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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의 사회성'이 일깨우는 인간(성)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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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 펜실베이니아 석탄광산의 아동 광부들. 사회학자 겸 사진작가 루이스 하인(Lewis Hine)의 사진. 미국 Library of Congress
1620년 식민지 ‘버지니아컴퍼니(Virginia Company)’가 영국 제임스 1세 왕실에 고아들을 빨리 안 보내주냐는 내용의 항의 편지를 보냈다. 버지니아컴퍼니는 대항해시대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이 아시아 무역을 독점하기 위해 세운 동인도회사와 유사한 영국의 신대륙 무역회사로 왕실과 귀족들이 주주였다. 당시 버지니아는 지금의 메인주에서 캐롤라이나주까지 대서양 식민지를 아우르는 지역으로 버지니아컴퍼니는 현지에 영국인들이 첫발을 디딘 1606년 설립됐다. 아동 노예 노동력이 절실하다는 게 저 편지의 요지였다. 사료는 왕실이 저 편지에 성실히 응답했다고 기록했다.
사학자들에 따르면 뉴잉글랜드 초기 정착민은 절반 이상이 백인 계약직 하인이었고 대다수가 19세 미만 청소년이었다. 평균 연령은 14~16세, 심지어 6세 아동도 있었다. 대부분 고아나 부랑아, 친부모가 양육권을 포기한 사생아였고, 친자조차 기능적 관계로 얽혀 있었다. 사학자 리처드 모리스는 당시 관습법상 소수 귀족층을 제외한 서민들의 부모-자식 관계는 주인-하인의 위계 관계 안에 있었고 노동력이 절박했던 식민지에서는 더 심했다. 아이들은 아버지(주인)의 ‘재산’으로써 숙식과 함께 최소한의 종교-직업 교육을 받는 대신 도제 기간을 거쳐 하인으로 일해야 했다. 찰스 디킨스가 소설로 고발했던 아동 노동 착취는 20세기 초까지 미국에서도 이어졌다.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한 포하탄족 여성 ‘포카혼타스’가 백인 포로가 됐다가 기독교로 개종해 런던 사교계 명사가 된 게 저 시절이었고, 그의 남편인 존 롤프도 버지니아컴퍼니에서 일한 담배 무역상이었다. 교역을 빙자한 백인들의 토지 침탈에 분노한 원주민은 1609년부터 항쟁을 시작, 1622년 저 유명한 ‘제임스타운 학살’로 당시 백인 정착민의 3분의 1(347명)을 살해했다. 희생자 다수도 노예 아동이었다. 제임스 1세는 저 사건 직후 버지니아컴퍼니를 청산하고 버지니아를 왕실 식민지로 전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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