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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동서 갈등에 탄핵 논쟁까지…이번 명절도 살얼음판

입력
2025.02.03 04:30
25면

건강·상담 : <18> 명절 가족 다툼

편집자주

인생 황금기라는 40~50대 중년기지만, 크고 작은 고민도 적지 않은 시기다. 중년들의 고민을 직접 듣고, 전문가들이 실질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한다.


형님-동서 갈등, 역할 불균형 때문
희생과 수고, 칭찬으로 거들고
정치 등 민감한 주제 언급 자제

Q: 전업주부이자 맏며느리 A(45)다. 명절이면 가장 먼저 시댁에 가서 음식을 만드는 일은 내 몫이다. 하지만 동서 B(39)는 ‘워킹맘’이라는 이유로 명절 당일에야 얼굴을 내민다. 그것도 식탁이 거의 다 차려졌을 무렵 말이다.

동서의 무기(?)는 값비싼 선물이다. 먹성 좋게 식사한 뒤 소파에 앉아 시부모님 선물 꾸러미를 풀어 놓는다. 당연히 설거지는 내 몫. 그러다 과일 좀 꺼내 와라”라는 시어머니의 말 한마디에 나도 모르게 볼멘 표정을 지어버렸고, 가족들에게 ‘속 좁은 형님’으로 치부돼 버렸다.

아슬아슬한 분위기는 저녁까지 이어진다. 사실 남편을 포함한 시댁 남자 형제들은 사이가 썩 좋진 않다. 그런데 명절에 모여 술을 마시더니 정치 얘기로 번졌고, 심한 다툼이 벌어져 경찰까지 출동할 뻔했다. 명절 때마다 온 가족이 스트레스를 받는데, 앞으로도 계속 시댁에 가야 하는 걸까?

A: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은 험난한 인생살이에서 서로에게 비빌 언덕이 되고, 이는 배우자의 가족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A씨 사례처럼 가까워지려 할수록 아픔을 주고받는 ‘고슴도치 가족’이 생각보다 많다. 명절 직후로 급증하는 가정폭력, 이혼, 상담 신청 건수 모두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한다.

명절 가족 다툼의 원인은 무엇일까?

먼저, 명절엔 해야 할 일들이 많다. 이 일을 가족끼리 나누는 과정에서 불공평한 역할 분배와 부당한 대우가 발생하면 가족 모두가 예민해진다. 예컨대 부모가 자녀 세대(며느리, 사위, 자녀)를 차별하거나 비교하면, 멀쩡하던 동서, 사위, 형제지간에도 갈등이 생겨날 수 있다. A씨의 경우도 시어머니는 좋은 선물 못 사오고 말재주 없는 맏며느리에게 명절 노동을 맡기면서 며느리의 불만을 야기했다.

둘째, 자신의 부모와 한편이 돼 배우자를 소외시키는 경우 배우자의 불만이 증폭된다. 불안한 명절 모임이 끝나고 차 안에서 배우자의 눌려있던 감정이 터져 나와 부부는 2차전을 벌인다. 급기야 ‘시댁 단절’ ‘처가 단절’이라는 엄포를 놓게 되고 부부는 출구 없는 싸움만 지속한다.

셋째, 가족이 모이는 날 가족의 갈등도 함께 모여 수면 위로 올라오기 때문이다. 지난날 가족의 갈등(편애, 폭력, 자격지심, 재산 갈등 등)을 풀지 못한 채 살아오다가, 명절에 아주 사소한 다툼을 발단으로 가족의 상처와 불만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이처럼 명절 갈등은 사소한 것에서 시작해 구성원 전체의 갈등으로 번지는 독특한 양상을 보이는데, 이 현상의 답을 우리의 뇌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탈리아 신경심리학자 자코모 리졸라티 교수는 인간의 뇌에는 타인의 감정을 느끼고 행동을 따라 하게 하는 ‘거울 신경세포(mirror neuron)’가 있어 가족의 작은 갈등이 큰 갈등으로 번지기 쉽다는 것이다.

명절 갈등은 해결도 쉽지 않다. 부부간, 부모 자녀 간, 형제간, 집안 간 갈등이 중층 구조로 형성돼 헝클어진 실타래처럼 풀기 어려운 숙제가 되기 때문이다. 마음을 터놓고 대화할 시간적, 정서적 여유도 없이 그저 떠밀려가듯 다음 명절을 걱정하게 된다.

하지만 고슴도치 가족이라 할지라도 ‘관계 단절’은 추천하지 않는다. 가족은 인간의 심리적 뿌리이자 안전 기지로, 가족 간 유대감은 심리적 면역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또 악화된 관계가 다른 가족 간 갈등으로 번지거나, 손·자녀 세대가 싸움, 회피의 기술을 보고 배우기 때문이다.

이에 명절 가족 갈등의 실타래를 푸는 데 도움이 되는 노하우 ‘F·A·M·I·L·Y’를 소개한다.

먼저, 감사(Favor)다. 명절 기간 누군가의 희생과 수고를 당연히 여기지 말고 한마디씩만 거들어 보자. “음식 너무 잘 먹었어요” “설거지는 제가 할게요” 등이다. 특히 내 조상, 부모에게 감사를 전하는 것은 배우자의 일이 아닌 내 몫이라 생각하자.

둘째, 부부 애착(Attachment)이다. 결혼이란 부모로부터 독립한 두 인격체의 결합이다. 부부 애착이 단단하면 웬만한 갈등이 생겨도 상처가 오래 남지 않는다. 명절 기간 예민해진 배우자를 조금 더 이해하고 보듬어 주자. 셋째, 상호 존중(Mutual esteem)이다. 부모라는 이유로 자녀 세대를 함부로 대하지 않아야 하며, 자녀 세대 역시 부모 세대를 어른으로 공경해야 한다.

넷째는 공평함(Impartial)이다. 명절 갈등의 상당수는 불공평한 역할 분담 때문이다. 성경의 ‘가인과 아벨’의 역사에서 보듯 차별로 인한 질투는 심각한 결과를 낳는다. 다섯째, 경계(Line)이다. 작은 갈등이 ‘편 가르기’로 번지지 않도록 적당한 경계를 유지해야 한다. 갈등은 되도록 당사자끼리 풀도록 하고, 나머지는 무신경한 것이 더 낫다. 갈등 당사자들도 시간이 조금 흐른 뒤 화해를 시도하는 것이 좋다. 특히 정치, 종교 등 민감한 주제는 화제로 꺼내지 말자.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충실하기(Yourself)다.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 포로였던 시드니 스튜어트는 ‘포로들 중 가장 먼저 죽은 사람은 몸이 건장한 현실적인 사람’이라고 회고했다. 반면에 신체가 연약한 사람은 자신을 둘러싼 혹독한 환경을 내면의 환상, 공상으로 견디며 끝까지 살아남았다고 한다. 명절의 복잡하고 시끄러운 자극에 흔들리지 않도록 내면을 단단히 채우자.



나현정 굿상담클리닉 원장·전 국가인권위원회 전문상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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