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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산불 겨우 일부 진화했는데… 악마의 바람 '샌타애나' 다시 분다

입력
2025.01.13 18:38
수정
2025.01.13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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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산불 6일째... 사망 24명·실종 16명
진압률은 팰리세이즈 11%·이튼 27%
13~15일 건조 돌풍 예보돼 악화 가능성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한 소방대원이 12일 팰리세이즈 산불 현장에서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한 소방대원이 12일 팰리세이즈 산불 현장에서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로이터 연합뉴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냥 비현실적이고, 세상의 종말 같아요."

미국 캘리포니아주(州) 로스앤젤레스(LA) 산불 엿새째인 12일(현지시간). 이곳에서 나고 자란 에밀리오 모건은 가장 큰 불이 난 퍼시픽 팰리세이즈 일대를 차를 타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는 이 지역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가고 싶었지만 산불로 곳곳이 통제된 탓에 가는 길을 찾기 쉽지 않다고 했다. 모건은 미국 워싱턴포스트(WP)에 "겨울에 LA에서 이런 불이 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며 "기후변화로 대형 산불이 LA의 뉴노멀이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LA 상징인 도심 할리우드 거리에선 잿빛 하늘 아래 더스틴 드루리라는 남성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의료용 마스크를 나눠주고 있었다. 그는 "플라스틱 등 사람들의 집 안에 있는 물건들이 몽땅 탔으니 모든 유독한 물질들이 공기 중에 있는 셈"이라며 LA 전역이 사실상 산불 피해를 입고 있다고 WP에 설명했다.

LA 소방당국이 지난 7일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산불의 불길을 잡고 있지만 진압 속도는 여전히 더디고, 피해는 계속 늘고 있다. 게다가 산불 확산의 원인이 됐던 '악마의 바람' 샌타애나가 다음 주 다시 불어올 예정이라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소방과 시민 모두 분주했다. 산불이 지속되면서 서민은 당장 잘 곳부터 걱정이지만 부유층은 사설 소방대를 고용하는 등 화재 대응의 빈부격차도 커지고 있다.

사망자·피해 면적 늘어나... 안산시 전체 불에 탄 셈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12일 "이날 기준 LA 산불로 24명이 사망하고 16명이 실종됐다"고 전했다. 산불은 아직 완전히 꺼지지 않았기 때문에 사망자나 실종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팰리세이즈 화재는 11%, 이튼 화재는 27%가 진압됐다. 허스트 화재의 진압률은 89%다. 가장 규모가 큰 팰리세이즈와 이튼의 진압률이 아직 낮지만, 거센 바람에 소방대원이 근처에 다가가지도 못했던 산불 초기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이날 기준 산불 피해 면적은 153.32㎢로, 서울 면적의 4분의 1 혹은 경기 안산시 전체가 불에 탄 수준이다. 다만 직접적으로 불타지 않았더라도 산불의 영향은 LA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화재로 발생한 연기와 유독성 물질 때문이다. 토머스 아라곤 LA 공공보건국장은 미국 CNN방송에 "화재 연기에 포함된 미세 유해 입자들이 폐 깊숙이 침투하면 염증을 일으킬 수 있다"며 "화재 근처에 있다면 반드시 의료용 마스크를 써야 한다"고 당부했다. 더불어 "연기는 수백 km가량 이동할 수 있으니 탄 냄새가 나지 않더라도 공기 질 관리에 유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 시민이 12일 자전거를 타고 산불로 폐허가 된 미국 캘리포이나주 로스앤젤레스 팰리세이즈 지역을 지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로이터 연합뉴스

한 시민이 12일 자전거를 타고 산불로 폐허가 된 미국 캘리포이나주 로스앤젤레스 팰리세이즈 지역을 지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로이터 연합뉴스

건조한 돌풍인 샌타애나가 13일부터 다시 불어오는 것도 문제다. 미국 국립기상청은 샌타애나가 15일까지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고, 최고 시속은 100km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12일에는 돌풍이 잦아들어 소방대원이 진화 작업에 나설 수 있었지만 샌타애나가 다시 불어온다면 작업이 중단될 가능성도 있다. 산불이 시작된 7일에도 샌타애나로 인해 소방당국이 손을 쓰지 못하면서 한동안 진압률 0%가 이어졌다. 통상적으로 LA는 겨울에 비가 자주 오는 편이지만, 예보된 비 소식은 없다. 그나마 일주일 후에 습도가 높아진다는 게 긍정적 소식이다.

부유층 민간 소방대 수요 급증... 하루에 1400만 원

산불이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서 소득 수준에 따라 산불 대응에 대한 양극화도 커지고 있다. 서민들은 당장 살 곳을 걱정하지만 부유층은 하루에 1,000만 원 넘는 돈을 주고 사설 소방대를 고용하고 있다. AP통신은 "민간 소방대를 고용하려는 부유층들의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고급 쇼핑몰 '팰리세이즈 빌리지'가 민간 소방대를 고용한 덕에 화재를 면했다는 소식도 이런 수요를 부추기는 요인이었다.

부자들은 고액의 이용료에도 재산을 지킬 수 있다면 지출을 꺼리지 않는 분위기다. 산불이 시작된 지난 7일 부동산 투자 회사 창립자인 키스 와서먼은 집 근처로 산불이 번지자 자신의 엑스(X)에 "지금 당장 올 수 있는 민간 소방대를 찾는다"며 "금액은 얼마든지 지불하겠다"고 올렸다. NYT는 "2인 민간 소방대원과 작은 차량을 이용하면 하루에 3,000달러(약 440만 원), 20명의 소방대원과 4대의 소방차로 구성된 팀을 고용하는 경우 하루 비용이 1만 달러(약 1,470만 원)"라고 설명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소방대원들이 12일 산불 피해 현장을 조사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소방대원들이 12일 산불 피해 현장을 조사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로이터 연합뉴스

반면 서민들은 당장 지낼 곳을 걱정하는 처지다. 대학생 사만다 산토로는 AP에 "우리에겐 '두 번째 집으로 가서 지내야지' 같은 선택지가 없다"며 "부모님이 일군 모든 것을 잃었다"고 말했다. 사진작가로 일하는 다니엘라 도슨 역시 "월세집이 불에 타 그 안에 있던 고가의 장비가 모두 망가졌다"며 "임차인 보험도 없어 보상을 받을 길이 없다"고 한탄했다.

박지영 기자
로스앤젤레스= 이서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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