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새로운 '먹거리 산업'으로 거론되지만, 불확실성도 여전한 한국 바이오 산업. 바이오 분야 '1호 교수 창업자'이자, 지난 27년간 글로벌 수준의 과제에서 성패와 영욕을 경험한 김선영 교수가 우리 산업 생태계의 이슈와 문제점을 진단하고 세계 진출 방안을 모색한다.
신약개발과 스타트업 – 미국 사례(2)
스타트업, 항체기술 고도화 주역
글로벌 의약시장 성장도 견인
NGS 개발, 정밀·맞춤 의료 가능

그래픽=강준구
지난번 글에서 다룬 바이오텍 벤처의 원조 제넨텍은 대학 연구실과 기초과학의 "상자"에 갇혀 있던 생명과학을 현실 세계로 끌어 낸 "판도라"였다. 이제 과학자들은 앙트레프레뉴어들과 손잡고 스타트업을 만들어, 이전에는 듣도 보도 못했던 방법으로 신약을 개발하고 있다. 학술 논문 발표에 국한되었던 그들의 창의성과 에너지가 시장으로 분출되어 시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켜줄 제품개발에 사용되고 있다.
이와 관련, 항체의약과 게놈·생명정보 사업의 경우를 살펴보자. 2024년 매출액이 가장 큰 의약 10개 중 5개는 항체의약이다. 항암제 키트로다는 2024년 매출이 295억 달러다. 요즘 환율로 40조원이 넘는다. 우리 정부 예산의 16%에 해당하는 액수이다. 의약개발 소재로서 항체의 강세는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처음으로 승인된 항체의약은 장기이식 수술 때 거부반응을 최소화하기 위해 사용된 OKT3였다(1986년). 존슨앤존슨의 자회사가 개발한 이 항체는 원래 연구와 진단에 사용되던 것이다. 이 항체는 쥐로부터 온 것이었기 때문에 안전성과 효능 면에서 개선의 여지가 많았다. 두 번째 항체의약이 나오기까지 8년의 세월이 흘러야 했다.
과학자들은 항체를 최대한 인간 형태에 가깝게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 작업의 대부분은 스타트업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 다음으로 나온 항체의약은 쥐와 인간의 키메릭 형태였다. 스타트업으로 출발한 센터코와 제넨텍이 개발한 심장치료제 레오프로(1994년)와 항암제 리툭산(1997년)이 그 것이다. 각각의 최고 매출액은 2024년 13억달러, 2015년 75억달러이다.
키메릭보다 인간에 더 가깝게 만들려는 노력이 계속되며 항체는 점점 "인간"에 가까워졌다. 지극히 일부만 쥐 부분을 쓰고 나머지는 모두 인간 정보를 사용한 항체가 나왔다. 스타트업 PDL 바이오파마가 개발하여 로슈사에 넘긴 제나팩스(1997년)이다. 제넨텍의 허셉틴(1998년)도 이에 속하는데 피크 매출은 2018년 72억달러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인간화"된 항체를 만드는 기술도 개발되었다. 이를 이용하여 만든 휴미라가 2002년 출시되어 각종 염증질환 치료에 사용되고 있다. 최고 매출은 2022년 212억달러에 달했다.
휴미라 개발에는 영국의 스타트업 CAT의 기술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막대한 매출을 올리는 휴미라 판매사인 앱비(Abbive)는 높은 로얄티를 지불하기 싫었다. 이들은 로얄티가 2%인지 아니면 5.1%인지를 갖고 다퉜다. 2005년 CAT은 2억5,000만 달러를 받고 연간 2.688%의 로얄티를 받기로 앱비와 합의한다. 추후 CAT를 인수한 아스트라제네카는 미래에 받을 로얄티 권리를 다른 회사에게 7억 달러에 팔았다. 휴미라의 가치를 가늠할 수 있는 수치들이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HGP)는1990년 몇개 주요 국가들 간의 협업 프로젝트로 시작되었다. 인간임을 규정하는 정보가 게놈(유전체)에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를 밝히겠다는 초대형 프로젝트였다. 그 안에 사람과 동물이 다른 이유, 나와 다른 사람의 차이가 숨어 있다.
2000년 새로운 밀레니엄의 시작과 함께 다가온 인간 게놈 정보 해독은 인류와 산업계에 엄청난 기대감을 주었다. 인체의 신비가 곧 풀릴 것 같았다. 질환 진단은 정확해지고, 개인별로 맞춤 처방과 치료가 가능한 시대가 곧 도래할 것 같았다.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숫자의 스타트업들이 생겨나 지놈 정보를 이용하여 제품과 서비스 상품을 만들려했다.
뛰어난 과학자, 풍부한 상상력, 대규모 자금을 갖춘 미국이 이 분야를 주도했다. 인간 유전정보를 제약사에게 판매하겠다는 인사이트(1991년), 자기들이 발견하는 cDNA정보를 모두 특허로 내겠다는 HGS(1992년), 정부 주도의 HGP보다 훨씬 더 빠르고 싸게 인간 지놈을 해독하겠다는 셀레라(1998년)등 모두1990년대를 풍미하던 스타트업들이다.
HGP에 대한 기대와 시장에서의 실제 사용 간에는 간극이 컸다. 게놈 정보를 의학적으로 사용하기에는 시퀀싱 비용이 너무 높았다. 게다가 개인의 의료 및 생체 정보와 게놈 정보가 연계되지 않으면 가치도 없었다. 게놈 사업에 대한 회의론도 제기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게놈 정보를 효율적으로 결정하고 해석하는 기술이 필요했다.
그러자 기술의 약점을 보완하려는 스타트업들이 수없이 생겨났다. 이들을 통해 차세대 시퀀싱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NGS기술이 크게 발전했다. 값싸고 빠르며 대용량 처리 가능한 시퀀싱 기술이 태어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스타트업들이 생겨나 요소 기술들을 개발했고, 선도기업은 이들의 기술 혹은 회사를 흡수하면서 NGS의 완성도를 높여 갔다. 자연스럽게 M&A가 활성화 되는 환경이었다. 지금 업계의 강자인 일루미나는 1998년 스타트업으로 탄생한 이래 거의 30개에 이르는 벤처회사들을 합병하며 지금의 위치에 섰다.
NGS가 바이오산업에 미친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신약개발, 질병의 예방 및 진단과 치료를 포함한 정밀의학, 생명체 합성, 심지어 의약의 품질관리에 이르기까지 바이오 산업 곳곳에 사용된다.
미국에서는 신기술이 개발되면, 거의 모든 경우 스타트업이 생겨나 실용 가능성을 검증하고 고도화시키는 것이 이미 오래 전부터 시장의 정석으로 굳어졌다. 이를 통해 새로운 산업과 시장이 생겨나거나 기존 시장이 크게 확장되어 투자의 선순환 구조를 이룬다.
요즘 한국의 바이오기업들은 "엄동설한에 고난의 행군"을 하고 있다. 한국 바이오 벤처의 역사를 지켜봤고 스스로도 성패를 체험한 필자는 그 원인들이 뭔지를 알 것 같다. 경험을 복기하여 분석하고 이를 후발 주자들과 공유하여 스타트업들이 바이오 산업의 전위대 역할을 하는데 기여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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