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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주민 내쫓고 美 영토화?… 트럼프의 노골적인 이스라엘 편들기 논란

입력
2025.02.06 04:30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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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주의로 편향 은폐… 집권 1기 재연
부동산업자 본능도 작용… 팽창주의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공개한 ‘가자지구 재건’ 구상은 인도주의와 경제 개발 기회 확보 등 명분으로 포장됐다. 하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노골적으로 이스라엘을 편들었던 집권 1기 중동 정책의 연장선상이다. 팔레스타인인들을 터전에서 내쫓으면서도 그들의 의사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데다, 이스라엘에는 가자지구 진입의 길을 터 주려 했다는 점에서다.

가자지구 소유권을 미국이 장기간 갖겠다는 트럼프의 주장은 최근 그의 파나마운하 운영권 반환 요구, 그린란드 획득 의지 표명과도 같은 맥락이다. 영토 팽창주의가 깔려 있다는 얘기다.

선의로 포장된 권리 침해

집권 1기(2017년 1월~2021년 1월) 시절 트럼프는 국제법이나 전통적인 미국 입장을 도외시한 채, 완전히 이스라엘 측으로 기운 상태에서 팔레스타인을 배척했다. ‘정직한 중재인’ 역할을 미국이 포기했다는 혹평까지 나올 정도로 균형감을 상실했다.

2017년 12월 주이스라엘 미국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긴다고 발표하고, 이듬해 5월 예루살렘 총영사관에 대사 집무실을 차린 게 대표적 사례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관계에서 민감한 동예루살렘 영유권 문제를 의식해 미국 등 모든 나라가 주이스라엘 대사관을 예루살렘에 두지 않아 온 관례를 깬 행위였다. 당시 트럼프는 이스라엘이 시리아 골란고원을 전쟁으로 점령했는데도 주권을 인정하는 식으로 국제법 질서도 흔들었다.

이날 백악관에서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트럼프는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적절한 부지를 찾아 많은 돈으로 정말 괜찮은 장소를 만들어 줄 수 있다면 그게 (주민들이) 수십 년간 죽음을 경험한 가자로 돌아가는 것보다 훨씬 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강제 이주는 자기결정권 침해다. 어떤 지역이나 국가에서 특정 집단을 정책적으로 몰아내는 행위는 ‘인종 청소’에 해당한다. 더욱이 이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의 회담 직전 트럼프가 한 말은 팔레스타인 가자 주민들의 이주 지역이 반드시 한 군데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이산(離散)은 민족 정체성 희석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제3국 이주 요구를 팔레스타인인들이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으리라는 점은 역사를 봐도 분명하다. 가자 주민들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과 제1차 중동전쟁 이후 75만 명에 이르는 팔레스타인인이 고향에서 쫓겨나 난민으로 전락했던 비극이 언제든 재연될 수 있다는 공포에 시달려 왔다.

형해화하는 ‘두 국가 해법’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4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4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트럼프의 가자 구상은 미국 등 서방이 지지해 온 ‘두 국가 해법’(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주권 국가 공존)도 형해화한다. 이스라엘 극우 인사들은 환영 일색이다. 이타마르 벤그비르 전 국가안보장관은 엑스(X)에 “유일한 가자 문제 해법은 주민의 이주였다”고 썼다. 베잘렐 스모트리히 재무장관은 트럼프의 대선 구호인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본떠 X에 “우리는 함께 세상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것”이라고 적었다.

해당 계획에 부동산 개발업자 출신인 트럼프의 사업 본능이 반영됐을 가능성도 있다. 중동 특사 스티브 위트코프 역시 부동산업자 출신이다. 뉴욕타임스는 “가자 해안가 부동산은 매우 가치가 있을 수 있다”는 재러드 쿠슈너(트럼프의 사위)의 지난해 발언에 착안했을 수도 있다고 짚었다.

대통령 자격으로 국가 경영을 맡으며 땅 욕심이 영토 확장 욕망으로 진화했으리라는 짐작도 터무니없는 건 아니다. 트럼프는 지난달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를 그린란드에 보냈고, 이달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을 파나마로 보냈다. 진지하다는 뜻이다.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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