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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층 이하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없는 이유

입력
2025.01.30 22:00
26면

1월 24일 국회 도서관에서 열린 ‘모두의 1층’을 위한 향후 과제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1월 24일 국회 도서관에서 열린 ‘모두의 1층’을 위한 향후 과제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휠체어 탄 딸이 초등학교 들어갔을 때 방과 후에 친구들을 사귀게 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또래 아이들은 상당수가 방과 후 학원에 가는 게 일과였다. 학교에서 친구를 사귈 때도 같은 학원에 다니지 않으면 쉽게 친해지기 어려웠다. 그런데 동네 대부분 학원에 아이는 물리적으로 접근할 수가 없었다. 학교 앞 3~5층짜리 작은 건물들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었기 때문이다.

왜일까? 건축법상 5층 이하 건물에는 엘리베이터 설치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건축법 64조에 따르면, 6층 이상으로서 2,000㎡ 이상인 건물만 승강기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그 이유가 기막히다. 지난 1월 24일 국회 도서관에서 열린 '모두의 1층을 위한 향후 과제' 토론회에서 한국환경건축연구원 배융호 이사가 설명한 바에 따르면, 이 법은 1973년 만들어졌다. 무려 51년 전이다. 그 배경에는 중동전쟁과 석유파동이 있다. 에너지 절약이란 명분으로 엘리베이터 설치를 억제한 법 조항이 반세기 넘게 방치된 셈이다.

이미 끝난 에너지 파동을 명분으로 이 건축법 조항이 50년 동안 막은 접근권은 어마어마했다. 휠체어를 타는 어르신도 유아차를 모는 부모들도 엘리베이터가 없는 작은 건물에 입점한 동네 병원에 가기 어려웠다. 휠체어를 탄 아이들은 집 근처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에 있는 학원에서 친구들과 어울릴 기회를 박탈당했다. 여유가 있는 집은 자동차로 엘리베이터가 있는 건물까지 휠체어와 유아차를 싣고 다녀야 했다.

‘모두의 1층’, 즉 장애인이 집 근처 생활편의시설에 접근할 권리가 지난 12월 대법원에서 겨우 기본권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이런 건축법과 같은 구시대적 독소 조항은 ‘모두의 2층, 3층, 4층’으로까지 확대되는 것을 막는다. 또 하나의 독소조항은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 중 ‘타 층으로 이동하는 수단’에 대한 조항이다. 이 수단에는 ‘장애인용 승강기, 계단, 장애인용 에스컬레이터, 휠체어리프트 또는 경사로’ 중 하나만 설치해도 된다고 쓰여 있다. 무려 장애인등편의법상에서 6층 이하의 건물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어도 되게끔 정당화한 셈이다.

이날 배 이사는 ‘접근 가능한 환경’에 대해 한 가지 더 과제를 제시했다. 모두의 1층을 넘어 2, 3, 4층까지 접근성을 확대하는 데 가장 중요한 건물은 아파트 등의 공동주택이다. 기본적인 거주 공간부터 접근성이 보장돼야 한다는 거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보건복지부에서 시행하고 있는 장애물 없는 생활시설 인증, 즉 배리어프리(BF) 인증을 현재 공공시설 위주에서 민간시설, 특히 공동주택으로 확대해야 한다.

공동주택의 접근성 강화는 초고령화 사회로 급속도로 진전하는 한국 사회에서 시급히 고쳐야 할 지점이기도 하다. “아버지가 휠체어를 타게 되셨는데 엘리베이터가 없는 아파트에 사세요. 이사할 여력은 없는데 병원 모시고 가는 것조차 힘들어졌어요.” 돌봄에 적절한 편안한 환경을 찾기 위해 개인에게 이사, 이주의 부담을 전가하는 건 평등권 차원에서 올바르지도 않을뿐더러 사회적 낭비다. 수십 년 전 만들어진 시대착오적 법조항을 폐기하고 누구나 접근 가능한 환경을 만드는 건 불안 요소를 잠재우는 사회적 투자이기도 하다.


홍윤희 장애인이동권증진 콘텐츠제작 사단법인 '무의'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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