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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깎이 학생의 졸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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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설과 외계어가 날뛰는 세상. 두런두런 이야기하듯 곱고 바른 우리말을 알리려 합니다. 우리말 이야기에서 따뜻한 위로를 받는 행복한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배움에는 때가 없다. 앎의 열정에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 졸업식장에 앉은 늦깎이 학생들의 웃음과 눈물과 환호가 꽃보다 아름답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세상에 피지 않는 꽃은 없다. 그저 피는 시기만 다를 뿐이다. 일찍 피든 늦게 피든 꽃은 다 아름답다. 시인 나태주의 ‘풀꽃 3’이 절로 읊어지는 날이다. “기죽지 말고 살아봐/꽃 피워봐/참 좋아” 목표에 닿는 데 너무 늦은 때란 없다는 진리가 떠오른다.
특별한 졸업식이 열렸다. 서울 영등포구 늘푸름학교 졸업식장. 졸업생 평균 나이 일흔두 살, 최고령은 아흔세 살. 여든여섯 살 엄마와 예순다섯 살 딸은 함께 학교를 오갔다. 딸은 다리 아픈 엄마를 위해 매일 휠체어를 밀었다. 비나 눈이 오면 비닐을 씌웠고, 찬 바람 부는 날엔 담요를 친친 감았다. 엄마는 졸업장을, 딸은 명예학생상을 탔다.
전남 영광군 군서초등학교 졸업식은 단출했지만 뜻깊었다. 졸업생 여섯 명 중 네 명이 7080 할머니. 학사모를 쓴 여든한 살 졸업생은 속마음을 이렇게 털어놨다. “(한국)전쟁과 보릿고개로 못 배운 한을 풀었다.” 주름진 얼굴에서 '못 배운' 설움이 사라지자 웃음꽃이 곱게 피어났다.
뒤늦게 공부하는 이들의 사정은 비슷하다. 가정형편 때문에 학교에 못 갔지만, 사는 내내 애를 태우다 용기를 냈다. 고단한 손으로 연필을 다시 잡은 이유는 한결같다. 젊은 날의 ‘꿈’이다. 수학이 어렵고 혀가 잘 돌아가지 않아 꼬부랑말을 소리 내기 힘들지만, 꿈으로 다가가는 즐거움에 푹 빠졌다. 나이는 잊은 지 오래다.
늦깎이. 나이가 많이 들어서 어떤 일을 시작한 사람을 말한다. [늗까끼]로 소리 내야 한다. 그 일을 하고 싶어 꽤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고, 노력했을 때 어울린다. 늦깎이 연기자, 늦깎이 작가, 늦깎이 교수, 늦깎이 작곡가, 늦깎이 목수…. 늦게 익은 과일, 채소 등도 늦깎이라 일컫는다. 남보다 늦게 사리를 깨달아도 늦깎이다. 뜻이 썩 좋진 않다.
늦깎이는 불교에서 온 순우리말이다. ‘늦+깎이’로, 늦게 머리를 깎았다는 뜻이다. 나이가 많이 들어서 승려가 된 사람을 일컫는다. 반대말은 올깎이다. 어린 나이에 승려가 된 사람을 가리킨다. 되깎이는 승려가 속인이 되었다가 다시 승려가 된 사람을 말한다. ‘깎다’를 생각하면 '늦깍이’로 잘못 쓰는 일은 없을 게다.
신문과 방송은 ‘늦깎이’를 막 갖다 붙인다. 늦깎이 결혼, 늦깎이 취업, 늦깎이 군 입대….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늦깎이를 쓰면 말맛이 제대로 살지 않는다. 단지 시기가 늦어졌다면 ‘때늦은, 뒤늦은’으로 표현해도 충분하다.
배움에도 때가 있다고? 고리타분한 옛말이다. 배움의 열정 앞에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 배우는 이는 누구나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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