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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부끄러움과의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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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0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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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5차 변론이 열린 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윤 대통령이 출석해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5차 변론이 열린 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윤 대통령이 출석해 있다. 연합뉴스

그때는 지금보다 정의로웠던 것 같다. 국정농단을 묵인하고 방조한 대통령은 자신의 무지함을 탓하며 고개를 숙였다. 무능력한 최고 권력을 책임지지 못한 죄로 여당은 엎드려 사죄했고 자신들 손으로 앞장서 철퇴를 내렸다. 무너진 민주주의 가치를 회복하겠다는 일념하에 광장은 한마음이 되고자 애를 썼다. 적어도 그해 겨울, 그들은 모두가 부끄러워할 줄 알았다. 무엇이 어떻게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각자 서 있는 위치에서 성찰하고 반성했기 때문에 비로소 가능한 일이었다. 최소한의 상식이 그나마 버텨줬기에 우리 사회는 힘겹게 나아갈 수 있었다.

비극은 더 악랄해졌다. 그가 붕괴시킨 건 헌정 질서 그 이상이었다. 지난 두 달 우리는 불법 계엄 사태보다 더 참담하고 절망스러운 시간을 꾸역꾸역 지나는 중이다. 전 세계가 실시간으로 목격한 반국가 범죄를 저지르고도 잘못을 인정하는 대신 '달 그림자' 운운하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궤변만 늘어놓는 탓에 나라는 두 동강 나는 중이다. 선동과 억지에 휘둘린 법원 폭동 사태는 공동체의 최소한의 상식과 원칙을 한순간에 무너뜨린 국가적 참사였다. 헌법과 역사는 계엄 이후 반성 없이 버티는 책임까지 묻게 될 것이다.

문제는 남아 있는 동조자 내지 방관자들이다. 한 줌의 지지율에 눈이 멀어 원칙도 상식도 저버린 여당은 '두 번의 궤멸은 없다'는 어리석은 오기로 스스로를 좀 먹고 있다. 그들은 사과를 했다지만, 받은 기억은 없다. 무엇이 잘못이란 것인지(구체적 명확성),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바뀌겠다는 것인지(실천적 진정성) 둘다 갖추지 못한 탓이다. 그건 사과가 아니라 변명이고 면피다.

불법 계엄이 잘못이라면 계엄을 행한 장본인과는 진작 절연하는 게 마땅하다. 그 어떠한 물리적 폭력에도 단호히 반대한다면, 선처라는 말은 입에 올리지 말았어야 한다. 경찰, 검찰, 대법원도 모두 존재하지 않는다고 못 박은 부정선거 근거를 찾아내야 한다는 의혹에 편승해서도 안 된다.

정치는 진영 대결의 현실이라고, 지지층을 버릴 수 없지 않느냐고 항변한다면 되묻고 싶다. 당신들은 왜, 무엇을 위해 정치를 하느냐고. 국민을 배신한 계엄, 법치를 유린한 폭력, 체제를 뒤흔든 음모가 보수가 지켜야 하는 가치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나.

이 겨울이 지나면, 대한민국 운명을 놓고 또 한 번 선택의 시간이 다가올 수 있다. 그때 가서 과거가 아닌 미래를 논하자고 외치지 말라. 뒤늦게 잘못했다며 넙죽 큰절도 말라. 이번에 기준은 보수와 진보가 아니다. 민주와 반민주, 상식과 몰상식의 대결이어야 한다. 부끄러움을 아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싸움에서 뒤늦은 비겁함은 설 자리가 없다는 점을 이제라도 깨닫길 바란다.

강윤주 국회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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