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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마음에 남은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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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이 칼럼에서 '한국인의 마음에 새겨진 문장들'을 꼽고 나니 '한국인의 마음에 남은 문장들'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부터 마음에 새겨질 만큼은 아니어도 마음에 남아 우리가 어떤 시간을 거쳐 왔는지 보여주는 문장들을 말한다.
내가 꼽은 첫째는 '장부 집을 떠나니 살아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이다. 이 비장한 마음의 결실이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윤봉길 의사가 결행한 일제의 침략 지휘부 처단이다. 일왕의 생일과 전승을 기념하는 행사에서 일본 국가인 기미가요가 끝나고 묵념하는 순간 그는 가슴에 숨겨온 폭탄을 던져 침략을 이끈 사령관 외교관들을 처단했다. 이 의거로 장제스가 이끈 중국 국민당 정부는 홀대해온 우리 임시정부와 김구 주석을 다시 보고 지원했으니 한 문장의 결기가 역사의 물줄기를 바꿨다. 나는 소설가이지만 나라가 역경을 맞았을 때 마음으로 고뇌한 숱한 작가들보다는 단심으로 결행한 그와 같은 분들에게 더 깊이 공감한다.
두 번째는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 내 발길도 너를 잊은 지 너무도 오래.' 연시처럼 시작한 김지하의 시 '타는 목마름으로'는 시가 사람을 어떻게 감화시키고 실천하게 하는지 보여주었다. 같은 흐름의 문장으로 김영삼 대통령이 유신 체제에 맞서다가 1979년 10월 국회의원직에서 제명되던 날 남긴 말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가 있다.
그로부터 스무 날 정도가 흐른 후 박정희 대통령이 남긴 마지막 말 "나는 괜찮아"가 세 번째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쏜 총에 맞아 숨져가던 그는 옆자리의 여성 신재순이 피가 솟는 그의 등을 손으로 막으며 "각하, 괜찮으십니까?" 묻자 이렇게 말했다. 누구에게는 통쾌하고 누구에게는 비극이었을 그의 죽음이 그의 삶과 그다지 다르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말이다. 신재순은 "'나는 괜찮으니 너희는 어서 피하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고 했다. 그가 평소에 한 말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와 같은 흐름의 말이었다.
네 번째는 '내 품 속의 정형 손은 / 싸늘히 식어 푸르뎅뎅하고 / 우리는 손을 소주에 씻어 들고 / 양지바른 공장 담벼락 밑에 묻는다'이다. 박노해의 시 '손 무덤'에 나오는 이 문장을 알려준 이는 내가 재수 학원에 다닐 때 국어 과목을 가르친 시인 조순이다. 나는 이 시가 실린 시집 '노동의 새벽'을 읽을 때만큼 많은 눈물을 흘린 독서가 없었다. 얼마나 많은 이가 그런 경험을 하였던가.
다섯 째는 노래 '사계'의 첫 소절,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 / 하얀 나비 꽃 나비 담장 위에 날아도 /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영등포 구로 그리고 곳곳의 공장에서 형제와 부모를 위해 방직 기계를 돌리다가 이제는 할머니와 어머니로 나이 들어 버린 그 숱한 여성들의 청춘이 담겨 있다. 그 슬픔과 인내심에 우리는 갈채를 보내야 할지 그러안아야 할지 알지 못하지만 그들이 있어 우리의 오늘이 구현된 게 아닐까?
이 겨울 우리의 혼은 역경에 부딪힐 때마다 더 단단해지고, 고난을 겪을 때마다 거듭난다는 것을 우리의 시간에서 마음으로 건너온 이 문장들은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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