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우드로 윌슨이 '1917 이민법'을 거부한 명분

입력
2025.02.05 04:30
26면
구독

2.5 1917년 이민법

만 16세 이상 이민 희망자에게 문해력 시험을 의무화한 1917년 미국 이민법을 풍자한 만평. immigrationhistory.org

만 16세 이상 이민 희망자에게 문해력 시험을 의무화한 1917년 미국 이민법을 풍자한 만평. immigrationhistory.org


‘미주 한인의 날’ 기사에서 19세기 말 20세기 초 미국 이민 정책의 변천사를 간략하게 살펴본 바 있다. 당시 미국은 1907년 한 해에만 뉴욕 엘리스섬을 통해 130만 명의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등 이민에 가장 너그러운(?) 국가 중 하나였다.

앞서 1894년 보스턴에서 ‘이민제한연맹’이 출범했다. 연맹은 이민 억제 및 인종·출신 지역(국가)별 이민 차별·제한 여론을 결집해 입법 청원운동을 전개했다. 미국이 1차대전에 참전하기 직전인 1917년 미 의회가 제정한 ‘1917년 이민법’이 그 결과였다. 법은 일본과 필리핀 등 미국과 특별 조약이나 협정을 체결한 국가를 제외한 아시아계 노동자의 입국을 사실상 통제(Asiatic Barred Zone)하고, 만 16세 이상 이민 희망자를 대상으로 문해력 시험(Literacy Test)을 치르도록 했다.

우드로 윌슨 당시 대통령은 저 법안에 서명을 거부하며 거부권 행사 이유를 밝히는 공식 서한을 의회에 전달했다. 서한에서 그는 "의회 입법에 대한 거부권은 연방 헌법이 부여한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의회 다수가 판단한 사안에 대해 대통령이 단독으로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고,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전제하며 이렇게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법이 미국의 오랜 정체성으로부터 급진적으로 이탈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그것은 인간의 천부적이고 양도할 수 없는 헌법적 권리를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없는 이들에게 망명의 문을 완전히 닫겠다는 것이고 기본적인 (언어)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한 이들을 또 한 번 배제하는 조치이기 때문이다.” 그는 곡진한 어조로 저 법이 미국이 고수해온 인도주의적 가치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미 하원은 그해 2월 5일 의원 3분의 2 찬성으로 대통령의 거부권을 무효화하고 저 법을 통과시켰다.



최윤필 기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