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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고 임박 尹 탄핵심판... '보수 주심'과 '진보 재판장' 영향은

입력
2025.03.15 04:30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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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심은 尹이 지명한 정형식 재판관
재판장은 진보 성향 문형배 권한대행
심리 과정서 재판장·주심 영향 제한적
모두 동등한 지위서 평등하게 논의해

문형배(맨 왼쪽)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과 정형식(뒷줄) 재판관이 13일 감사원장 및 검사 3인에 대한 탄핵심판 사건 선고를 위해 헌재 대심판정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공동취재

문형배(맨 왼쪽)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과 정형식(뒷줄) 재판관이 13일 감사원장 및 검사 3인에 대한 탄핵심판 사건 선고를 위해 헌재 대심판정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공동취재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변론종결 후 90일째(14일 기준) 장고를 거듭하면서 주심인 정형식 재판관과 재판장인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의 성향에 기반한 억측이 쏟아지고 있다. 진보 성향인 문 권한대행이 탄핵 인용을 위해 몽니를 부린다거나 윤 대통령이 지명한 정 재판관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항소심 선고에 맞춰 시간을 끌고 있다는 등의 내용이다.

하지만 헌재 내부 시스템을 잘 아는 이들은 이런 억측에 대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재판관 전원이 모든 사건 심리에 동등하게 참여하기 때문에 주심이나 재판장이 사건을 특정 방향으로 이끌거나 심리 속도를 좌우하는 건 상상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특히 무작위 전자배당을 통해 지정되는 주심은 '봉사자'에 비유될 정도로 영향력이 제한적이다. 한 전직 재판관은 "헌재에서 주심은 사건 기록을 먼저 살핀 뒤 다른 재판관들이 이해하기 편하게 정리하고 결정문 초안을 쓰는 게 주된 역할"이라며 "주심이라고 해서 특별히 사건을 이끌어가는 게 절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문 권한대행이 윤 대통령 탄핵 사건 초반에 "주심 재판관이 누구인지는 재판 속도나 방향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실제로 속도나 방향은 재판관 평의에서 토론을 통해 정해진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임박한 가운데 1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정문에서 경찰이 삼엄한 경계 태세를 갖추고 있다. 사진 속 헌재 본관 건물 상단에 모양과 크기가 같은 무궁화 아홉 송이가 새겨져 있다. 하상윤 기자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임박한 가운데 1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정문에서 경찰이 삼엄한 경계 태세를 갖추고 있다. 사진 속 헌재 본관 건물 상단에 모양과 크기가 같은 무궁화 아홉 송이가 새겨져 있다. 하상윤 기자

헌재에선 소장(혹은 소장 권한대행)도 재판관 9명 가운데 한 명일 뿐이다. 헌재 본관 건물에 새겨진 아홉 송이 무궁화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아홉 송이 모두 모양과 크기가 같은데, 이는 재판관 9명의 지위가 동등함을 가리킨다.

소장은 재판장으로서 변론 진행을 맡지만, 변론 진행 방식이나 변론에 필요한 제반 사항들은 모두 재판 전후로 진행되는 평의에서 결정한다. 미리 논의하지 않은 걸 재판장 독단으로 결정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실제 윤 대통령 탄핵 사건 8차 변론기일에 윤 대통령 측 대리인들이 문 권한대행의 변론 진행 방식에 불만을 토로하자, 문 권한대행은 A4 용지 몇 장을 흔들어 보이며 "이게 내가 (변론을) 진행하는 대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연구관) 태스크포스(TF)에서 올라온 대본이고, 재판관들 모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 (이대로) 하는 것"이라며 자의적인 판단으로 변론을 진행하는 게 아님을 강조했다.

반면 대법원이나 일선 법원 합의부는 재판장과 주심의 관계가 완전히 동등하진 않다. 대법원의 경우, 애초 법원조직법상 대법원장과 대법관의 신분이 다른 데다 대법관은 대법원장 제청으로 임명되기 때문에 대등한 관계가 아니다. 평의 때도 수평적인 분위기 속에 고성까지 오가는 헌재와 달리, 대법원에선 비교적 침착한 분위기 속에서 논의가 진행되는 편이다. 일선 법원 합의부에선 재판장이 재판 진행은 물론 선고까지 주도적으로 끌고 가는 경우가 많다.

결론을 내는 과정에서도 차이가 있다. 헌재는 소장이라도 다수와 의견이 다르면 소수의견을 내지만, 대법원장은 주로 다수의견에 선다. 대법관 출신의 한 변호사는 "선고에 앞서 의견을 종합할 때 대법원장은 따로 의견을 개진하지 않고 다수의견으로 간다"며 "대법원장이 소수의견을 표한 판결은 손에 꼽을 정도"라고 전했다. 결정문에서도 헌재 소장은 직위 구분 없이 '재판관'으로 이름을 올리는 반면, 대법원장은 판결문에 대법원장으로 적시한다. 헌재 근무 경험이 있는 한 법조인은 "헌재는 소장이라고 해서 0.1%라도 혜택을 더 주는 게 없고, 선배라고 해서 '나를 따르라'고 하거나 후배라고 해서 굽히는 경우가 없다"며 "사건 앞에선 아래위가 없는 조직이다"라고 말했다.

김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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