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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 투쟁' 한다고 尹 탄핵될까... 정치인이 대중 앞에서 밥 굶는 이유

입력
2025.03.16 10:00
수정
2025.03.16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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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석방에… 김경수 '광화문 농성' 돌입
탄핵 국면에 유행처럼 번지는 '단식 투쟁'
"단식한다고 죽은 사람 없다"는데, 왜?

편집자주

여의'도'와 용'산'의 '공'복들이 '원'래 이래? 한국 정치의 중심인 국회와 대통령실에서 벌어지는 주요 이슈의 뒷얘기를 쉽게 풀어드립니다.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10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 인근에서 윤석열 대통령 파면을 촉구하며 단식 농성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10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 인근에서 윤석열 대통령 파면을 촉구하며 단식 농성 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후의 정치투쟁 수단'으로 불렸던 단식이 또다시 정치권 전면에 등장했습니다.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윤석열 대통령이 석방되자 '내란우두머리 윤석열 파면 촉구' 단식 농성을 시작했고, 민주당 일부 의원들도 곡기를 끊고 동참했습니다. 얼마 전 여당에서는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이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하지 말라'며 국회 내 단식 농성을 하기도 했습니다. '탄핵 정국'과 맞물려 바야흐로 단식 대유행의 시대입니다.

"단식한다고 죽은 사람 없더라." 산전수전 다 겪은 최고령 국회의원인 박지원 민주당 의원의 말입니다. 단식이 이젠 더 이상 '왕년의 단식'이 아니라는 평가지요. 요즘 단식을 독재정권과 맞서 싸운 김영삼(YS)·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단식과 비교하긴 무리가 있습니다. 이런 대중의 평가를 여론에 민감한 정치인들도 모를 리 없을 것 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왜 여전히 스스로 곡기를 끊는 자학을 하는 것일까요? 단식의 행간을 읽어보겠습니다.

이재명(왼쪽)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2일 서울 광화문 인근 천막에서 윤석열 대통령 파면을 촉구하며 단식 농성에 돌입한 김경수 전 경남지사를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왼쪽)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2일 서울 광화문 인근 천막에서 윤석열 대통령 파면을 촉구하며 단식 농성에 돌입한 김경수 전 경남지사를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尹 싸울 때 뭐 했나"… 김경수의 대답은

16일 김경수 전 경남지사의 단식이 8일 차에 접어들었습니다. 김 전 지사는 윤 대통령이 석방된 다음 날 9일 오후 9시 페이스북을 통해 탄핵이 인용될 때까지 무기한 단식 투쟁을 선언했습니다.

"내란우두머리 윤석열 파면 촉구 단식 농성을 시작합니다. 내란 공범인 심우정 검찰총장을 즉각 수사하고 검찰을 완전히 개혁해야 합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위태롭습니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국민과 함께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김경수 전 경남지사 페이스북

참모들은 단식을 만류했다고 합니다. 김 전 지사 측 관계자는 "단식 말고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고 말렸지만 본인 의지가 너무 강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김 전 지사는 말리는 참모들에게 "광화문에 지금 단식을 하고 계시는 시민들이 계시는데,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힘을 보태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고 합니다.

김 전 지사가 누굽니까. '서울대 86학번' '운동권 지도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 '민주당 소속 최초 경남지사' '문재인 전 대통령의 복심' 등 그를 둘러싼 화려한 수식어가 보여주듯, 그야말로 민주당의 '친노-친문'의 적통을 상징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김 전 지사의 화양연화는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에 휘말리면서 2021년 7월 대법원에서 징역 2년 확정 판결을 받고 조기에 막을 내렸습니다. 2022년 12월 5개월의 복역기간을 남기고 윤 대통령에 의해 출소당했습니다. 김 전 지사는 당시 "받고 싶지 않은 선물을 억지로 받았다"고 항의했습니다. 이후 김 전 지사는 "깊이 성찰하고 고민하겠다"며 영국으로 유학을 떠납니다.

김 전 지사가 다시 대중에게 돌아온 것은 2년 뒤 12·3 불법계엄으로 '조기 대선' 가능성이 부각된 시점입니다. 김 전 지사는 이재명 대표를 향해 "지방선거와 총선과정에서 치욕스러워하며 당에서 멀어지거나 떠나신 분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기꺼이 돌아오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노·문 전 대통령을 폄훼한 당사자들의 반성과 사과는 물론, 재발 방지 노력이 필요하다"고 요구했습니다. 이 대표와 제대로 각을 세우기 시작한 것이죠. 하지만 지지층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심지어 박선원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윤석열에 사면받은 자" "윤석열에 의해 탄압받은 자"라는 글을 올려 김 전 지사를 저격했습니다.

'매불쇼' 출연한 김 전 지사

최욱MC : 윤석열 정부와 국민이 싸울 때 지사님은 어디에 있었나. 지금 와서 권력자가 되려 하느냐. '통합'이라는 모호한 말로 이상한 세력과의 규합을 꿈꾸는 것 아니냐. 오히려 그런 것들이 분탕질하는 것 아니냐는 정서가 있습니다.

김 전 지사 : 윤 대통령이 사면은 해주고 복권은 안 시켜줬습니다. 그래서 복권이 안 되면 정치활동을 할 수가 없는 거죠.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제 부족한 것도 채우고 국내 정치에만 매몰돼 있으니 세계 흐름이나 이런 것도 보고 오면...

최욱MC : 말을 끊어서 죄송한데, 복권이 안 되면 정치를 못 하는 게 아니고 출마를 못 하는 거죠. 다른 방법으로 윤석열 정권과 싸울 수 있잖아요.

김 전 지사 : 그 부분은 제가 국민들께 송구한 부분입니다.

3월 4일 유튜브 채널 '매불쇼'

김 전 지사로서는 돌파구가 필요했습니다. 마침 윤 대통령이 석방됐고, 김 전 지사는 누구보다 빠르게 기회를 포착했습니다. 윤 대통령이 탄핵된다면, 김 전 지사는 '당신은 정치인으로서 무엇을 했느냐'는 질문에 '무엇을 했다'고 답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일각에서는 "어차피 며칠짜리 디톡스 단식 아니냐"는 비아냥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단식을 한 것과 하지 않은 것은 다릅니다. 단식의 목적이 자신의 공백을 속죄하는 것이든, 지지층의 탄핵 염원에 공감하는 것이든, 뭐가 됐든 간에 김 전 지사는 민주당 대권 주자로서 탄핵 정국 속에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습니다. 민주당 관계자는 "단식은 원외 정치인인 김 전 지사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카드였다"며 "앞으로는 '왜 김경수인가'를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윤석열탄핵국회의원연대 소속 의원들이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경복궁 서십자각 인근 농성장에서 윤석열 대통령 파면 촉구 및 헌정수호를 위한 단식 농성에 돌입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왼쪽부터 한창민 사회민주당, 민형배·박수현 더불어민주당, 윤종오 진보당, 김준혁·강득구 민주당 의원. 뉴시스

윤석열탄핵국회의원연대 소속 의원들이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경복궁 서십자각 인근 농성장에서 윤석열 대통령 파면 촉구 및 헌정수호를 위한 단식 농성에 돌입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왼쪽부터 한창민 사회민주당, 민형배·박수현 더불어민주당, 윤종오 진보당, 김준혁·강득구 민주당 의원. 뉴시스


삭발하고, 전한길도 등장… 與도 野도 '단식'

민주당 박수현 민형배 김준혁 의원과, 진보당 윤종오 의원도 탄핵을 촉구하는 단식에 동참했습니다. 개인적 차원의 계기도 있었겠지만, 이들의 단식은 정국 구도 속에서 이해하는 것이 더 적합합니다. 윤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석방으로 민주·진보 진영 유권자들은 기절할 듯 놀랐습니다. 윤 대통령이 구치소를 나와 주먹을 불끈 쥐는 모습은 그들에게 공포영화 그 자체였습니다. '이러다 탄핵이 불발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엄습했습니다.

민주당은 이런 지지층의 불안에 '반응'해야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지지층의 불안에 공감하면서도, 동시에 그 불안감을 발판 삼아 결집을 도모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곧장 비상체제에 돌입했고, '촛불 혁명'의 상징적 공간인 광화문 앞에 농성장까지 차렸습니다. 일부 의원들이 삭발을 하고 단식에 나선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윤 대통령 석방 이후 의원실 간이 침대에서 숙식을 하고 있는 한 민주당 의원은 "지지층이 많이 불안해하는데 당이 뭐라도 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습니다.

한국사 강사 전한길(왼쪽 세 번째)씨가 3일 국회 로텐더홀에서 마은혁 헌법재판관 임명을 반대하며 단식 농성 중인 박수영 (왼쪽 두 번째) 국민의힘 의원을 방문해 대화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한국사 강사 전한길(왼쪽 세 번째)씨가 3일 국회 로텐더홀에서 마은혁 헌법재판관 임명을 반대하며 단식 농성 중인 박수영 (왼쪽 두 번째) 국민의힘 의원을 방문해 대화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앞서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의 단식도 명분만 빼고 보면 민주당의 단식과 다르지 않습니다. 윤 대통령 탄핵 반대를 주장하는 국민의힘 지지층 입장에서는 야권이 추천한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은 받아들일 수 없는 사안입니다.

결국 박 의원이 총대를 메고 국회 내에서 단식에 돌입했습니다. 박 의원은 지난 2일 “야당의 마은혁 임명 압박은 탄핵 겁박의 전초전”이라며 “최 대행이 여야 합의 없는 마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힐 때까지 국회 본관에서 무기한 단식 농성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부정선거' 음모론을 주장하며 불법계엄을 옹호한 한국사 일타강사 전한길씨가 격려 방문을 오는 등 박 의원의 단식은 탄핵 반대 지지층에서 호응을 이끌어 냈습니다. 박 의원은 단식 5일 차인 지난 6일 의료진의 반대와 지도부의 설득으로 단식을 중단했습니다.

하지만 박 의원의 단식 투쟁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주장입니다. 지난달 27일 헌법재판소는 마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는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마 후보자 임명 보류는 국회의 재판권 선출 권한을 침해했다"고 전원일치 판결을 내렸습니다.

정치인의 단식은 자유입니다. 그 이유가 존재감을 높이는 것이든, 지지층에 호소하는 것이든 뭐라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단식을 바라보는 유권자들의 판단 역시 자유입니다. 조기 대선 가능성이 거론되는 시국입니다. 유권자들은 어떤 이의 굶주림에 더 호응하게 될까요.


김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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