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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관세 폭탄 투하 강행… 글로벌 무역 전쟁 포문 열었다

입력
2025.02.03 04:3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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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멕시코에 25%… 중국엔 10%
펜타닐 美 유입 차단 협조 유도 명분
보복戰 예고… EU 포함 확전 가능성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워싱턴 백악관 집무실에서 규제 완화 관련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취재진과 문답을 진행하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워싱턴 백악관 집무실에서 규제 완화 관련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취재진과 문답을 진행하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캐나다·멕시코·중국을 표적 삼아 결국 ‘관세 폭탄’ 투하를 강행했다. 기어코 세계를 상대로 한 무역 전쟁의 포문을 연 것이다. 대선 승리 직후 예고는 엄포가 아니었다. 트럼프표(標) 관세에는 나라든, 품목이든 예외가 없다. 당장 멕시코에 생산기지를 둔 삼성전자·LG전자·기아 등 한국 대기업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바야흐로 ‘무역 전쟁 시대’의 서막이 열리고 있다는 얘기다.

불법 이민·마약을 막아라

트럼프 대통령은 1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州) 마러라고 사저에서 행정명령 3건에 서명했다. 백악관이 공개한 명령문을 보면 미국 동부시간 4일 0시 1분부터 캐나다와 멕시코에서 건너오는 수입품에 각각 25%의 관세가 부과된다. 아울러 중국산 수입품에는 10% 관세가 더 매겨진다. 기존 관세에 해당 관세가 추가되는 방식인데, 2020년 발효된 북미 3개국 무역협정(USMCA)에 따라 현재 대부분 제품에 관세가 붙지 않는 상태인 캐나다·멕시코의 경우 통상 질서가 확 바뀌게 된 셈이다.

예외는 원유·천연가스 등 캐나다산 에너지 제품이다. 다른 제품보다 낮은 10% 관세율이 적용된다. 미국 CNN방송은 “많은 미국인이 연료와 난방을 캐나다 에너지 제품에 의존한다. 관세는 이들 품목의 비용을 상승시킬 수 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트럼프, 캐나다·멕시코·중국 상대로 ‘관세 전쟁’ 포문. 그래픽=강준구 기자

트럼프, 캐나다·멕시코·중국 상대로 ‘관세 전쟁’ 포문. 그래픽=강준구 기자

이번 조치의 명분은 관세 부과 대상 3개국의 불법 이민·마약 미국 유입 차단 협조 유도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불법 이민자와 펜타닐을 포함한 치명적 마약이 우리 시민을 죽이는 중대한 위협이 되고 있기 때문에 국제경제비상권한법(IEEPA)을 통해 이뤄졌다”고 적었다. 이어 “우리는 미국 국민을 보호해야 하며 모두의 안전을 보장하는 게 대통령으로서의 내 임무”라고 부연했다.

고관세 지속 시점도 이에 연동된다. 특히 강조된 것은 ‘좀비 마약’으로 불리는 펜타닐이다. 트럼프 행정부 고위 관계자는 일부 외신과의 전화 통화에서 “불법 펜타닐이 미국에 유입되는 경로를 해당 국가들이 제거했다는 사실을 미국이 확인할 때까지 관세가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펜타닐이 미국인 안전 위협 요소가 된 데에는 이들 3개국 책임이 크다는 게 미국 정부 판단이다. 중국 기업들이 펜타닐 제조에 필요한 화학 연료를 멕시코의 마약 밀매 조직에 공급할 뿐만 아니라, △멕시코에서 중국산 원료로 만들어진 펜타닐이 국경을 넘어 미국에 유통되고 △캐나다에서 펜타닐과 마약성 진통제 합성 실험실을 운영하는 멕시코 카르텔이 늘고 있는데도 3국 정부가 손을 놓고 있었다는 것이다.

국내 세수 부족분을 관세로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1일 오타와에서 이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캐나다·멕시코·중국 대상 고관세 부과 관련 기자회견을 열어 입장과 대응 방침을 발표한 뒤 취재진 질문을 듣고 있다. 오타와=AP 연합뉴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1일 오타와에서 이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캐나다·멕시코·중국 대상 고관세 부과 관련 기자회견을 열어 입장과 대응 방침을 발표한 뒤 취재진 질문을 듣고 있다. 오타와=AP 연합뉴스

그러나 미국 야당은 다른 이유를 의심한다. 우파 정책인 부자 감세로 부족해질 재원을 충당하는 게 관세 부과의 진짜 목적이라는 것이다. 론 와이든 연방 상원의원(민주·오리건)은 애초 관세 부과 구상이 바뀌지 않았다고 백악관이 확인한 전날 성명을 두고 “휘발유와 식료품, 전화기, TV, 자동차 등에 막대한 관세를 부과하면 미국 노동자 가정으로선 필수 소비재들에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며 “트럼프와 그의 부유한 친구들을 위한 세금 감면의 대가를 평범한 미국인들에게 치르라고 강요하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상대국 반발은 예상된 수순이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이날 밤 기자회견을 열어 1,550억 캐나다달러(약 155조6,000억 원) 상당의 미국산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같은 세율의 보복 관세다. 핵심 광물 조달 파트너십 등이 포함된 여러 비관세 조치 역시 고려 대상이라고 말했다.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도 이날 SNS 엑스(X)를 통해 “멕시코 이익 보호를 위한 관세·비관세 조치가 포함된 플랜 B를 시행하라고 경제장관에게 지시했다”고 발표했다. 중국 상무부 대변인은 2일 홈페이지에 “국제무역기구(WTO)에 제소하고 상응 반격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동안 보복전(戰)이 격화할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번 행정명령에 상대국이 관세 등으로 미국에 보복할 경우, 관세율을 올리거나 범위를 확대할 수 있다는 내용의 ‘보복 조항’을 이미 심어 놓았기 때문이다.

“美보호무역주의 새 시대”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멕시코시티 대통령궁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멕시코시티=AFP 연합뉴스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멕시코시티 대통령궁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멕시코시티=AFP 연합뉴스

더 큰 문제는 확전 가능성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부과에 자신감을 갖고 있다. 백악관은 보도참고자료를 배포해 “캐나다, 멕시코,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에서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각각 67%, 73%, 37%인 데 비해 미국은 24%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상호 피해를 감내하는 ‘치킨 게임’이 벌어져도 자급자족 능력이 더 강한 자국이 유리하다는 논리다.

트럼프 대통령 2기 집권 뒤 첫 관세 부과인 이번 조치만으로도 이미 집권 1기 당시의 관세 전쟁 규모를 넘어섰다. 관세 부과 대상이 될 수입 규모는 2023년 기준 1조3,000억 달러(약 1,894조 원) 이상인데, 이는 트럼프 1기 행정부가 2018, 2019년 중국 수입품에 물린 네 차례 관세 규모(약 3,600억 달러)의 세 배가량이다. 멕시코·중국·캐나다는 지난해 기준 미국 수입 상품 금액의 42%를 차지하는 1~3위 교역국이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할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백악관 기자회견 때 반도체, 철강·알루미늄, 의약품, 석유·천연가스 등에 대한 품목별 관세 부과도 예고했다. 과세 시기는 이르면 이달 중순이 될 수 있다. 반도체가 주력 수출품인 한국도 영향권에 들어간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시기를 특정하지 않았으나 유럽연합(EU)에도 반드시 관세를 물리겠다는 의지까지 피력했다. 대선 국면 때 내건 ‘10~20% 보편 관세’ 공약도 대기 중이다. 에스와 프라사드 미국 코넬대 교수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트럼프에 의해 동맹국도 예외 없는 미국 보호무역주의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 국제 무역이 크게 혼란스러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FT는 “스테로이드를 사용한 무역 전쟁”이라고 규정했다.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
김현종 기자
곽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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