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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보수의 거리를 걸었다

입력
2025.01.26 22:00
22면
부산광역시 중구 보수동책방골목. 코리아타임스 심현철 기자

부산광역시 중구 보수동책방골목. 코리아타임스 심현철 기자

부산에 갈 때마다 자연스레 해운대로 향하곤 했다. 하지만 부산의 원도심은 그저 지나치는 부산역 주변이었다. 이 도시는 생각보다 젊었다. 1876년 부산항이 개항하면서 본격 성장하기 시작했다. 영화로 유명해진 국제시장에 들어가 보았다. 규모가 대단했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인 거주지였지만, 해방 후 동네 이름을 광복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국전쟁 때에는 피란민들이 몰려들면서 자연스럽게 시장이 형성되었고, 이후 전국적 물류와 상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외세와 수탈, 광복과 전쟁, 그리고 포용과 개발의 역사가 젊은 도시에 켜켜이 쌓여 있었다.

전쟁 중, 남쪽에서는 메밀을 구하기 어려워 냉면을 만들 수 없었다. 그렇게 냉면의 대체재가 필요했는데, 그것이 바로 부산 밀면이다. ‘결핍의 음식’ 밀면으로 허기를 채우고 산 쪽으로 걸어가 보니, 다소 노골적으로 보이는 지명이 눈에 들어왔다. 보수대로, 보수사거리, 보수동. 역시 보수의 본산답게 동네 이름도 이런 걸까? 아니었다. 알고 보니 이 지명은 ‘보배로운 물’을 내어주는 보수산(宝水山)에서 유래한 것이었다.

보수동의 상징은 보수동 책방골목이다. 헌책방들이 모여 있는 이곳은 전쟁 당시 피란민들이 몰려들며 자연스레 헌책 거래가 시작된 곳으로, 전쟁의 어려운 시기에도 문예를 이어간 공간이었다. 좁은 골목에는 팔릴 것 같지 않은 옛날 책들이 굴비처럼 엮여 수북이 쌓여 있었다. 어떤 가게의 주인은 한강 작가님의 멀끔한 책 몇 권을 가게 앞에 진열하며 남다른 영업을 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책방에는 손님들이 끊이지 않았다.

조금 후, 옆 책방 주인이 찾아와 '소년이 온다' 2권만 빌려달라며 부탁했지만, 구하기 어려운 책이라며 단호히 거절당했다. 내 눈치로는 지하 서고에 몇 권은 더 가지고 계실 듯했다. 사람의 아름다움을 뒷모습만으로는 온전히 표현하기 어렵듯이, 책도 좁은 책등만으로는 매력을 다 드러낼 수 없다. 책은 표지라는 얼굴이 원래 크기로 구김 없이 펼쳐질 때 비로소 그 본연의 자태를 발한다.

서쪽으로 10분 남짓 걸어 임시수도기념관을 찾아갔다. 최근의 불법 계엄 사태를 보면서, 문득 1952년 부산 정치파동이 궁금해져서다. 부산이 피란수도였던 약 1,000일 동안 이곳은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었던 장소다. 아름다운 벽돌 건물은 일제강점기 당시 경남도지사 관저였고, 근대 동서양의 건축 양식이 결합된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호젓하게 둘러보는 중에 어딘가에서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리니, 과묵한 할아버지와 감정이 풍부한 할머니가 관람 중이었다. 할머니는 거의 모든 전시물 앞에서 “그렇지, 그렇지, 이 대통령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좋은 세월을 살고 있지!”라며 감탄했다. 그러다 “젊은 사람들이 여기 더 많이 와봐야 되는데…”라며 나를 보며 대견하다는 눈빛을 보냈다.

할머니의 덕담을 뒤로하고 기념관 뒤 전시관으로 들어가 보니, 자원봉사자가 입구에 앉아 있었다. 그는 정치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틀어놓고, 화면에 나오는 말을 열심히 받아 적고 있었다. 문득 생각했다. 보수라는 말은 책방골목 낡은 책 속의 오래된 말들과 유튜브의 빠르고 얕은 말들 중에 무엇과 더 어울리는 것일까?


오흥권 분당서울대병원 대장암센터 교수·'의과대학 인문학 수업' '타임 아웃'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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