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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250년 ‘도덕의 나침반’도 바꿨다”… 트럼프 ‘모욕 주기 외교’의 결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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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열린 '로젠 몬탁' 기념 카니발 퍼레이드 무대에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오른쪽) 러시아 대통령이 악수하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운데)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숨통을 조이는 모습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히틀러-스탈린-팩트 2.0'이라는 문구도 적혀 있다. 직역하면 '장미의 일요일'라는 뜻인 로젠 몬탁 행사는 봄의 시작을 알리기 위한 것으로, 정치 및 사회 현실을 풍자하는 내용으로도 유명하다. 뒤셀도르프=EPA 연합뉴스
“트럼프는 미국의 ‘도덕적 나침반’을 재조정하고 있다.”
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포스트(WP) 홈페이지 오피니언 섹션에 게시된 WP 외교 분야 칼럼니스트 퍼리드 저카리아의 칼럼 제목이다. 이틀 전 세계를 경악하게 만든 미·우크라이나 정상회담 파행에 대한 촌평이었다. 미국 CNN방송의 유명 앵커이기도 한 저카리아는 “미국 외교의 ‘재앙’이 절정으로 달한 순간”이라며 “초강대국으로서의 미국은 (외국 분쟁에 대한) 개입을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보호로 여겼으나, 더 이상은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지난달 28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회담은 미국의 이러한 ‘변화’를 극명히 보여 줬다. 트럼프를 비롯한 미국 인사들은 강자의 오만함, 약소국을 향한 무시와 경멸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무례와 고성, 설전이 오가며 약 40분 만에 파국을 맞은 건 ‘예견된 결과’나 마찬가지다.
시작부터 삐거덕댔다. CNN방송과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트럼프는 군복 차림의 젤렌스키에게 “매우 멋진 옷을 차려 입었다”고 비아냥댔다. 마주 앉은 뒤엔 즉각 “(미국은 우크라이나산) 희토류 판매로 많은 돈을 벌 것”이라며 ‘광물 협정’ 안건부터 꺼냈다. 그의 관심은 오로지 ‘돈’에 있었다. 젤렌스키가 “(러시아와의 종전 후 우크라이나 안보를 위해) 미국이 지원을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본다. 미국이 무엇을 할 준비가 돼 있는지 논의하고 싶다”며 화제를 돌리려 하면서부터 충돌이 시작됐다.
지난달 28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을 찾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왼쪽)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가운데) 미국 대통령이 언성을 높이며 설전을 펼치고 있다. 오른쪽은 젤렌스키 대통령의 발언에 손사래를 치고 있는 JD 밴스 미국 부통령. 워싱턴=EPA 연합뉴스
트럼프는 ‘러시아의 전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심지어 젤렌스키에게 “당신은 매우 나쁜 입장에서 있고, 우리와 함께할 카드가 없다”며 면박을 주기까지 했다. 결국 “당신은 (미국을) 고맙게 여기지 않는다”고 맹비난한 뒤 집무실을 떠났다. 후속 회담과 공동 기자회견은 없었고, 광물 협정 서명식도 진행되지 않았다. 이 장면은 TV 생중계로 세계에 전파됐고, 근대 이후 외교사에서 전례를 찾기 힘든 ‘완벽한 결렬’이었다.
미국의 ‘무례’는 트럼프에서 그치지 않았다. JD 밴스 미국 부통령도 가세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외교 상대’로 거론하는 트럼프와 밴스를 향해 젤렌스키가 “무슨 외교를 말하는 것이냐”고 묻자, 밴스는 “당신 나라의 파괴를 끝낼 외교”라며 “오벌오피스(백악관 내 대통령 집무실)에 들어와 미국 언론 앞에서 이것을 따지는 건 무례한 짓”이라고 쏘아붙였다. 또 “당신 나라를 구하려는 미국과 (트럼프) 대통령에게 감사를 좀 표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심지어 친트럼프 성향 팟캐스트의 한 기자는 젤렌스키를 향해 “정장이 있기는 한가”라고 물으며 모욕을 주기까지 했다.
젤렌스키는 일단 수습을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다. 1일과 2일 잇따라 “우리는 광물 협정에 서명할 준비가 됐다. 미국과 우리의 관계가 계속될 것으로 생각한다”며 화해의 메시지를 보냈다. 다만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 등이 요구한 ‘사과’에는 선을 그었다.
2일 미국 시카고에서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시민들이 지난달 2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간 회담 파행과 관련해 미국의 '무례'에 항의하며 거리 행진을 하고 있다. 한 시민이 들고 있는 팻말에 '대통령, 있잖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거든'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시카고=AFP 연합뉴스
미국은 잔뜩 화가 난 분위기다. 마이크 왈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2일 CNN 인터뷰에서 “우리는 미국과 협상할 수 있고, 러시아와도 협상해 전쟁을 끝낼 수 있는 (우크라이나의)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정권 교체 압박이었다.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은 CBS뉴스 인터뷰를 통해 “젤렌스키가 싸움을 계속하길 원한다면 무의미해질 경제협정이 무슨 소용이냐”라며 광물 협정은 현재 논의 테이블에 없음을 시사했다.
이득을 본 건 러시아다. 백악관 회담 파행 직후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사회관계망서비스에 “트럼프와 밴스가 인간 쓰레기(젤렌스키)를 때리지 않은 건 기적”이라고 적으며 젤렌스키를 조롱했다. 크렘린궁 대변인도 “미국의 새로운 행정부가 모든 외교 정책을 급격히 바꾸고 있는데, 이는 대체로 우리의 비전과 일치한다”고 밝혔다.
미국 내에선 트럼프 행정부의 ‘모욕 주기 외교’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NYT는 “트럼프가 대중 앞에서 전례 없는 수준의 분노를 표출했다”고 지적했다. CNN은 “트럼프가 집무실에서 젤렌스키를 맹렬히 비난한 것은 계획된 ‘정치적 강도 행위’였고, 우크라이나 지도자의 신용을 떨어뜨리고 향후 모든 일에서 배제하려고 만든 함정”이라고 짚었다. 저카리아는 ‘미국의 경제적 이익’만을 노린 채 동맹을 위협하고 적국을 편드는 트럼프 행정부에 대해 “250년 전 미국 건국 이래 굳건했던 ‘도덕의 나침반’을 다시 바꾸고 있다”는 일침을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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