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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미국이 아니다

입력
2025.03.10 00:20
26면

편집자주

재미학자의 입장에서 한국의 사회, 정치, 경제, 외교, 안보 등에 관한 주요 이슈를 다루고자 한다.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바라보는 한반도의 모습과 상황을 진단하고 미래에 나아갈 방향을 글로벌 시각에서 제시하려 한다.



미국 이익 약탈적으로 챙기는 트럼프 2기
'노벨상 후보' 추천 등 안이한 접근 버리고
냉혹한 현실 인식과 면밀한 준비 나서야


미국 워싱턴 재무부 앞에서 열린 일론 머스크 반대 집회 참석자들이 그를 비난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최근 미국 국제개발처(USAID)를 통제하는 등 폭주 행보를 보이는 머스크가 자신이 이끄는 정부효율부(DOGE)에 반대하는 모든 사람을 조롱하고 압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AP

미국 워싱턴 재무부 앞에서 열린 일론 머스크 반대 집회 참석자들이 그를 비난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최근 미국 국제개발처(USAID)를 통제하는 등 폭주 행보를 보이는 머스크가 자신이 이끄는 정부효율부(DOGE)에 반대하는 모든 사람을 조롱하고 압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AP

요즘 미국 내 주요 뉴스는 정부효율부(DOGE)의 광폭 행보와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을 둘러싼 파열음이다. 일론 머스크가 수장인 DOGE는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하듯이 정부 조직과 예산을 마구 흔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고성이 오가는 설전을 벌였다.

DOGE가 꺼내 든 구조조정 핵심은 대대적 감원과 대폭적 예산 삭감이다. 이미 수만 명을 해고한 머스크는 연방정부 공무원 230여 만 명을 상대로 경고장을 날렸다. 업무성과 보고 명령에 불응하면 해고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해외원조를 담당하는 정부기관인 미국국제개발처(USAID)의 경우, 직원 수가 1만 명에서 300명 수준으로 줄어들며 해체 수순을 밟고 있다. 대통령이 되기 전 트럼프를 유명하게 만든 리얼리티 쇼의 '넌 해고야(you’re fired)'를 보는 느낌이다.

예산도 마찬가지이다. 저소득층 의료보험과 학자금 대출 프로그램부터 미 항공우주국(NASA)까지 전방위적으로 예산을 삭감하고 있다. 의료기술혁신의 핵심인 미 보건기구(NIH)와 연구자를 지원하는 과학재단(NSF)도 칼날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DOGE는 이러한 삭감을 통해 총 2조 달러를 줄이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DEI) 프로그램을 폐지할 뿐 아니라, 이를 이행하지 않는 학교 등에는 정부 예산을 지원하지 않겠다고 했다.

종전 협상에서 미국은 당사자인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유럽도 배제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는 러시아 침략에 대한 언급이 빠진 결의안을 주도하며 친러시아 행보마저 보이고 있다. 전쟁지원 대가로 요구하고 있는 광물 협정이 이루어질 경우 우크라이나는 희토류를 비롯해 광물, 가스, 원유 등 천연자원 및 기반시설에서 창출하는 수입의 절반을 미국에 넘겨야 한다. 반면 우크라이나가 요구하는 안전 보장이나 나토 가입엔 매우 소극적이다. 종전을 통해 지역 내 평화와 안정보다는 미국의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겠다는 속내가 보인다.

지난 2개월간 트럼프 행정부의 거침없는 행보가 한국에 주는 함의도 심상치 않다. 공무원에게 정책 능력이나 애국심보다는 기계적 효율성과 권력에 대한 충성을 요구하고,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 편을 드는 언행도 서슴지 않는 트럼프가 한국을 어떻게 대할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이미 지난주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군사적 도움을 받으면서도 미국보다 4배나 많은 관세를 부과한다고 지적했으며 4월 2일엔 모든 국가에 '상호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했다.

한국을 '머니 머신'으로 규정한 바 있는 트럼프는 조만간 억지 논리를 펴며 막대한 안보청구서를 내밀 것이다. 북한과의 직거래나 미군 철수를 거론하며 이를 한국과의 협상에서 압박 카드로 활용할 수도 있다. 갑질이 일상화된 트럼프 2기는 더 이상 우리가 알던 미국의 모습이 아니다. 트럼프와 설전을 벌였던 젤렌스키도 군사지원 중단이라는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백기를 들었다. 트럼프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해 환심을 사겠다는 식의 안이한 생각은 버려야 한다. '미국 최우선주의'가 몰고 온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고 차분하고 면밀한 준비로 변화된 미국을 마주해야 한다.

신기욱 미국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 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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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욱미국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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