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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시크 다음엔 여기가 전쟁터... 뇌-컴퓨터 양방향 학습 세계 처음 선보인 중국

입력
2025.03.07 04:3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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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이어 BCI 기술패권 경쟁 시작
뉴럴링크 앞세운 미국 맹추격 중
로봇·양자와 함께 10대 혁신제품
보편화 전 주도권 잡겠다는 포석
한국엔 임상 가이드라인도 없어

편집자주

우주, 인공지능, 반도체, 바이오, 에너지 등 첨단 기술이 정치와 외교를 움직이고 평범한 일상을 바꿔 놓는다. 기술이 패권이 되고 상식이 되는 시대다. 한국일보는 최신 이슈와 관련된 다양한 기술들의 숨은 의미를 찾고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심층 분석하는 '테크 인사이트(Tech Insight)'를 격주 금요일 연재한다.

BCI는 사람의 뇌와 전자기기를 직접 연결하는 기술이다. 이를 이용하면 사람 생각이나 의도만으로 컴퓨터를 조작하거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쉽게 말해 BCI 칩이 사람의 마음을 읽어 그 정보를 컴퓨터에 전달하는 것이다. 뉴럴링크 제공

BCI는 사람의 뇌와 전자기기를 직접 연결하는 기술이다. 이를 이용하면 사람 생각이나 의도만으로 컴퓨터를 조작하거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쉽게 말해 BCI 칩이 사람의 마음을 읽어 그 정보를 컴퓨터에 전달하는 것이다. 뉴럴링크 제공

지난달 17일 국제학술지 '네이처 일렉트로닉스'에는 세계 최초로 양방향 적응형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기기를 개발했다는 연구 논문이 실렸다. 그동안 개발된 BCI는 주로 뇌가 컴퓨터로 신호를 보내 생각만으로 기기를 조종하는 방식이었지만, 이 논문엔 한발 더 나아가 뇌와 컴퓨터가 신호를 주고받으며 상호학습을 하는 기술을 구현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양방향 BCI는 이 분야 연구자들의 지향점이다. 인간의 뇌가 실시간으로 변하기 때문에 BCI 기기는 오래 사용할수록 성능이 떨어지는데, 기기가 뇌 상태를 학습해 스스로 알고리즘을 개선해 나간다면 효율성과 정확도도 개선되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인간의 뇌 신경망 구조를 모방한 뉴로모픽 반도체를 이용해 뇌와 컴퓨터 간의 상호작용을 만들었다. 10명의 참가자가 이 기기를 착용하고 드론 비행 시험을 한 결과 기존 BCI보다 에너지 소비는 1,000분의 1로 줄어들고 정확도는 20% 더 향상됐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가 BCI 기술의 상용화를 앞당기고 뇌-기계 ‘하이브리드(통합) 지능’의 가능성을 열었다”고 자평했다.

괄목할 만한 연구 성과를 낸 건 다름 아닌 중국 톈진대와 칭화대의 연구진이다. 올해 초 스타트업 딥시크의 고성능 추론형 인공지능(AI) 모델로 세계를 놀라게 한 중국은 BCI 분야에서도 성과를 내며 미국을 빠른 속도로 추격하고 있다. 정부의 지원을 바탕으로 학계는 물론 스타트업에서도 활발한 연구개발(R&D)이 계속되고 있다. 중국이 BCI 기술 표준 선점에까지 나서면서 AI에 이어 BCI 분야에서도 미국과 기술패권 전쟁을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톈진대와 칭화대 공동 연구진이 지난달 17일 국제학술지 '네이처 일렉트로닉스'에 공개한 양방향 적응형 BCI 기술 개념도. 네이처 제공

중국 톈진대와 칭화대 공동 연구진이 지난달 17일 국제학술지 '네이처 일렉트로닉스'에 공개한 양방향 적응형 BCI 기술 개념도. 네이처 제공


빌 게이츠, 제프 베이조스 싱크론 투자

뇌파만으로 기계를 조작하고 사물을 움직이는 기술인 BCI는 여전히 공상과학(SF) 영화에 가까워 보이지만, 이미 1970년대부터 발전돼왔다. BCI 연구는 신체 외부에 기기를 붙여 신경세포(뉴런)에서 발생하는 신호를 읽는 ‘비침습형’ 방식에서 시작해, 최근에는 뇌에 직접 칩을 이식하는 ‘침습형’ 방식까지 나아가고 있다. 톈진대와 칭화대 연구진이 구현한 기기는 기기를 머리에 쓰는 비침습형이다.

미국은 BCI 기술의 선도국이다. 테슬라 창업자인 일론 머스크가 세운 ‘뉴럴링크’가 이 분야의 유명 기업이다. 침습형 BCI의 대표주자인 뉴럴링크는 2023년 5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인간 대상 임상시험을 승인받고 사지마비 환자 3명의 두개골에 ‘텔레파시’란 이름의 칩을 이식하는 데 성공했다. 뉴럴링크는 초정밀 로봇을 이용해 머리카락보다 가느다란 실 형태의 전극을 뇌 표면에 삽입하고 이를 지름 23㎜, 두께 8㎜의 작은 칩과 연결해 신호를 받는다. 실험 참가자들은 생각만으로 체스 게임을 하고 3차원(3D) 물체를 설계하는 등 컴퓨터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게 됐다. 뉴럴링크는 지난해 11월 캐나다 보건부의 임상 승인도 받았다. 2030년까지 2만 명에게 임상과 시술을 하겠다는 계획이다.

[뉴럴링크는 지난해 첫 번째 임상시험 환자의 수술과 적응 과정을 담은 영상을 공개했다. 뉴럴링크 유튜브]

뉴럴링크보다 앞서 BCI 기술 상업화를 추진해온 기업도 있다. 미국 싱크론은 2021년 FDA 승인을 받았다. 싱크론 역시 침습형 방식을 사용하지만, 뉴럴링크처럼 전극을 뇌에 직접 삽입하는 대신 뇌 혈관에 연결하는 '스텐트로드'라는 기술을 개발했다. 2023년부터 영구이식 실험을 시작한 싱크론은 지난해 “참가자 6명이 아마존의 AI 비서 알렉사나 애플의 확장현실(XR) 기기인 비전프로를 이용해 스마트 홈 제어와 컴퓨터 조작에 성공했다”며 “BCI 이식 후 1년간 사망이나 장애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싱크론 역시 대규모 임상을 준비 중이다.

미국 기업들이 앞서 나갈 수 있는 비결은 막대한 투자금이다. 뉴럴링크는 일론 머스크의 투자금 약 1억 달러(약 1,450억 원)를 포함해 최근까지 3억2,500만 달러(약 4,75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싱크론 역시 1억4,500만 달러(약 2,119억 원)를 유치했는데, 투자의 중심에는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와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 같은 빅테크 기업 거물들이 있다. BCI 기술 구현에는 뇌과학 외에도 전기공학·컴퓨터공학·재료공학 등 다양한 기술이 필요한 만큼, 자금력을 바탕으로 인재를 불러모은 것이다. 미국 시장조사 업체 그랜드뷰리서치는 세계 BCI 시장 규모가 2025년 28억3,000만 달러(약 4조1,000억 원)에서 2030년 65억2,000만 달러(약 9조4,700억 원)로 급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래픽=신동준 기자

그래픽=신동준 기자


BCI 국제표준 선점 공들이는 중국

미국에 비하면 중국 BCI 시장의 투자 규모는 작다. 지난달 상하이의 BCI 스타트업인 스테어메드가 중국 시장 최대 규모의 투자를 유치해 화제가 됐는데, 그 규모는 3억5,000만 위안(약 702억 원)이었다. 스테어메드는 자사 침습형 BCI 기기에 대해 “전극 두께가 뉴럴링크의 5분의 1, 임플란트 칩은 절반 크기”라고 광고하며 대항마를 자처하지만, 자금은 미국에 못 미치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 BCI 시장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는 점은 무시할 수 없다. 중국 전자정보산업발전연구원(CCID)에 따르면 지난해 BCI 시장 규모는 32억 위안(약 6,337억 원)으로, 전년 대비 18.8% 성장했다. 2027년에는 시장 규모가 55억8,000만 위안(약 1조1,050억 원)에 이를 전망이다.

빠른 성장의 배경에는 중국 정부의 지원이 있다. 중국 공업정보화부 등 7개 부처는 지난해 1월 휴머노이드 로봇, 양자컴퓨터와 함께 BCI 장비를 10대 혁신제품으로 선정했다. 같은 해 상하이시와 광둥성 등 주요 지방정부는 BCI를 포함한 의학-인공지능 육성 대책도 발표했다. 최근 발전한 딥러닝 기술과 융합해 BCI 기술 발전에 속도를 낸다는 계획이다.

중국은 한발 더 나아가 BCI 분야 국제표준 선점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해 7월 기업과 연구소의 전문가를 초빙해 ‘BCI 표준화 기술위원회’를 만들고 윤리 및 기술표준 제정에 나섰다. BCI가 아직 보편화하지 않은 만큼 미국보다 앞서 주도권을 잡겠다는 포석이다. 국내 BCI 스타트업인 와이브레인의 이기원 대표는 “중국은 국제표준화기구(ISO)의 BCI 표준 제정 회의에서 의장국을 맡는 등 국가 지원으로 국제표준 경쟁에 대비하고 있다”며 "화웨이 같은 대기업도 BCI 기술 개발을 시작하며 적극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기술 구체화부터" vs 개발자 "선제적 규정 필요"

한국은 비침습형 BCI 연구가 진전됐다. 와이브레인의 경두개직류자극 우울증 치료 전자약 ‘마인드스팀’은 전국 병·의원 100곳에 도입됐다. 현대모비스는 뇌파로 운전자의 주의력 감소를 감지하는 기기를 개발하는 등 대기업의 도전도 이어지는 중이다.

그러나 침습형 BCI 연구는 전무하다시피 하다. 임상시험 규정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2023년 ‘바이오헬스 신산업 규제혁신 방안’을 통해 뇌-기계 인터페이스(BMI) 기술 발전 기반을 구축하겠다고 발표했다. 2024년까지 임상 연구와 디바이스 안전성 평가 가이드라인을 제안한다는 계획이 핵심이었지만, 정책 용역이 지난달에야 종료됐다. 또 다른 계획인 △BMI 관련 윤리·사회적 이슈 대응 논의를 위한 민간 자문단 구성 △전주기적 기술 활용을 위한 다부처 협의체 구성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는 “기술이 아직 태동기라 우선 임상 규제에 초점을 두고 있고, 윤리와 관련해서는 기술이 좀 더 구체화하면 논의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연구자들은 그러나 국내 BCI 기술이 경쟁력을 갖추려면 선제적인 윤리·안전성 논의가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재활 및 의료기기로 쓰이는 BCI 특성상 국제표준 제정 과정에서도 윤리가 핵심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관련 검토를 미리 마친 중국의 BCI 기업이 국내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BCI를 연구하는 임창환 한양대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는 “침습형 BCI 구현에 필요한 요소 기술을 갖춘 과학자들과 조만간 연구를 시작할 계획”이라며 “추후 임상시험이 임박할 때 가이드라인을 만들면 시간이 더 지체되는 만큼, 미리 관련 조건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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