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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길, 산책 길의 내 '인생 나무' 찾기

입력
2025.02.05 04:30
27면

식물

편집자주

사람에게 따뜻함을 주는 반려동물부터 지구의 생물공동체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구체적 지식과 정보를 소개한다.


가을 국립수목원 키작은 나무언덕의 히어리길. 이유미 원장 제공

가을 국립수목원 키작은 나무언덕의 히어리길. 이유미 원장 제공

"어떤 나무를 가장 좋아하세요?" 제가 가끔 받는 질문입니다. 나무 공부를 오래하고 평생 나무 가득한 수목원에서 일해온 제게는 쉽고도 당연한 질문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곱지 않고 의미없는 식물은 없다'며 이런 저런 다양한 나무들의 이야기를 하며 살아 온 제게는 딱 꼬집어 한 나무를 고르는 것은 좀 난감한 일입니다. 그럴 때는 같은 나무라도 어떻게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지므로, 제 인생 어디에선가 만나 특별해진 "인생 나무"를 꼽습니다.

제게는 두 나무가 있습니다. 하나는 초보 연구자 시절, 막막한 순간에 고개를 돌리면, 연구실 창밖에서 곧곧하고 짙푸르게 서서 힘을 주던 전나무 세 그루 입니다. 사실, 이 땅의 전나무들과의 좋은 추억은 곳곳에 많습니다. 영혼까지 맑아지는 듯한 광릉숲의 울울한 전나무 숲길, 그 나무들의 어미나무였던 오대산 전나무 노거수의 세월, 숲 그늘 속에서 작고 어린 모습으로 견디어 내다가 때가 되면 쑥 자라올라 마지막 숲의 주인되는 드라마틱한 전나무의 생애 등이 떠오릅니다. 그러나 그 모든 순간들이 좋았지만, 처음 사회인으로 세상에 나와 벽에 부딛쳤을 때, 초록으로 바라보며 지지해주던 연구실 밖 전나무 세 그루가 바로 제 인생나무입니다.

겨울 전나무 ©송기엽

겨울 전나무 ©송기엽

또 하나는 국립수목원 키작은 나무언덕의 히어리입니다. 봄이면 작고 연한 노란꽃들이 포도송이를 만들어 잎도 없이 나무 가득 달리는데 꽃모양은 조랑조랑 귀여우면서도 노란 꽃색이 은은하니 기품이 넘칩니다. 참으로 매력적이어서 그 모습에 빠져있다보면 세상 근심일랑 잊어버리게 되지요. 여름이면 개성있는 잎새, 가을에 물드는 부드럽고 깊이 있는 부드러운 밝은 갈빛 단풍, 잎지고 난 다음 드러나는 수피의 무늬와 굴곡까지 언제나 제겐 말없이도 토닥이며 말을 거는 좋은 친구였습니다. 그밖에도 히어리는 독특한 이름의 신선함, 우리나라 특산식물이면서도 정원수로서의 가치도 충분하다는 기쁨 등 제 나무공부 곳곳에 보람과 행복을 주었던 인생나무입니다.

전나무 새순. 이유미 원장 제공

전나무 새순. 이유미 원장 제공


여러분은 인생나무가 있으신지요? 없으시다면 하나 만드시라고 강력하게 권하고 싶습니다. 세상에 있는 수 많은 존재 가운데 나무만큼 언제나 위로와 휴식과 영감을 주는 아름다운 존재는 찾기어려울 듯합니다. 어떻게 찾냐구요? 나의 출근 길, 산책 길에 걷기에만 집중하지 말고 고개를 들고 마음을 열어 둘러보십시오. 가슴에 콕 하고 박히는 인생나무가 그 곳에 오래 전부터 여러분을 기다리며 서 있을 것입니다.



전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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