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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층 이하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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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탄 딸이 초등학교 들어갔을 때 방과 후에 친구들을 사귀게 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또래 아이들은 상당수가 방과 후 학원에 가는 게 일과였다. 학교에서 친구를 사귈 때도 같은 학원에 다니지 않으면 쉽게 친해지기 어려웠다. 그런데 동네 대부분 학원에 아이는 물리적으로 접근할 수가 없었다. 학교 앞 3~5층짜리 작은 건물들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었기 때문이다.
왜일까? 건축법상 5층 이하 건물에는 엘리베이터 설치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건축법 64조에 따르면, 6층 이상으로서 2,000㎡ 이상인 건물만 승강기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그 이유가 기막히다. 지난 1월 24일 국회 도서관에서 열린 '모두의 1층을 위한 향후 과제' 토론회에서 한국환경건축연구원 배융호 이사가 설명한 바에 따르면, 이 법은 1973년 만들어졌다. 무려 51년 전이다. 그 배경에는 중동전쟁과 석유파동이 있다. 에너지 절약이란 명분으로 엘리베이터 설치를 억제한 법 조항이 반세기 넘게 방치된 셈이다.
이미 끝난 에너지 파동을 명분으로 이 건축법 조항이 50년 동안 막은 접근권은 어마어마했다. 휠체어를 타는 어르신도 유아차를 모는 부모들도 엘리베이터가 없는 작은 건물에 입점한 동네 병원에 가기 어려웠다. 휠체어를 탄 아이들은 집 근처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에 있는 학원에서 친구들과 어울릴 기회를 박탈당했다. 여유가 있는 집은 자동차로 엘리베이터가 있는 건물까지 휠체어와 유아차를 싣고 다녀야 했다.
‘모두의 1층’, 즉 장애인이 집 근처 생활편의시설에 접근할 권리가 지난 12월 대법원에서 겨우 기본권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이런 건축법과 같은 구시대적 독소 조항은 ‘모두의 2층, 3층, 4층’으로까지 확대되는 것을 막는다. 또 하나의 독소조항은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 중 ‘타 층으로 이동하는 수단’에 대한 조항이다. 이 수단에는 ‘장애인용 승강기, 계단, 장애인용 에스컬레이터, 휠체어리프트 또는 경사로’ 중 하나만 설치해도 된다고 쓰여 있다. 무려 장애인등편의법상에서 6층 이하의 건물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어도 되게끔 정당화한 셈이다.
이날 배 이사는 ‘접근 가능한 환경’에 대해 한 가지 더 과제를 제시했다. 모두의 1층을 넘어 2, 3, 4층까지 접근성을 확대하는 데 가장 중요한 건물은 아파트 등의 공동주택이다. 기본적인 거주 공간부터 접근성이 보장돼야 한다는 거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보건복지부에서 시행하고 있는 장애물 없는 생활시설 인증, 즉 배리어프리(BF) 인증을 현재 공공시설 위주에서 민간시설, 특히 공동주택으로 확대해야 한다.
공동주택의 접근성 강화는 초고령화 사회로 급속도로 진전하는 한국 사회에서 시급히 고쳐야 할 지점이기도 하다. “아버지가 휠체어를 타게 되셨는데 엘리베이터가 없는 아파트에 사세요. 이사할 여력은 없는데 병원 모시고 가는 것조차 힘들어졌어요.” 돌봄에 적절한 편안한 환경을 찾기 위해 개인에게 이사, 이주의 부담을 전가하는 건 평등권 차원에서 올바르지도 않을뿐더러 사회적 낭비다. 수십 년 전 만들어진 시대착오적 법조항을 폐기하고 누구나 접근 가능한 환경을 만드는 건 불안 요소를 잠재우는 사회적 투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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