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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귀연 부장판사, 윤 대통령 구속 요건 다시 검토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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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서울 성동구 한양대 제2법학관에서 박찬운 교수가 윤석열 대통령 구속 취소 결정을 비판하고 있다. 최주연 기자
묘하게 닮았다. 2004년 10월 헌법재판소는 신행정수도특별법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렸다. 조선왕조의 경국대전까지 인용하며 '한국의 수도가 서울이라는 건 관습헌법이니 행정수도 건설은 헌법개정 사안'이라 했다. 10장 130조로 구성된 헌법전이 존재하는 나라에서 '관습'이라는 불문헌법 논리를 들이댄 것. 일부 헌법학자들이 이를 옹호하자 여기저기서 "한국은 성문헌법 국가라고 써둔 당신들이 쓴 헌법 교과서부터 버리란 말이냐"는 아우성이 쏟아졌다.
2025년 3월 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부장 지귀연)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 내린 구속취소 결정도 마찬가지다. 형사소송법에 따라 구속 기간을 날로 계산하는 일을 70년간 해왔는데 갑자기 날이 아닌 시간으로 계산해야 한다는 윤 대통령 측 주장을 법원이 받아들인 것. 그러자 검찰 공무원 시험을 앞둔 이들 사이에선 "날로 계산한다고 배웠다"는 한탄이, "지귀연 부장판사 자신이 집필에 참여한 형사소송법 해설서부터 바꾸라"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 11일 박찬운 한양대 로스쿨 교수의 연구실은 찾은 건 그래서였다. 박 교수는 대학 재학 중이던 1984년 사법시험을 통과한 뒤 인권 변호사로 활동했고 국가인권위원회 정책국장, 상임위원을 지냈다. 아직 군부독재의 그림자가 남아 있던 80년대 말, 90년대 초 인권 변호사들에겐 수사기관의 불합리한 구속을 어떻게 막을 것이냐가 주된 화두 중 하나였다. 박 교수도 그 시절 이 주제에 집중해 '한국 감옥의 현실' '국제인권원칙과 한국의 행형(行刑)' 등의 책도 써냈다.
하지만 요즘 그는 '구속 피의자 인권 개선에 한 획을 그은 결정'이라는 슬픈 농담이 나도는 3·7 구속취소 결정을 비판하느라 바쁘다. 윤 대통령 구속 이후 뜸해졌던 '내란 불면증'이 다시 도졌다는 박 교수에게 이번 사태에 대해 물었다.
구속취소 결정인데 취소 사유를 안 다뤘다
-이번 구속취소 결정은 왜 문제인가.
"구속취소 여부는 가장 기본적으로, 말 그대로 구속 필요성에 대한 판단이어야 한다."
-증거 인멸, 도주 우려 같은 걸 말하는 건가.
"맞다. 구속 필요 사유는 증거 인멸, 도주 우려, 주거 부정 세 가지다. 그 때문에 구속을 했다면, 거꾸로 구속을 취소할 때도 그 문제에 대한 판단을 밝혀야 한다. 그런데 그에 대한 설명이 없다. 구속취소를 결정했는데 정작 구속취소 사유는 다루지 않은 셈이다."
구속취소 결정으로 지난 8일 석방된 윤 대통령이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뉴스1
-법원은 구속 기간 계산 문제, 공수처 수사권 문제를 들었다.
"기간 계산 문제로 검찰 단계 구속영장 효력이 다했다면, 그냥 구속취소만 할 게 아니라 구속재판이 필요한지 여부를 새롭게 판단해서 직권구속해야 했다. 공수처 수사권 문제는 1심 재판이 본격화되면 양측 주장을 다 들어보고 판단할 문제지 아무리 생각해도 구속취소 사유로 보기 어렵다. 그게 그렇게 심각한 문제라면 차라리 1심 재판을 진행하다 아예 공소기각을 하면 된다. 아직 재판이 본궤도에 오르지도 않았는데 구속을 취소하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공소기각은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
"공소기각은 기판력이 없어 일사부재리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검찰이 다시 기소하면 된다. 물론 논리적으론 그래도 실제 그럴 경우 윤 대통령 측은 불법 수사요, 무죄라 주장하면서 얼마나 큰 혼란이 일어나겠나. 또 체포와 구속 과정에서 법원이 여러 차례 공수처 수사권을 인정했기 때문에 1심이 그런 선택을 하긴 어렵다고 본다."
구속 필요하다면 법원이 직접 구속했어야
-1심은 '지금 윤 대통령 구속이 필요한가'라는 판단을 회피한 건가.
"그렇다. 백번 양보해서 검찰이 기소할 때 이미 구속영장의 효력이 끝났는데 검찰이 그것도 모르고 기소했고 법원도 이제껏 그걸 몰랐다, 그러니 이 문제를 한번 털고 가자, 라고 판단을 굳혔다면 그다음에 '그러면 지금 구속이 필요한가'를 판단하는 한 단계가 더 필요했다."
-재판이 시작된 현 단계에선 1심이 직접 판단해야 했다?
"일단 기소되고 재판이 시작되면 인신 구속 여부에 대한 판단과 책임은 법원으로 넘어온다. 수사단계의 구속이 문제라서 취소하겠다면 윤 대통령이 저지른 범죄의 중대성, 증거인멸과 도주의 우려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구속취소와 동시에 법원이 직권으로 재구속해야 마땅하다는 얘기다. 구속이 필요한 사유에 대한 판단도 하지 않고 구속을 취소한 건 사실상 이 사건을 불구속으로 진행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회원들이 9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앞에서 윤 대통령의 석방 및 즉시항고 포기를 지휘한 심우정 검찰총장 등에 대한 고발장 접수에 앞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체포, 구속 과정에서 보여준 윤 대통령의 저항, 그리고 그 지지자들이 벌인 서부지법 폭력 사태 같은 걸 보면 1심 결정은 대체 무슨 생각인 건지 고개가 갸우뚱한다.
"맞다. 내란 부하들은 모두 구속돼서 재판을 받고 있는데 그 우두머리는 불구속 재판을 받는 것도 문제일뿐더러 체포와 구속 과정에 얼마나 많은 사회적 갈등과 비용이 들어갔나. 그 지난한 과정을 다 지켜봤으면서도 구속이 필요한 사유를 판단하지 않았다? 석방되더라도 어쩔 수 없다? 너무 이례적이고 너무 석연치 않은 결정이다."
-법원이 직권으로 구속할 수 있다면 다음 내란 재판에 출석했을 때 구속하면 되는 거 아닌가.
"가능하긴 한데 현실적 가능성은 낮다고 봐야 한다. 풀어줄 땐 언제고 왜 다시 구속하느냐고 반발이 엄청 일어날 것이다. 그러니 구속취소를 하는 즉시 직권으로 구속했어야 했다는 얘기다."
'날' 아닌 '시간' 기준 적용은 법원 권한 밖
-중앙지법에서도 서부지법 난입 폭력 같은 일이 벌어질 수도 있겠다.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되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1심 재판이 진행되면서 구속 여부를 다시 판단해야 할 때가 온다. 불구속 재판으로 진행하기엔 윤 대통령과 외부 지지세력이 그간 보여온 언행이 매우 위험해서다. 만반의 대비가 필요하다."
-구체적으로 우선 구속 기간 문제를 보자. 영장실질심사 때 그 기간만큼 구속 기간을 늘려주되 '날'이 아니라 '시간'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 했다.
"이제껏 날을 기준으로 해왔다. 형사소송법 명문 규정이 그렇다. 지금까지 형사사건 처리도 그렇게 해왔다. 명문 규정이 뻔히 있고, 현실에서 변함없이 적용됐는데 그걸 무시하고 시간 기준 주장을 받아들였다? 그건 입법 사항이지 법원의 판사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지난 12일 국회 법사위에 출석한 오동운 공수처장이 윤 대통령에 대한 구속 취소 결정을 반박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구속적부심과 달리 체포적부심 기간은 구속 기간에서 빼주라는 명문 규정이 없다 했다.
"아니다. 형사소송법 214조의 2의 제13항인데, 13항에 보면 구속적부심과 체포적부심의 경우 그 심사 기간은 구속 기간에서 빼야 한다고 해뒀다. 해당 조항을 대체 어떻게 읽어야 그런 말이 나오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인권 측면에서는 시간으로 하는 게 더 좋지 않은가.
"그런 측면이 있는 건 사실이다. 가령 영장실질심사가 20시간 정도 걸렸는데 날로 계산하다보니 실질적으로는 이틀(48시간)이 빠질 수 있다. 그만큼 구금 기간이 길어지니까 시간으로 계산하는 게 인권친화적이긴 하다. 하지만 법 규정이 그런 이상 그건 법률 개정 사항이다. 요즘 피의자들 웬만하면 영장실질심사 다 받는데 그 사건들 모두 다 끄집어내 다시 시간 기준으로 계산할 건가. 다시 계산해보니 불법구금이었다면 재심 청구, 국가 손해배상 청구 다 받아줄 건가."
대법원 판단받아 보려 했다? 1심이 무책임하다
-공수처 수사권 문제는 어떤가.
"재판 과정에서 가장 큰 쟁점이 되리란 예상은 많았다. 윤 대통령 변호인단이 지속적으로 문제제기해온 사안이니까. 그래서인지 1심 재판부도 이 문제를 중요시한 것 같다. 이번 1심 결정을 보면 공수처 수사권 문제를 구속 취소 사유로 직접 연결하긴 어려우니까 구속 기간 계산 문제를 앞세우고 공수처 수사권 문제를 덧붙이는 형태로 논리를 만든 것 같다. 하지만 거듭 얘기하듯 이 문제는 1심 재판 과정에서 양측이 다툴 문제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11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 동십자각 앞에서 열린 비상결의대회 및 1박2일 농성투쟁에서 윤석열 대통령 구속취소 규탄과 탄핵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1심은 이번 사건이 워낙 중대하니 공수처 수사권 문제 같은 건 미리 대법원 판단을 받아 재판이 본격화하기 전에 확실히 매듭짓고 싶어 한 것으로도 보인다. 검찰이 당연히 항고할 것이란 가정 아래. 너무 순진했던 건가.
"1심 결정에 그런 측면이 있어 보이는 건 맞다. 그런데 재판이란 건 기본적으로 1, 2, 3심 각 심급별로 각자 책임지는 거다. 1심 판사가 상급심 판단을 기대하면서 재판을 진행한다는 건 심급의 원칙에 위배되는 매우 무책임한 행동이다. 결론이 무엇이든 1심은 1심대로 최선을 다해 판단해야 한다. 그리고 검찰이 만약 항고에 재항고를 했다 한들 대법원이 그 문제에 대해 대답할까? 나는 부정적으로 본다."
-어째서 그런가.
"아까 말했듯 구속 취소 결정은 구속 사유에 대한 판단이다. 공수처 수사권은 직접적 이유가 되기 어렵다. 대법원이 '그건 즉시 항고에서 다룰 대상이 아니다'라고 하면 그만이다. 만약 대법원이 공수처 수사권 문제를 다루면 사실상 1심 재판에 관여하는 모양새가 될뿐더러, 어차피 3심에서 다룰 문제다. 그걸 두고 대법원이 '지금 이 문제가 중요하다니까 우리가 먼저 판단해주자'라고 할까. 난 아니라고 본다."
항고하지 않는 검찰, 검찰이길 포기했다
-검찰은 '위헌 가능성'을 이유로 항고를 포기하고 석방했다.
"어처구니없다. 검찰 역사상 대체 언제 그런 적 있었나. 설사 위헌 가능성이 높은 법 조문이라 해도 법 조문이 살아있는 한 끝까지 싸워서 마지막 판단까지 받아보는 게 검찰이다. 더구나 이렇게 큰 사건에서 즉시항고는 물론, 보통항고도 안 하겠다? 그건 검찰이 검찰이길 포기한 거다. 국민 눈높이에서 보자면 윤 대통령 내란 사건에 대한 공소유지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심된다. 검찰총장이 직권남용, 직무유기로 고발당해도 할 말 없다. 더군다나 검찰은 법원과 달리 사법을 넘어선 판단도 함께 해야 한다."
-사법 외 판단은 어떤 것인가.
"윤 대통령 석방은 극우를 자극하는 행위다. 당장 서부지법 폭동 혐의자들이 자기네 재판에서 '나도 구속취소시켜달라' '공수처 수사가 위법하니까 거기에 저항한 건 공무집행 방해가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법원과 달리 검찰은 구속취소 결정의 여파, 국가적 혼란 상황의 최소화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윤 대통령 석방을 지휘한 심우정 검찰총장이 지난 1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뉴스1
박 교수는 "구속집행정지나 보석의 경우 조건을 위반하면 재구속되지만 구속취소는 다른 구속 사유가 없는 한 재구속할 수 없다"며 "그간 검찰이 구속취소에 대해 즉시항고를 해온 건 그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위헌 가능성은 구차한 변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일선에서 혼란이 일자 대검에선 ‘일단 날짜 기준을 유지하라’고 지침을 내렸는데.
“병 주고 약 주는 격이다. 항고 없이 석방을 지휘한 건 윤 대통령을 무조건 석방하겠다는 모종의 결단 없이는 설명이 안 된다. 국회에 출석한 법원행정처장마저 항고해서 상급심의 판단을 받아보라고 얘기하지 않나.”
-애초 공수처가 아니라 '검경 합수부'가 수사해야 했다, 공수처가 괜히 끼어들었다고도 한다.
"그렇다면 검찰이 공수처의 이첩 요구에 응하지 말았어야 했다. 이첩했다는 것 자체가 소극적이나마 검찰 또한 공수처의 수사권을 인정했다는 얘기다. 물론 공수처법 자체의 문제도 있다. 대통령은 공수처 수사대상이라 해놓고선 재임 중 수사할 수 있는 유일한 죄인 내란, 외환죄를 뺐다. 설마 현직 대통령이 그러겠냐, 했던 거다. 공수처의 수사역량에 대한 의문도 있다. 하지만 검찰에 대한 불신은 강했고 특검은 정부 여당이 틀어막은 상태였다. 그런 상황도 함께 봐야 한다."
지리한 법리 논쟁, 내란 사태 가리는 본말전도다
-다시 '내란 불면증'을 호소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12월 3일 밤 계엄을 선포하던, 관저에서 저항하던, 구속 수감되던 윤 대통령의 모습이 생생한데, 아직까지 법리 논쟁만 반복하는 걸 보고 홧병 난다는 이들도 있다.
"지금은 본말이 전도된 상황이다. 국민 요구는 간단하다. 12월 3일 밤 그런 일이 벌어졌다, 더 이상 윤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다, 파면되고 처벌받아야 한다, 그거다. 사법 영역에 관여하는 이들은 이런 국민적 요구를 충족시켜 줄, 이 과정을 잘 이끌어나갈 책임과 의무가 있다. 판사, 검사, 경찰 그 어느 누구도 이 책임과 의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 쪽에서 내놓는 기괴한 법률적 허들과 궤변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 모두가 비겁하고 무책임한 것이다. 그런 태도는 법에 대한 실망을 넘어 불신만 안길 것이다."
윤 대통령 석방에 힘입은 지지자들이 지난 11일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탄해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윤 대통령 체포, 구속 국면에서 국가인권위원회의 활약(?)도 대단했다.
"윤 대통령의 방어권을 보장하라, 같은 주장을 듣곤 참담했다. 변호인 조력을 충분히 받고 있는 국가 최고 권력자를 약자로 간주한다는 것 자체가 인권위의 존립 취지에 대한 부정이다. 인권위 역사상 가장 치욕스러운 순간으로 기록될 것이다. 내란도 내란이지만 개인적으로 윤석열 정부의 가장 큰 죄악은 인권위 사례처럼 공식 국가기구를 망쳐놨다는 데 있다고 본다."
-인권위뿐만이 아니긴 하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국민권익위원회, 감사원, 여성가족부 등 한두 곳이 아니다. 대통령에겐 국가 기관을 잘 운영해야 할 헌법적 책임이 있다. 그런데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여러 기관들을 고의적으로 무력화했다. 여가부는 차관 체제고, 방통위는 아직도 2인이고, 인권위는 지난해 8월 임기가 끝났는데도 국회가 본회의 의결로 합의한 후임을 임명해주지 않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상임위원이 있을 정도다."
-마은혁 헌법재판관 임명은 헌재 위헌 결정에도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정치적으로야 싸우더라도 국회에서 합의한 인사들은 모두 임명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자기네 마음에 안 들면 다 무력화했다. 대통령제 국가에선 누가 뭐래도 국가기관에는 대통령 뜻이 관철되는데도 그렇게 했다. 내란이 드러난 죄라면 국가기관 무력화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내란 못지않은 큰 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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