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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곳에 사람 모인다… '1박 3식'으로 소멸위기 극복한 섬 이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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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소멸위기 극복 장면, '지역 소극장.' 기발한 아이디어와 정책으로 소멸 위기를 넘고 있는 우리 지역 이야기를 4주에 한 번씩 토요일 상영합니다.
경남 거제시 장목면 이수도의 1박 3식 중 한 끼 상차림. 생선회에 초밥, 문어, 새우 등등 싱싱한 해산물이 풍성하다. 거제=박은경 기자
맛있는 음식은 사람을 불러들인다. 소문난 맛집이라면 '오픈런'은 물론이고 두세 시간 대기도 기꺼이 감수한다. 먼 거리도 문제없다. 굴은 경남 통영에, 어묵은 부산에, 흑돼지는 제주에 가서 먹어야 제맛이다. '설마 이걸 먹으러 여기까지' 싶겠지만 맛있으면 달려간다. 인구 감소로 소멸 위기에 처한 지역들이 저마다 먹거리 개발에 공을 들이는 이유다.
경남 거제도에 딸린 작은 섬 이수도의 '소멸시계'를 멈춘 비결도 특색 있는 먹거리에 있다. 숙박만 하면 바로 채취한 신선한 해산물로 삼시 세끼를 상다리 부러지게 내온다. 비용은 숙식 포함 1인당 1박에 10만 원선. 배를 타야 하는 수고로움에도 4, 5개월치 예약이 마감됐을 정도로 인기다. 거제시의 유인섬 11개 중 인구가 늘어난 곳은 이수도가 유일하니 말 다했다.
그래픽= 김대훈 기자
이수도 1박3식. 거제시 제공
지난달 9일 오전 거제시 장목면 시방항 선착장에 이수도로 향하는 배가 접안하자 사람들이 하나둘 올라탔다. 눈대중으로 훑어도 족히 40명은 되는 듯했다. '평일에 하루 6번을 오가니까 40명 곱하기 6은 240명, 일주일이면 1,680명, 한 달이면 7,000명 정도고, 인당 숙박비 10만 원씩...'
대충 매출을 계산해 볼 요량이었는데 그새 도착 신호가 울렸다. 배에 타고 내리는 시간을 더해도 10분이면 닿는 섬이라니, 일단 접근성은 합격. 박정배(72) 이수도 이장은 "뭍에서 가까워 오래전부터 낚시객은 종종 드나들었지만 지금은 모임이나 가족 단위 관광객이 대부분"이라면서 "뱃멀미 걱정 없고, 일단 오기만 하면 밥 하느라 고생하는 사람도 없어 반응이 좋다"고 자랑했다.
지난달 9일 경남 거제시 장목면 시방항 선착장에서 이수도행 여객선에 여행객들이 줄줄이 승선하고 있다. 거제=박은경 기자
이수도는 전체 면적 0.38㎢에 76가구 108명이 사는 작은 섬마을이다. 섬 모양이 두루미를 닮아 본래 학섬이라 불렸으나 대구와 멸치잡이로 마을이 부유해지자 이수도(利水島)로 바뀌었다고 한다. 바닷물이 이롭다는 의미다. 지명처럼 한때는 대구 멸치 갈치 고등어 도미 등 풍부한 해산물로 황금어장을 이뤘고, 인구도 500여 명에 달했다. 그러다 1970년대 말 어획량이 감소하기 시작하면서 사정이 확 달라졌다. 박 이장은 "한때 마을 인구가 57명까지 줄었다"며 "무인도가 되는 건 시간 문제였다"고 회상했다.
섬 주민들은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해 2010년 폐교된 학교를 매입해 펜션으로 꾸미고 관광업에 뛰어 들었다. 처음에는 반응이 영 신통치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숙소 빼고 변변한 구멍가게나 편의시설 하나 없는 낙도를 굳이 찾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불편을 감수하고 온 이들조차 여유롭게 섬을 즐기기는커녕 밥만 해먹다 지쳐 돌아가는 게 다반사였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구나 싶었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던 박 이장의 부인 배민자(67)씨가 숙박객에게 식사를 제공하자는 제안을 했다. 입실 시간을 당겨 점심부터 저녁, 다음 날 아침까지 일본 고급 료칸처럼 지역에서 나는 식재료로 질 높은 밥상을 차려 대접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배씨는 "원래 남이 해준 밥이 제일 맛있지 않느냐"며 "여행 가면 엄마들도 놀고 싶을 텐데 부엌을 벗어나지 못하는 걸 보고 떠올린 생각이었다"고 설명했다.
경남 거제시 장목면 이수도 전경. 섬 모양이 두루미를 닮아 본래 학섬이라 불렸으나 대구와 멸치잡이로 마을이 부유해지자 '바닷물이 이롭다'는 의미를 담아 이수도(利水島)로 바뀌었다. 거제시 제공
지난달 9일 경남 거제시 이수도 선착장 인근에서 한 어민이 그물을 다듬고 있다. 이수도는 한때 대구 멸치 갈치 고등어 도미 등 풍부한 해산물로 황금어장을 이뤘으나 어획량이 감소하면서 쇠락의 길을 걸었다. 거제= 박은경 기자
1박 3식은 금세 이수도 특화 관광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평일은 하루 평균 300명, 주말은 1,000여 명이 꾸준히 찾으면서 지난해에만 방문객 13만 명을 기록했다. 마을 전체 인구의 세 배가 넘는 350명이 매일 섬에 들어와 자고 갔다는 얘기다. 음식을 보면 납득이 간다. 소문으로 익히 듣고 가도 막상 밥상을 받으면 입이 떡 벌어진다. 자연산 제철회, 낙지 탕탕이, 문어, 멍게, 새우, 굴 등 10여 가지 해산물에 각종 튀김과 초밥, 샐러드, 나물, 백합탕까지.
가짓수도 그렇지만 어느 것 하나 빠지는 맛이 없다. 고등학교 동창들과 부산에서 왔다는 임경자(72)씨는 "먹거리가 너무 좋아 10년째 1년에 두 번씩 방문하고 있다"면서 "10만 원에 이만큼 배불리 먹고 잘 수 있는 곳이 또 어디 있겠느냐"며 만족스러워했다. 환갑을 맞아 친구들과 여행 온 손순자(61)씨도 "보통 여행지에서는 외부 식당을 오가느라 저녁에 일찍 숙소에 들어가 쉬기 어려운데, 여기는 하루 종일 가만히 있어도 된다"며 "오로지 휴식에만 몰두 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이수도 방문객은 평일 하루 평균 300명, 주말은 1,000여 명에 이른다. 손님 대부분은 모임이나 가족 단위 여행객이다. 거제=박은경 기자
관광객이 늘면서 이수도는 돈 버는 마을로 거듭났다. 주민들이 키운 농산물은 고정 소비처를 찾았고, 주방 보조 등 새로운 일자리도 생겼다. 박 이장은 "전부 마을에서 키우고 잡은 식재료만 쓴다"며 "인력도 상시 세 명에 바쁠 때는 대여섯 명을 추가 고용하고 월급도 두둑이 준다"면서 웃었다.
폐가나 다름없던 빈집들도 외지인들의 투자로 몸값이 뛰었다. 박진화(67) 이수도 총무는 "보통 섬 땅은 평당 30만 원에서 50만 원 정도에 거래되는데, 이수도는 200만 원까지 받는 곳도 많다"며 "그래도 매물이 없다"고 귀띔했다.
이수도의 반전은 2013년 84명에서 지난해 108명으로 증가한 인구 수로도 확인된다. 조시영(52) 경남도 해양수산국 어촌발전과 섬전문위원은 "고령화와 인구 유출 등 빠른 속도로 공동화되고 있는 섬에서는 정주 인구 1명을 늘리는 게 육지에서 100명을 늘리는 것보다 어렵다"며 "지역 소멸을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사업이나 아이템 중 지역 경제 선순환과 소멸 극복을 이뤄낸 가장 성공적인 모델"이라고 평가했다.
1박3식이 인기를 끌면서 이수도에는 새로운 민박집들이 생기고, 일자리도 늘었다. 거제= 박은경 기자
남은 과제는 지속성이다. 인근 섬들이 속속 1박 3식을 도입하면서 이수도만의 차별화된 전략을 다시 짜야 할 필요성은 커졌는데, 당장 장사가 잘되니 주민들은 변화에 소극적이다. 지자체가 지난해 1박 3식을 제공하는 16곳 등 이수도 민박집 50여 가구를 대상으로 협동조합을 만들면 각종 교육과 편의시설 건립 등을 지원하겠다고 했지만 유야무야됐다. 박 총무는 "이수도에서 제공하는 1박 3식은 가격이나 서비스가 대동소이해 원하는 날짜에 예약 가능한 집을 선택하면 되는데, 지금은 통합예약시스템이 없어 손님이 집집마다 일일이 전화로 확인을 해야 한다"며 "이런 식이면 10년을 더 버티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걱정했다.
경남 거제시 이수도 해변을 따라 놓인 출렁다리. 여행객들은 둘레길을 걷는 것 외 별다른 즐길 거리가 없는 점을 아쉬움으로 꼽았다. 거제=박은경 기자
대통령 휴양지 저도와 대구어장으로 유명한 관포·외포,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생가가 있는 대계마을, 한국판 가우디의 작품으로 알려진 매미성 등 10분 거리에 포진해 있는 다양한 관광지를 활용하지 못한 점도 아쉽다. 이날 만난 관광객들 중에서도 "즐길 거리가 없어 심심하다"고 말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조 전문위원은 "섬은 주민들에게 삶의 터전이자 관광객들에게는 자원, 국가로서는 영토 주권과 직결되는 곳"이라며 "시장경제에 맡겨 두기보다 지방정부가 적극 개입해 자생력을 키울 수 있는 유기적인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수도 지도. 그래픽= 송정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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