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홉스봄이 생각한 유대인과 이스라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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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잉글랜드인 아버지와 오스트리아 빈의 유대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영국계 유대인’이다. 하지만 그는 다양한 민족이 공존한 세기말 20세기 초 세계 문화의 수도 빈에서 성장하며 인종적 정체성보다는 문화적 정체성으로 스스로를 규정하곤 했다. 그런 그에게 어머니와 유대인 친척들은 틈만 나면 ‘유대인다움’을 요구했다고 한다. “홉슨이나 오스본이라고 했으면 편했으련만 발음도 힘든 성을 평생 달고” 산 까닭이 그것이었다.
그는 만년의 자서전 ‘미완의 시대’에 한 민족이라는 이유로 자신에게 연대를 요구하는 “작지만 호전적이고 문화적으로 낙후했으며 정치적으로 공격 일변도”인 민족국가(이스라엘)에 대한 책임감을 부인하며, 2차대전 나치 대학살에 기대 세계의 양심에 호소하는 ‘희생자’ 의식을 이렇게 경계했다.
“옳고 그름, 정의와 불의는 겨레의 휘장을 달지도 않고 나라의 깃발을 휘날리지도 않는다. 역사가로서 판단하기에 나는 만일 세계 인구의 0.25%를 차지하는, 내가 그 일원으로 태어난 종족이 ‘선택’받았거나 특별한 민족이라는 주장이 조금이라도 정당하다면 그것은 과거나 현재 또는 미래에(…) 그 부족이 모여 살았던 게토나 집단 거주 구역 안에서 이루어진 업적(그리고 수난) 때문이 아니라 유대인이 게토를 떠나도록 허용받았거나 스스로 떠나는 쪽을 선택한 이후 주로 두 세기 동안 드넓은 세계에서 그들이 인류를 위해 이룩한 괄목할 만한 업적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세계에 흩어져 사는) 모든 유대인이 유대인 어머니한테서 태어난 자식에게만 완전한 시민권을 주는 독립된 영토를 가진 작은 나라 안에 모여 산다면 그것은 인류 전체에게도, 유대인 스스로에게도 안 좋은 결과를 낳을 것이다.”
1945년 1월 27일 소련군이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문을 열고, 수천 명의 수감자를 구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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