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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닌 모두를 위한 연주”… 뉴욕필 첫 여성 단원의 삶

입력
2025.03.15 11:0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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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다큐 '온리 걸 인 더 오케스트라'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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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린 오브라이언은 뉴욕필하모닉에서만 55년간 연주한 세계적인 더블베이스 연주자다. 넷플릭스 제공

오린 오브라이언은 뉴욕필하모닉에서만 55년간 연주한 세계적인 더블베이스 연주자다.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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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린 오브라이언(90)은 뉴욕필하모닉 단원이었다. 2021년 퇴직하기 전까지 55년을 일했다. 그가 연주했던 악기는 더블베이스다. 세계 유명 오케스트라에서 수십 년 동안 단원들과 음을 맞췄다는 건 특별하고도 특별하다. 그는 1842년 설립된 뉴욕필 역사 최초로 입단한 여성 상임 연주자다. 1966년에 발생한 일이었다.

①편견을 이겨낸 세계적 연주자

오린 오브라이언은 당대 유명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 눈에 띄어 뉴욕필에 입단하게 됐다. 넷플릭스 제공

오린 오브라이언은 당대 유명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 눈에 띄어 뉴욕필에 입단하게 됐다. 넷플릭스 제공

지금이야 여성 단원이 흔하나 1966년 오브라이언의 입단은 큰 주목을 받았다. 뉴욕필이 입주한 링컨센터에는 당시 여성 탈의실이 없었다. 연주가 있을 때면 오브라이언만 급하게 화장실로 뛰어가 옷을 갈아입어야 했다.

남성 단원들의 편견은 매서웠다. “그 여자가 매력적이라면 같이 공연할 수 없다, 매력적이지 않다면 같이 공연하고 싶지 않다”는 말을 언론에 흘리기도 했다. “오케스트라에서 여성의 수명은 남자만큼 길지 않다. 여자의 60세 때 기량은 남자의 60세 때 기량만 못하다”는 통념이 자리 잡고 있기도 했다. 유명 지휘자 주빈 메타가 “오케스트라에 여성의 자리는 없을 것”이라고 단언하던 시절이다. 오브라이언은 편견을 이겨냈다. 86세까지 단원으로 활동했으니까.


②더블베이스라는 악기의 의미

오린 오브라이언은 뉴욕필 최초 여성 단원으로 그가 입단하자 언론은 큰 관심을 보였다. 넷플릭스 제공

오린 오브라이언은 뉴욕필 최초 여성 단원으로 그가 입단하자 언론은 큰 관심을 보였다. 넷플릭스 제공

오브라이언의 부모는 할리우드 스타였다. 아버지 조지 오브라이언(1888~1985)과 어머니 마거릿 처칠(1910~2000)은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는 배우들이었다. 인기를 당연하게 여기고 즐기던 부모와 달리 오브라이언은 세상 사람들의 관심을 딱히 바라지 않았다. 남들이 다 아는 부모의 이혼이 그의 마음에 상처를 주기도 했다. 10대 시절 더블베이스에 빠져든 이유다.

더블베이스는 튀지 않는 악기다. 독주를 하는 경우가 드물기도 하다. 오케스트라 뒤쪽에 위치해 전체 음을 떠받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오브라이언은 더블베이스 같은 삶을 살고 싶어 했다. 세상에서 없으면 안 되는 존재지만 그렇다고 사람들 시선이 쏠리지 않는 인생 말이다.


③그가 없었다면 지금 뉴욕필은?

오린 오브라이언은 제자들이 세계 곳곳에 있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후학 양성에도 힘을 기울였다. 넷플릭스 제공

오린 오브라이언은 제자들이 세계 곳곳에 있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후학 양성에도 힘을 기울였다. 넷플릭스 제공

다큐멘터리는 35분 동안 오브라이언의 남다른 삶을 돌아본다. 간단하게 설명할 수 없을 세월을 오브라이언의 목소리를 통해 담담하게 전한다. 오브라이언은 더블베이스 연주자로서 명성을 떨쳤다. 레슨을 받기 위해 여러 나라에서 그를 찾고는 한다. 뉴욕필에서 함께 음을 맞춘 더블베이스 연주자 중에 제자가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묵묵히 뉴욕필 단원의 자리를 지켰다.

오브라이언의 가장 큰 업적은 아마 뉴욕필에 새 길을 냈다는 점일 것이다. 뉴욕필은 2022년 11월180년 역사 최초로 여성 연주자가 과반수를 차지했다. 오브라이언의 음악에 대한 열정과 오케스트라에 대한 헌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뷰+포인트

오린 오브라이언의 조카 몰리 오브라이언이 연출했다. 몰리는 도입부에서 “어떻게 만들어야 될지 모르겠다”고 고모에게 고민을 털어놓는다. 어려서부터 롤모델로 생각했던 고모라는 클래식음악의 거인을 카메라에 담기가 부담스럽다는 말로 들린다. 몰리는 여성 차별을 부각하지 않고 고모의 회고와 현재에 집중한다. 더블베이스를 너무나 사랑하다 보니 어느덧 ‘큰 바위 얼굴’이 된 오브라이언의 삶은 지나치게 과장되지도, 너무나 폄하되지도 않게 카메라에 담긴다. 지난 2일(현지시간) 열린 제97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단편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다.
***로튼 토마토 신선도 지수: 시청자 87%
***한국일보 권장 지수: ★★★☆(★ 5개 만점, ☆ 반 개)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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