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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미래 청중 위해 썼다"... 독보적 매력 뽐내는 현악사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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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간 공연 기획과 음악에 대한 글쓰기를 해 온 이지영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이 클래식 음악 무대 옆에서의 경험과 무대 밑에서 느꼈던 감정을 독자 여러분에게 친구처럼 편안하게 전합니다.
노부스 콰르텟이 8일 롯데콘서트홀에서 브람스 현악사중주 전곡 연주회를 열고 있다. 목프로덕션 제공
현악사중주는 두 대의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라는 현악기만으로 이뤄진 실내악이다. 비슷한 톤을 가진 악기 간의 섬세한 구성, 내밀한 이야기를 담아내기 때문에 굵직한 중심 선율 위주의 감상이나 솔로 악기와 교향악의 다양한 음색·구성에 익숙한 사람에게 조금 낯선 음악일 수 있다. 하지만 개성보다는 균형과 밀도가 만들어내는 긴장감, 쉴 틈 없이 이어지는 상호 간의 호흡이 만들어내는 완성도와 섬세함의 극치는 현악사중주만의 독보적인 매력이다.
교향곡은 물론 현악사중주의 아버지로 불릴 만큼 많은 작품을 썼던 하이든은 68개의 작품 안에서 현악사중주의 기본을 만들었다. 현악기 중심으로만 이뤄졌던 교향악단에 관악이 더해지면서 오케스트라 음악과 실내악의 분리가 이뤄지던 이 시기에는, 교향곡처럼 4악장 형식을 갖췄지만 현악기만으로 구성된 현악사중주가 자리를 잡게 된 때였다. 비슷한 음색의 현악기로만 구성되었기 때문에 풍성한 음악을 만들어내기 위해 하이든은 음색의 대비를 보여주는 다양한 주법과 형태적인 재미를 구상했다.
현악사중주단 아레테 콰르텟. 금호문화재단 제공
모차르트는 교향곡의 절반에 해당하는 23개의 현악사중주를 남기면서 하이든이 개척한 길을 확장했다. 특히 첼로라는 악기의 존재감을 키워낸 것과 하이든의 '러시아 사중주곡'에 감명을 받아 쓴 '하이든 사중주곡' 여섯 작품은 걸작이다. 스승 하이든에게 헌정한 이 작품은 두 천재들의 대화를 엿듣는 것 같다. 애정과 진심이 담긴 정서는 듣는 내내 행복감을 준다.
베토벤은 내면적이며 철학적인 이야기를 담아내면서 궁정음악, 아마추어 음악가들이 가볍게 즐기는 음악으로 인식해 왔던 실내악을 진중한 예술 장르로 만들어 버렸다. 현악기로 교향곡 연주를 흉내 낸 것처럼 현악사중주를 우스꽝스럽게 생각했던 그 시대 청중은, '미래의 청중을 위해 썼다'는 베토벤의 출사표에서 도전의식을 갖게 됐다. 베토벤의 진중한 시각은, '라주모프스키' 3부작부터 시작해 6악장, 7악장 구성의 13, 14번, 합창 교향곡을 연상시키는 15번, 단일 악장으로 모든 형식을 깨버린 '대푸가'까지, 혁명에 가까운 변화를 만들어냈다.
슈베르트, 슈만, 멘델스존, 브람스, 레거, 드보르자크, 야나체크, 스메타나 여기에 드뷔시와 라벨, 차이콥스키, 프로코피예프, 쇤베르크가 명맥을 이어갔지만, 20세기 현악사중주는 쇼스타코비치에 의해 이례적인 기록을 만들게 된다. 쇼스타코비치는 교향곡의 저승사자처럼 각인됐던 죽음의 숫자 '9'번을 뛰어넘어 15개의 교향곡을 쓰고, 같은 맥락에서 발전시킨 15개의 현악사중주곡을 남겼다. 학자들은 베토벤의 현악사중주곡을 가리켜 '교향적인 사중주'라고 표현했는데, 쇼스타코비치 역시 자신의 교향곡과 상호관계성을 가진 뛰어난 현악사중주곡을 완성했다.
현악사중주단 에벤 콰르텟. 목프로덕션 제공
현악사중주단 벨체아 콰르텟. 목프로덕션 제공
국내에서도 점점 더 많은 애호가들이 현악사중주 무대를 찾아 듣는다. 여기에는 모차르트 국제 콩쿠르 우승 이후, 현재는 세계적인 현악사중주단으로 활동하고 있는 노부스 콰르텟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20여 년 전, 실내악의 불모지에서 역사를 써온 이들은 교향곡만큼이나 오래 듣고 곱씹어 감상할 수 있는 현악사중주 작품 전곡 연주회를 꾸준히 선보이면서 연주 분야를 개척해 왔다. 오래된 시간만큼이나 관객들도 함께 성장했는데, 객석에서 마주하는 관객들의 수준과 태도에서도 이 시장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어느 분야든 스타의 등장과 활동의 지속성은 시장도 키우고, 다음 세대를 키워낸다. 노부스 콰르텟의 활동 이후 하이든 콩쿠르 우승팀이자 올해 제3회 서울예술상 수상자로 선정된 아벨 콰르텟, 위그모어홀 콩쿠르 우승과 함께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에스메 콰르텟, 실내악팀으로는 처음,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로 선정된 아레테 콰르텟 등은 어느새 한국을 대표하는 실내악단이 되었다. 괴테는 현악사중주를 가리켜 '네 명의 지식인이 나누는 대화'라고 했다. 비슷한 음색의 네 악기가 대등하게 소통하기 때문에 어떤 순간도 놓치지 않도록 집중하고 몰입해야만 작곡가의 의도가 살아나게 된다. 올해는 에벤 콰르텟, 벨체아 콰르텟, 하겐 콰르텟 등 전설적인 현악사중주단의 내한무대도 이어진다. 오랜 시간 고유의 성격과 언어를 만들어 온 현악사중주단의 활동은 특별할 수밖에 없다. 베토벤이 언급한 '미래의 청중'으로서 현악사중주에 좀 더 귀를 기울여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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