야말로 그의 회사에서 만든 초콜릿 제품에 딱 맞는 이미지라고 생각했다. 이제 초콜릿 소녀는 그 회사의 브랜드 로고로 탄생하게 된다. 회사는 홍보를 위해 젊은 여성 직원들에게 소녀의 이미지와 비슷한 보닛과 앞치마를 입히기도 했다.

'초콜릿 소녀'는 평온한 일상에서 초콜릿을 즐기는 부유층의 여유로운 삶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사치스러운 달콤함의 이면에는 대항해 시대 이후 서구 열강의 식민지 착취라는 역사적 비극이 숨겨져 있었다. 초콜릿 열풍이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고 그 수요가 늘어나면서,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 유럽 국가들은 카리브해, 아프리카, 동남아시아의 식민지에 카카오 농장을 세우고 노예의 노동력을 무자비하게 착취했다.

생산 기술의 발전과 값싼 노동력, 가격 인하로 인해 초콜릿은 이제 모든 사회 계층의 간식거리로 확장되었다. 현재 초콜릿의 원재료인 카카오는 대부분 서아프리카에서 만들어진다. 코트디부아르, 가나, 나이지리아, 카메룬에서 생산되는 양질의 카카오는 인신매매로 조달된 노동력과 어린이 노동을 통해 저렴한 가격으로 생산된다. 요즘은 누구나 값싸게 즐길 수 있는 초콜릿의 맛은 그들의 희생으로 가능한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공정무역' 운동 속에서 커피, 바나나, 설탕과 같은 품목과 함께 공정무역 초콜릿도 판매되고 있다.



김선지 작가·'그림 속 천문학'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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