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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잠수함은 트럼프 압박에 맞설 카드?... 정치권에 번지는 핵 자강론 [문지방]

입력
2025.03.0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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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잠 보유" 다시 군불 지피는 정치권
기술력 있어도 국제사회 동의 선결 과제
트럼프와 대화서 美 동의 구할 수 있을까

편집자주

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


미국 해군의 로스앤젤레스급 핵추진 잠수함인 '알렉산드리아함'(SSN-757·6900t급)이 지난달 10일 오전 부산 남구 해군작전사령부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하고 있다. 부산뉴시스

미국 해군의 로스앤젤레스급 핵추진 잠수함인 '알렉산드리아함'(SSN-757·6900t급)이 지난달 10일 오전 부산 남구 해군작전사령부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하고 있다. 부산뉴시스


요즘 여의도에선 ‘핵 자강(自强)론’이 어느 때보다 활발히 제시되고 있습니다. 북한의 핵 능력 과시와 핵무기 보유 정당성 주장이 일상화된 상황에서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도 북한의 핵 보유를 어느 정도 현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됐으니, 한국도 핵무장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기존엔 보수진영에서마저 ‘소수의견’으로 여겨졌지만, 최근엔 박선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비롯한 일부 야권 인사들도 당장 핵무기를 생산하거나 확보하지는 않되, 우라늄 농축과 플루토늄 재처리 능력을 갖춰 유사시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핵 잠재력’ 확보 필요성을 언급합니다. 사안마다 극한 대치하던 여야의 ‘교집합’을 뜻밖의 공간에서 찾은 셈이죠.

①핵무장론(핵무기보유) ②전술핵 재배치론(미 전술핵 한반도 배치)보다 주변국을 덜 자극하면서도 상대적으로 실현가능성은 높은 ③핵 잠재력 확보론(우라늄 농축 20%)에는 여야 모두 어느 정도 공감하는 모습입니다. 한동안 금기로 여겨져 온 핵 능력 확보 논의가 눈에 띄게 고개를 드는 배경입니다.


'거래적 성향' 트럼프가 왔다…군불 지피는 정치권 학계

지난달 12일 국회무궁화포럼이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개최한 '한국형 핵추진 잠수함 도입 전략과 비전' 토론회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유용원 국민의힘 의원실 제공

지난달 12일 국회무궁화포럼이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개최한 '한국형 핵추진 잠수함 도입 전략과 비전' 토론회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유용원 국민의힘 의원실 제공

이런 분위기 속에서 여권은 한발 더 나가 ‘한국형 핵추진 잠수함’ 개발 필요성을 제시하고 나왔습니다. 유용원 국민의힘 의원이 주축이 된 국회 ‘무궁화포럼’이 지난달 12일 국회에서 한국형 핵추진 잠수함 도입 전략과 비전을 논의하는 토론회를 열고, 한국형 핵추진 잠수함에 대한 도입 검토 필요성에 대한 공론화에 나선 거죠.

핵추진 잠수함은 핵을 동력으로 하는 공격형 원자력 잠수함인 SSN(Submersible Ship-Nuclear powered)을 말합니다. 가장 큰 장점은 은밀하게 물속에서 오랫동안 활동할 수 있다는 점이죠. 문근식 한양대 특임교수에 따르면 핵추진 잠수함은 ①지구 한 바퀴를 도는 데 140여 일 걸리는 디젤 잠수함(6~8노트 기준)에 비해 40여 일(20~25노트 기준)에 불과한 ‘기동성’과 더불어 ②하루 한두 번 수면에 부상해야 하는 디젤 잠수함과 달리 사실상 무제한 수중 작전이 가능한 ‘작전지속성’을 바탕으로 공격 능력과 생존, 보복 능력 모두 뛰어납니다.

이렇게 강력한 걸, 왜 우린 가지지 못하고 있을까요. 3,600톤급으로 세계 최고 수준 최신형 잠수함인 ‘장보고-Ⅲ 배치(Batch)-Ⅱ 3번함’ 건조 등 잠수함 기술력도 입증됐고, 원자력 기술 또한 해외 수출이 활발할 정도의 높은 수준을 자랑하고 있는데 말이죠. 그렇다고 그간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들의 의지가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2010년대 들어 북한이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성능을 자랑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도 이를 견제할 핵추진 잠수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고, 이에 박근혜 전 대통령은 물론 문재인 전 대통령도 핵잠수함 필요성에 대해선 이견이 없었습니다.

오커스 필러2 참여 '우회로'도 대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5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행정명령에 서명한 후 기자들에게 얘기하고 있다. 워싱턴=AP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5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행정명령에 서명한 후 기자들에게 얘기하고 있다. 워싱턴=AP 뉴시스


지금까지도 현실화되지 못한 데는 미국의 동의를 구하지 못한 게 결정적입니다. 정치권에서 토론회까지 개최해 다시 공론화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2015년 개정된 한미 원자력협정을 통해 양국 간 협의에 의해 한국도 농축도 20% 미만의 우라늄을 농축 및 재처리할 수 있도록 협정을 개정했지만, 군사적 전용에 대해선 금지하고 있어 이에 대한 협상이 필요합니다. 앞서 언급한 ‘핵 잠재력 확보’에도 이 기준은 똑같이 적용됩니다. 국제사회가 농축 우라늄의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에 반대하고 있다는 점도 걸림돌입니다.

미국은 지난해만 해도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지원을 반대했습니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지난해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안보회의에서 한국이 핵잠수함 보유를 추진한다면 지지할지를 묻는 질문에 “지금은 수용하기 매우 어렵다”면서 “오커스(AUKUS)와 많은 노력을 했고, 호주와 이제 막 그 길을 가기 시작했다”며 단칼에 부정적이란 의사를 내비쳤죠. 반면 인도·태평양에서 중국의 안보 위협에 대응하는 데 중점을 두고 2021년 출범한 미국·영국·호주 안보 동맹 오커스는 호주의 핵잠수함 보유를 추진 중입니다.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트럼프가 돌아온 것입니다. 물론 우리 내부 정치상황으로 당장 논의가 이뤄지긴 어려운 상황이지만 정치권에서 벌써부터 군불을 지피는 이유는 ①국내 여론부터 확인하고 ②미국과 대화가 시작됐을 때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나 방위비분담금 인상 등 불리한 협상안을 제시할 때 우리 역시 협상안 가운데 하나로 두고 핵추진 잠수함 도입에 대한 미국의 지지와 협력을 구하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죠. 엄효식 국방안보포럼 사무총장은 “실질적으로 핵추진 잠수함을 개발하거나 건조해서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향후 수출 등 경제적인 효과도 트럼프 정부와 (상대할 때)아주 효율적인 어떤 의제로 만들어 우리 국익을 높일 수 있는 부분도 고려해야 한다”고 봤습니다.

최근 수년 사이 해군력 전략경쟁 무대가 수상(水上)에서 수중(水中)으로 급격히 옮겨진 데다 중국의 기술력 향상이 뚜렷해진 점도 우리가 미국에 핵추진 잠수함 건조 협력을 제안할 명분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자칫 미국과 신뢰도 훼손… "값비싼 유리그릇 다루듯"

미국 해군의 로스앤젤레스급 핵추진 잠수함인 '알렉산드리아함'(SSN-757·6900t급)이 지난달 10일 오전 부산 남구 해군작전사령부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하고 있다. 부산=뉴시스

미국 해군의 로스앤젤레스급 핵추진 잠수함인 '알렉산드리아함'(SSN-757·6900t급)이 지난달 10일 오전 부산 남구 해군작전사령부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하고 있다. 부산=뉴시스


물론 위험 요인도 많습니다. 핵추진 잠수함 보유를 무리하게 밀어붙였다가는 주변의 중국과 러시아, 북한을 자극하고 자칫 미국 눈 밖에 날 수도 있다는 우려 또한 상당합니다. 유지훈 한국국방연구원(KIDA) 연구위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거래적 성향에 비춰봤을 때 동맹국들에 대한 역할분담 요구가 우리에게 들어올 때 북한에 대한 억지력 측면에서 핵잠수함 확보가 필요하다는 논리를 펼 수 있지만, 미국의 정책 결정 또한 시스템 아래 작동하기 때문에 의회 승인 과정 등에서 자칫 그간 쌓은 신뢰를 훼손할 수 있다”고 짚었습니다. 사안 자체가 '유리그릇 다루듯' 처음부터 조심히 접근해야 한다는 얘기죠.

그래서 떠오르는 또 다른 대안은 우리가 직접 핵추진 잠수함을 제작하지 않더라도 오커스 ‘필러(pillar)2’에 참여하는 방법입니다. 1단계 안보 협정인 ‘필러1’은 미국과 영국이 호주에 2030년대까지 호주에 핵추진 잠수함 최소 3척을 판매하고 기술을 지원하는 내용이 골자고, 2단계 안보 협정인 ‘필러2’는 중국의 힘에 대응하고자 사이버안보·양자컴퓨팅 등 8개 분야에서 첨단 군사 역량 공동 개발을 위해 협력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방산업계 고위 관계자도 “우리 군이 오커스 필러2에 참여함으로써 핵추진 잠수함 개발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기술적 위험을 줄이고, 보다 안전하고 효율적인 개발이 가능해질 수 있다”면서 “한국이 핵추진 잠수함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국제사회에서의 신뢰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고 귀띔했습니다.

핵무기 보유와 달리 핵추진 잠수함 확보에 대한 국민적 지지도 또한 높고, 이전 정부에서부터 비밀리에 나름의 로드맵은 충분히 마련해 뒀을 거란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 의견입니다. 군과 업계에선 미국에 대한 설득 등 확보 추진 노력을 위한 과정에선 무엇보다 '대통령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합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조성국 한국핵안보포럼 연구위원은 "북한은 북러관계 긴밀화가 진행됨에 따라 핵추진 잠수함 관련 기술을 전수받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핵추진 잠수함 개발 사업은 10년 이상이 소요된다는 점에서 우리도 이른 시일 안에 검토하고 사업추진을 결정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김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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