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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창주의·보호주의·자화자찬 점철된 의회 연설… ‘트럼프 구상’ 노골화

입력
2025.03.05 21:0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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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렌스키 백기투항 편지 낭독 소개
영토확장·관세정책 강행 의지 확인
“미국 돌아와… 새 대통령 필요했다”
‘정부 지출 감축 주도’ 머스크 칭찬

도널드 트럼프(앞줄) 미국 대통령이 4일 워싱턴 미 연방의회 의사당에서 상하원 합동 회의 연설을 하고 있다. 뒷줄은 상원의장인 JD 밴스(왼쪽) 부통령과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 워싱턴=AF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앞줄) 미국 대통령이 4일 워싱턴 미 연방의회 의사당에서 상하원 합동 회의 연설을 하고 있다. 뒷줄은 상원의장인 JD 밴스(왼쪽) 부통령과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 워싱턴=AF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집권 2기 첫 의회 연설은 팽창주의와 보호주의, 자화자찬으로 점철돼 있었다. 통합 시도는 없었다. 지지 세력만을 의식해 자신의 구상을 더 노골적으로 드러낸 셈이다. 당파적이고 분열적이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강대국 세력권 정치?

트럼프 대통령은 4일(현지시간) 미국 연방의회 상하원 합동 회의 연설을 위해 오른 의사당 연단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보낸 서한을 소리 내 읽었다. 편지에는 “우크라이나는 지속 가능한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가능한 한 빨리 협상 테이블에 앉을 준비가 돼 있다”고 쓰여 있다고 했다. 젤렌스키는 “트럼프 대통령의 강력한 리더십 아래 지속 가능한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일할 준비가 돼 있다”고 적었다. 또 “우크라이나가 주권과 독립을 유지할 수 있도록 미국이 해 준 일이 정말 소중하다”고도 했다.

사실상 백기투항이었다. 지난달 28일 트럼프는 광물 개발권을 가져가려면 안보 보장을 약속하라고 요구하며 자신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구상에 이의를 제기한 젤렌스키에게 “이길 카드도 없이 감사할 줄 모른다”고 면박을 주며 백악관에서 내쫓았다. 전날에는 대(對)우크라이나 군사 원조를 전면 중단하기까지 했다.

반대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존중하는 게 트럼프의 모습이다. 종전 협상 개시 과정에서도 미국은 러시아와 먼저 일대일로 접촉했다. 19세기 제국주의 열강들처럼 세력권을 나눠 가지려 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불러일으킨 행보였다. 트럼프는 이날도 “러시아와 진지한 논의를 해 왔고 그들이 평화를 이루기 위해 준비돼 있다는 강한 신호를 받았다”며 강대국을 편들었다.

“관세는 美 영혼도 보호”

팽창주의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은 이뿐 아니다. 트럼프는 연설에서 파나마운하와 그린란드를 미국 영토로 편입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했다. 특히 덴마크 자치령 그린란드에 대해선 종전과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다. 그린란드 주민을 상대로 “미국은 그린란드의 여러분을 안전하게 지키고 부유하게 만들 것”이라며 “여러분이 상상조차 못한 발전에 이르도록 하겠다”고 공약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정부효율부(DOGE)의 수장이자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가운데)가 4일 워싱턴 미 연방의회 의사당에서 상하원 합동 회의 연설을 하던 트럼프 대통령의 소개를 받고 거수경례로 청중의 환호에 화답하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정부효율부(DOGE)의 수장이자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가운데)가 4일 워싱턴 미 연방의회 의사당에서 상하원 합동 회의 연설을 하던 트럼프 대통령의 소개를 받고 거수경례로 청중의 환호에 화답하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보호주의 관세 정책 고수 의지도 거듭 천명됐다. 트럼프는 “다른 국가들이 수십 년간 우리에게 관세를 부과해 왔고 이제는 우리가 그들에게 관세를 부과할 차례”라고 선언했다. 집권 1기 때 부과한 철강 관세 수혜자 대표로 초청된 앨라배마주(州) 철강 노동자를 소개하면서는 “관세는 미국 일자리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영혼을 보호한다”고 말했다. 이런 발언은 이날 발효된 멕시코·캐나다·중국 제품 대상 신규 관세 탓에 금융시장이 동요하고 경제 전문가들의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나왔다. 다만 시장의 불안감을 의식한 듯 “관세는 미국을 다시 부유하고 위대하게 만들 수 있다”며 “약간의 혼란이 있을 수 있지만 별로 심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분간만 ‘참아 달라’고도 했다.

이날 연설은 취임 뒤 43일간 성과 자랑에도 상당 부분이 할애됐다. “미국이 돌아왔다”는 선언을 시작으로 자찬을 이어 간 트럼프는 급감한 불법 월경 건수를 부각하며 자신의 행정부가 “미국 역사상 가장 전면적인 국경·이민 단속에 착수했다”고 주장했고 “우리에게 필요했던 것은 새 대통령뿐”이었다며 공화당 의원들의 박수를 유도하기도 했다.

부풀린 구조조정 성과

트럼프에 버금가는 각광을 받은 이는 정부효율부(DOGE) 수장을 맡아 연방정부 구조조정과 인력 감축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였다. 트럼프가 “아주 열심히 일하고 있다”며 칭찬하자, 평소와 달리 정장을 입고 온 머스크가 자리에서 일어나 거수경례로 청중의 환호에 화답했다. 트럼프는 DOGE의 실적을 소개하며 “수천억 달러(수백조 원) 규모의 사기를 적발했다”고 내세웠으나,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90억 달러(약 13조 원)가 지금껏 집계된 수치이며 그마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언론은 당파성에 주목했다. AP통신은 “대통령 의회 연설은 보통 통합을 요청하는 시간이지만 대선 승리 자축 및 민주당 비판으로 채워진 트럼프 연설은 집요하게 당파적이었다”고 분석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양당 의원 대다수가 중국이 미국의 최대 위협이라는 데 동의하고 있는데도 트럼프는 중국을 거의 거론하지 않았다”고 짚었다.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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