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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안보 지원 끊길 수도"… 트럼프식 우크라 해법에 긴장하는 필리핀

입력
2025.03.0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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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우크라 회담 파국에 남중국해 영향 우려
주미 대사 "미국 관련 모든 상황 대비 해야"
"국방력 자립, 타국과 방위 협력 필요" 주장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우크라이나 안전 보장 방안을 두고 설전을 벌이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우크라이나 안전 보장 방안을 두고 설전을 벌이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미국과 우크라이나 간 정상회담이 설전 끝에 파국으로 끝나면서 남중국해 영유권을 두고 중국과 갈등을 빚는 필리핀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침략국’ 러시아와 밀착하고 유럽 동맹국과 충돌하는 도널드 대통령의 행보를 보며 미국의 ‘철통 같은 동맹’ 약속에 마냥 기대서는 안 된다는 각성을 하게 된 것이다.

"각국, 국방력 강화 준비 해야"

4일 인콰이어러 등 필리핀 매체에 따르면, 호세 마누엘 로무알데스 주미 필리핀 대사는 전날 필리핀 마닐라에서 진행한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필리핀은 미국과의 오랜 동맹 관련 모든 시나리오에 대비해야 한다”며 “각 나라도 국방력과 경제 안보를 강화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필리핀이 위기 상황에 놓이더라도 미국의 즉각적인 도움을 장담하기 어려운 만큼, 미리 대응책을 마련해 둬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필리핀이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첫 손에 꼽히는 미국 동맹국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예상 밖 주장이다.

호세 로무알데스(가운데) 주미 필리핀 대사가 3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외신기자 대상 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마닐라=AP 연합뉴스

호세 로무알데스(가운데) 주미 필리핀 대사가 3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외신기자 대상 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마닐라=AP 연합뉴스

로무알데스 대사의 발언은 지난달 2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간 정상회담 이후 국제 질서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나왔다. 당시 트럼프는 우크라이나 안전 보장을 요구하는 젤렌스키의 면전에서 군사 지원 중단 가능성을 거론하며 노골적으로 면박을 줬고, 결국 정상회담은 가시 돋친 입씨름 끝에 파국으로 끝났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모든 군사 원조 중단을 지시했다. 미국이 자국 이익을 우선하는 과정에서 동맹국 안보를 외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줬다는 평가다.

미국 믿을 수 있나… 자강론 vs 낙관론

국가 안보를 미국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는 필리핀도 예외가 아니라는 게 현지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은 2022년 집권 후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정부의 친중 노선을 버리고 친미 행보를 강화해 왔다. 2023년 초부터는 동맹인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고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대치하고 있다.

에릭 오스틴(오른쪽) 미국 해병대 소장과 마빈 리쿠딘 필리핀 육군 소장이 2023년 4월 필리핀 퀘존시 캠프 아기날도에서 열린 역대 최대 규모 미·필리핀 합동 군사훈련 '발리카탄' 개막식에 참석해 팔짱을 끼고 악수하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퀘존=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에릭 오스틴(오른쪽) 미국 해병대 소장과 마빈 리쿠딘 필리핀 육군 소장이 2023년 4월 필리핀 퀘존시 캠프 아기날도에서 열린 역대 최대 규모 미·필리핀 합동 군사훈련 '발리카탄' 개막식에 참석해 팔짱을 끼고 악수하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퀘존=AP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러나 우크라이나가 미국으로부터 사실상 팽(烹)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필리핀은 ‘남의 일’이 아니라고 여기게 됐다. 필리핀 유명 법학자 멜렌시오 산토스 스타 마리아 파이스턴대 법학대 학장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에서 “이번 (미국·우크라이나) 회담은 아시아·태평양에서 외국의 군사 침략 행위가 발생해도 더 이상 미국의 철통같은 동맹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경고”라고 진단했다.

국방 분야 대미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진다. 필리핀 싱크탱크 국제개발안보협력연구소 체스터 카발자 소장은 “필리핀은 군 현대화 노력 등 국방력 자립 준비 태세를 강화하고 비슷한 생각을 가진 나라들과 방위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필리핀과 우크라이나는 지정학적 정세가 다른 만큼, 미국이 필리핀을 ‘배신’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낙관론도 있다. 국제문제 분석가 레나토 데 카스트로 필리핀 델라살데 교수는 현지 매체 데일리트리뷴에 “미국이 경쟁자로 여기고 주목하는 나라는 러시아가 아닌 중국”이라며 “필리핀은 우크라이나와 같은 대우를 받을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중국 때리기에 혈안이 된 트럼프 행정부가 남중국해에서 벌어지는 중국의 도발과 이에 따른 필리핀의 위기 상황을 두고 볼 리 없다는 얘기다.

하노이= 허경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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