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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 꼬리표를 붙이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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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1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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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4월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이재명(왼쪽)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만나 인사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4월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이재명(왼쪽)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만나 인사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죄책은 먼저 탄핵 심판대에 올랐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그것보다 훨씬 엄중하다고 생각한다. 박 전 대통령은 부패 범죄를 저지른 것에 불과하지만, 윤 대통령은 무장한 군경을 동원한 12·3 불법 계엄 선포로 자유민주주의와 번영의 토대를 무너뜨리고 나라를 중남미 후진국처럼 만들 뻔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요즘 여론조사 결과는 당혹스럽다. 과거 박 전 대통령이 국회에서 탄핵 소추가 됐을 때는 여당 지지율이 급락했다. 소추 두 달쯤 뒤인 2017년 2월 초 한국갤럽 조사를 보면 박 전 대통령이 속한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지지율은 11%로 더불어민주당의 41%에 크게 밀렸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윤 대통령의 탄핵소추 두 달쯤 뒤인 지난달 24일 발표된 같은 기관 조사에서 국민의힘과 민주당 지지율은 38%대 40%로 팽팽했다. 탄핵 반대 여론도 꾸준히 늘어 최근에는 탄핵 찬반이 6대 4 정도 된다.

8년 전과는 다른 보수의 결집을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여론조사에서 보수가 과표집됐다거나 윤 대통령의 적극적인 자기 구명 활동에서 원인을 찾는 시각이 있다. 미국과 유럽처럼 극우의 세력화가 본격화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그러나 이런 분석들은 야당이란 변수를 간과한 한계가 있다.

한 영남권 중진 의원은 기자에게 "지역구 주민들을 만나보면 '박근혜보다 윤석열이 더 불쌍하다’고 입을 모은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야당의 '패악질'에 맞서다 비록 계엄이란 잘못된 선택을 했지만, 박 전 대통령과 달리 자기 주변의 이익을 챙기려는 사심은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야당 탓에 계엄을 했다는 인과관계에 동의하긴 어렵다. 야당이 아무리 거칠게 나와도 계엄으로 맞받는 건 균형이 맞지 않는다. 게다가 여소야대를 초래한 건 윤 대통령이다. 그럼에도 야당과 무관했던 국정농단 사건과 달리, 불법 계엄은 민주당의 입법 독주도 배경이 됐다는 선후 관계마저 부인하긴 어렵다.

8년 전에는 부끄러워했던 보수가 이번엔 화가 잔뜩 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극우 유튜버 등의 영향도 없지 않겠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윤 대통령을 극한까지 압박했던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이 탄핵의 최대 수혜자가 되는 것은 못 보겠다는 정서가 넘실댄다.

이를 극우의 준동이라고 규정하는 건 쉽다. 하지만 그러면 민주당에 필요한 자기 성찰의 공간은 사라진다. 불법 계엄이란 거대한 잘못 앞에서조차 두 쪽 난 민심에, 민주당은 여론조사 왜곡을 의심하고 2030남성들을 향해 너희는 왜 응원봉을 들지 않느냐고 타박한다. 이 대표는 정작 자기 재판은 질질 끄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다 자기 성찰이 부족해서 생기는 일 아닌가 싶다.

이성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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