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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비판 집회 간 한국 1세대 여성 과학자 "한 명 해주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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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시대 철학자 키케로는 "책 없는 방은 영혼 없는 몸과 같다"고 했습니다. 도대체 책이 뭐길래, 어떤 사람들은 집의 방 한 칸을 통째로 책에 내어주는 걸까요. 서재가 품은 한 사람의 우주에 빠져들어가 봅니다.
"'그런 데를 왜 나가세요?' 누가 그러대요. 한 명이 되려고요. 한 명, 한 명이 모여서 그 많은 사람들이 거기 있잖아요. 나도 그 한 명을 해주려는 거지."
윤석열 대통령의 12·3 불법 계엄 선포 이후 이공주 이화여대 약대 명예석좌교수는 여의도로, 한남동으로 여러 번 발길 했다. 1980년 비상계엄을 겪었던 그의 눈앞에 장차 무슨 일이 벌어질지 훤히 그려졌기 때문이다.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부암동 자택에서 만난 그의 입술이 부르터 있었다. 올해 칠순인 그는 폭설과 강추위에도 집회에 다녀온 길이었다. "나이 들면서 '살다 죽는 게 무엇인가' 자꾸 생각하게 돼요. 남을 위해 무엇인가 한 게 아니라면 별 의미가 없지 않겠어요? 남한테 베푼 만큼만 남기고 가는 거죠."
한평생 과학자로 걸어온 그의 여정도 이와 맞닿아 있다. 그는 2022년 과학자들과 비영리법인 '집현네트워크'를 설립했다. 허위정보와 반(反)지성주의가 판치는 혼탁한 시대에 과학의 역할을 바로 세우려는 취지다. 집현(集賢)은 집단지혜를 의미한다. 단체는 국내 사례를 토대로 기후변화의 현주소를 총정리한 책 '첫 번째 기후과학 수업'을 지난해 펴냈다. 탄소 중립에 대한 책도 낼 예정이다. 이 교수는 "모든 사람이 교양으로 알아야 되는 게 과학이라고 생각한다"며 "과학적 이해를 갖추고 그 과정을 잘 알게 되면 세상을 보는 눈이 굉장히 달라진다"고 했다.
미국의 저명한 전기 작가 월터 아이작슨의 '코드 브레이커'는 그가 첫손에 꼽은 과학 입문서. 2020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유전자 가위 기술 선구자인 제니퍼 다우드나의 전기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의 발견과 그 과정에 이바지한 과학자의 이야기지만 개인의 노력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잘 보여준다.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탄다'고 하듯 과학은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에요. 앞서 수많은 과학자들이 일궈놓은 결과들에 빚지는 거거든요. 과학을 한다는 것은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서 산 위에 올라가는 건데, 나의 한 걸음이 없으면 결국 산꼭대기에 못 오른다는 것과 같죠. 이런 과정을 자꾸 보여주고, 알게 된다면 사회 전체에도 큰 힘이 될 거라고 믿어요."
미국 신경과학자 리사 펠드먼 배럿의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은 그가 주변 지인들에게 가장 많이 선물한 책. 이 교수는 "사고를 위한 기관이라는 기존 뇌 개념과 달리 '신체 예산'을 잘 쓰려고 개발된 '빈 뇌'가 있다는 내용인데 굉장히 재미있다"고 추천했다. 뇌가 다음에 일어날 일을 예측하고 그걸 처리하도록 몸을 미리 준비시키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다는 얘기다. 과학이 어떻게 세상과 나를 이해하는 도구가 되는지 잘 보여준다고 이 교수는 설명했다.
이 교수는 북악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동쪽으로 창이 난 서재에 앉아 책을 읽는다. 그의 독서 편력은 과학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서가에는 소설은 물론 분야를 막론한 신간까지 두루 꽂혀 있다. "신간은 부러 찾아 읽으려고 노력해요. 황석영, 박완서, 김훈 같은 우리 세대 소설은 거의 다 봤고요. 내게는 책을 보는 것 자체가 온전한 휴식이고, 즐거움이에요."
그는 많은 이들에게 독서의 즐거움을 설파하고 싶다고 했다. 책을 통해 삶이 바뀔 수 있다고 믿어서다. 이 교수는 소설가 최은영의 '밝은 밤'을 읽고 비로소 딸을 이해했다고 했다. 증조모·할머니·엄마·나로 이어지는 4대의 삶을 비추는 이야기를 딸의 시점에서 읽고 나니 딸을 응원할 수 있었다.
그에게 독서는 세상과 소통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요즘 것들'을 이해하기 위해 백세희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를 읽었다고 했다. 그는 "처음 읽었을 때는 무슨 이런 하찮은(?) 책이 있나 했고, 두 번째 읽었더니 그제서야 요즘 학생들을 이해할 수 있겠더라"며 "작년에 나온 이슬아의 '가녀장의 시대'도 너무나 맹랑하게 해야 될 이야기, 우리가 나아가야 하는 방향을 잘 이야기해줘서 읽으면서 매우 즐거웠다"고 밝혔다.
젊은 여성들에게는 미국 비영리단체 '걸스 후 코드'의 설립자인 레시마 소자니가 쓴 '여자는 왜 완벽하려고 애쓸까'를 권했다. 그는 "젊은 여성들은 다 읽어야 한다는 생각에 졸업생 모임 등 정말 많은 친구들에게 이 책을 선물했다"며 "아마 나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런 생각들을 써준 책이어서 많은 공감을 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는 1994년 모교인 이대 약대에 부임해 후학 양성에 힘써왔다.
이 교수는 여성 과학자 불모지였던 한국의 1세대 여성 과학자다. 서울 풍문여고 재학 시절 과학에 흥미를 느꼈다. 그는 "어느 여름날 혼자 앉아 화학을 처음부터 끝까지 쭉 공부를 했는데 너무 재미있었다"며 "그게 참 나한테는 좋은 기억인데, 혼자 새로운 것을 깨쳐보면 생기는 기쁨이 아니었을까 싶다"고 회상했다. 화학을 공부할 거면 굶어 죽지 않게 약대를 가라는 부친의 권고로 약대생이 됐다.
'여자가 무슨 공부냐' 반대는 없었을까. "제 이름을 보세요, 공주. 아버지가 큰딸을 낳고 예쁘다고 지은 이름이죠." 어머니로부터는 "남편이 벌어다준 돈으로 살림하는 건 너무 치사한 일이야"라는 말을 중학교 때부터 듣고 자랐다. "하루 종일 집에서 아내가 자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숨이 막힌다"는 남자를 만나 결혼했다.
내친김에 대학 졸업 후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에서 석사 과정을 밟았다. 순전히 공부가 재미있어서였다. 지도교수의 권유로 미국 스탠퍼드대로 남편과 동반 유학을 떠났다. 논문 쓰면서 1985년, 1987년 두 아이를 낳았다. 모두가 연구하던 DNA 대신 단백질을 전공한 그는 훗날 프로테오믹스(단백질 분석기술)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로 거듭나게 된다.
미국에 남으라는 지도교수의 만류에도 1988년 귀국한 그는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 자리 잡는다. 더한 차별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200명 박사 중에 여자는 3, 4명이던 시절 "아줌마, 점심 잘 드셨어요?"라는 멸시도 당했다. "여자는 절대 안 끼워주더라고요. 이러지 말고 여자 박사들끼리 모여보자." 그가 총대를 멨다. 점심시간마다 연구소를 돌며 여성 과학자 모임 입회원서를 뿌렸다. 그의 주도하에 1993년 회원 수 1,300여 명의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가 탄생했다.
그의 한 걸음 한 걸음이 역사를 만들었다. 이 교수는 2011년 세계여성과학기술인네트워크(INWES)의 첫 아시아인 회장을 지냈고, 2019년 대통령비서실 과학기술보좌관으로 발탁됐다. "'쓰든가 아니면 사라지든가(publish or perish).' 과학계에 유명한 경구예요. 혼자만 알고 있는 건 과학이 아니에요. 과학이 진취적이고 개방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죠. 자유롭게 열어두고 네가 옳으니 내가 옳으니 토론하고, 시간이 지나 정리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에요." 과학으로 다져진 그의 말 속에서 우리는 대립과 폭력으로 얼룩진 세상을 헤쳐나갈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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