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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트럼프 시대 복덩이 된 LNG…17년 공들인 '고망간강' 혁신으로 승부수 띄운 포스코그룹

입력
2025.03.03 10:00
수정
2025.03.03 20:13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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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 광양 제철소·LNG 터미널 르포
신소재 고망간강 개발해 LNG 저장 중
30% 저렴하고 극저온에서 더 잘 견뎌
단점 극복 위해 수십년 철강 노하우 적용

전남 광양시 포스코 광양제철소에서 고망간강 후판이 만들어지고 있다. 포스코그룹 제공

전남 광양시 포스코 광양제철소에서 고망간강 후판이 만들어지고 있다. 포스코그룹 제공


쿠우우웅~ 치이익~ 솨아~


지난달 26일 전남 광양시 포스코 광양제철소 압연공장. 빨갛게 달아오른 철강 반제품 슬래브가 굉음 속에서 레일 위를 왔다 갔다 하며 몸을 풀었다. 두꺼웠던 슬래브는 금세 죽죽 늘어났고 산화돼 생긴 찌꺼기(슬래그)는 거센 물줄기로 쌓이는 족족 닦여 나갔다. 마치 태양의 흑점이 폭발해 에너지가 쏟아져 나오듯 물을 만난 슬래브가 뿜어내는 연기는 공장을 희뿌옇게 채웠다. 그 열기도 대단해 등줄기에서 땀이 주륵 흘렀다.

이 강철은 포스코가 개발한 신소재 '고망간강'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강조하는 액화천연가스(LNG) 저장 탱크를 만드는 데 쓰인다. 천연가스를 액체로 바꾼 LNG는 저장이 까다로워 채굴한 뒤 유통사의 역할이 중요한데 기존 제품보다 싸고 강한 고망간강을 개발하는 등 일찍이 기술 확보에 공을 들인 포스코는 이번 기회를 살려 글로벌 LNG 인프라 시장에 승부수를 던진다는 구상이다.


고망간강, 왜 포스코는 미래를 걸었나

전남 광양시 포스코 광양제철소 후판 공장에 생산을 마친 고망간강 후판 제품이 놓여 있다. 포스코그룹 제공

전남 광양시 포스코 광양제철소 후판 공장에 생산을 마친 고망간강 후판 제품이 놓여 있다. 포스코그룹 제공


고망간강은 '망간(Manganese)'이 많이 들어간 강철(鋼)이다. 망간이 22% 이상 들어가 '고(高)'자가 붙었다. 포스코가 미래 먹거리로서 고망간강 연구에 나선 건 2008년쯤이다. 해외 선진 철강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기술은 많이 좋아졌지만 중국 회사들은 거세게 추격해 오니 새로운 제품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이순기 포스코 수석연구원은 "당시 환경 규제가 강화되면서 선박 연료를 친환경, LNG로 바꿀 거란 얘기가 나왔다"며 "LNG를 담을 소재가 필요할 거라 보고 연구에 나섰다"고 말했다.

LNG는 수송을 위해 천연가스를 액화한 것으로 반드시 온도를 영하 163도 이하로 유지해야 한다. 이런 극저온을 견디는 저장 탱크를 만들려면 강철에 니켈을 섞는 수밖에 없었는데, 니켈이 워낙 수급이 불안정하고 가격이 비싸 경제성 확보가 어려웠다. 그래서 포스코는 매장량이 풍부해 가격이 싸고 조달이 쉬운 망간을 활용하기로 했다. 다만 강철에 망간을 더하면 강도가 높아지고 내마모성 등이 좋아지지만 밀도가 높아 잘 부서진다는 단점이 있었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이 운영하는 광양 제2 LNG터미널 부지에서 20만 킬로리터(㎘)탱크 2기가 지어지고 있다. 포스코그룹 제공

포스코인터내셔널이 운영하는 광양 제2 LNG터미널 부지에서 20만 킬로리터(㎘)탱크 2기가 지어지고 있다. 포스코그룹 제공


단점 극복까지 장애물이 많았지만 포스코는 고망간강 특화 레시피를 이용해 2013년 상용화에 성공했다. 제철소 공정은 제선-제강-압연으로 나뉘는데 제강과 압연에 변화를 줬다. 고망간강은 불순물이 많고 섞이면서 온도가 떨어져 쇳물이 굳을 우려가 있다. 이에 본격적으로 쇳물(용강)을 다루는 제강 공정에서 불순물 없애는 공정을 강화했고 보온로를 이용해 망간을 녹여 용강에 섞어 슬래브를 만들었다.

슬래브를 성형해 최종 제품인 후판으로 만드는 압연 공정에서는 특별한 손질 패턴을 만들었다. 정영덕 포스코 리더는 "망간은 가공하기는 좋은 편인데 산화에 취약하고 가열 제어가 어렵다"며 "포스코만의 제어 압연, 냉각 기술로 극저온에서 안정적으로 버티는 높은 강도의 고망간강을 만들 수 있었다"고 했다. 또 운송은 흡착식으로 바꾸고 절단은 플라즈마 절단기를 도입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고망간강은 기존 니켈강 대비 30% 저렴하고 강도도 뛰어나다는 게 포스코의 설명이다.


남해안 채우는 LNG 탱크... 고망간강으로 레벨업

포스코인터내셔널이 운영하는 전남 광양시 광양 제2 LNG터미널 부지에 포스코이앤씨가 고망간강 기술을 활용해 7호기 탱크를 짓고 있다. 이 탱크는 콘크리트 외벽과 고망간강 내벽으로 구성된다. 포스코그룹 제공

포스코인터내셔널이 운영하는 전남 광양시 광양 제2 LNG터미널 부지에 포스코이앤씨가 고망간강 기술을 활용해 7호기 탱크를 짓고 있다. 이 탱크는 콘크리트 외벽과 고망간강 내벽으로 구성된다. 포스코그룹 제공


포스코그룹은 고망간강을 이용해 계열사 간 LNG 인프라 밸류 체인까지 짰다. 포스코의 고망간강을 가지고 포스코이앤씨가 LNG 탱크를 짓고 포스코인터내셔널이 LNG를 들여와 판다. 제1LNG터미널 6개 탱크 중 5호기(2019년 준공)부터 고망간강이 쓰였다. 이순기 수석연구원은 "당시 LNG 탱크에 고망간강을 적용한 사례가 없었다"며 "당시 포스코 사장이었던 장인화 회장의 결단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2022년 세계 최초로 고망간강 LNG 연료 탱크를 원유 운반선에 적용한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에는 컨테이너선에도 실었다.

현재 9,500억 원을 투자해 증설 중인 제2 LNG터미널 7, 8호기에도 고망간강이 적용된다. 20만 킬로리터(㎘) 용량의 LNG 탱크는 올림픽 체조경기장(직경 약 124m)이 커다란 돔인데 껍데기는 컨테이너로 만들고 실제 LNG가 담기는 그릇을 고망간강으로 만든다.

주성철 포스코이앤씨 차장은 "전기밥솥이랑 비슷한데 밥솥을 콘크리트로 내솥을 고망간강으로 만든다"며 "초기에는 신소재다 보니 용접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었는데 5·6호기 건설을 통해 숙달돼 지금은 불량률이 크게 낮아졌다"고 설명했다.

광양= 오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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