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딥시크 돌풍의 키워드 ‘오픈’

입력
2025.02.06 16:30
26면
구독

중국발 오픈소스 영향력에 주목
연구현장서 이어진 개방 트렌드
경제산업으로 확산해 혁신 창출

편집자주

과학 연구나 과학계 이슈의 의미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일들을 과학의 눈으로 분석하는 칼럼 ‘사이언스 톡’이 3주에 한 번씩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중국 스타트업이 내놓은 저비용 고성능 인공지능 모델 딥시크 앱. 로이터

중국 스타트업이 내놓은 저비용 고성능 인공지능 모델 딥시크 앱. 로이터

중국 스타트업이 내놓은 저비용 고성능 AI 모델 딥시크 돌풍에서 유독 눈에 띄는 단어가 ‘오픈(open)'이다. 소스 코드를 온라인에 공개해 누구나 접근하고 활용할 수 있게 한 개방형 AI라서다. 물론 알짜 자료는 숨겨 놓고 오픈 모델인 것처럼 홍보하는 ‘오픈 워싱’ 아니냐는 반박도 적지 않지만, 중국 체제의 폐쇄성을 감안하면 개방형 AI의 등장은 중요한 의미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중국산 오픈 AI 모델이 그간 넘사벽처럼 여겨졌던 챗GPT 성능을 넘보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미국 빅테크들의 기술 독점에 머잖아 마침표가 찍힐 거란 예고이기도 하다. 딥시크가 자료를 얼마나 오픈한 것인지까지 개발자들 사이에서 논쟁이 촉발될 만큼 AI 산업에서 오픈소스 영향력은 크다.

‘오픈’이라는 키워드에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이유는 AI에 앞서 다른 과학기술 영역에 먼저 스며들었던 개방형 트렌드가 적잖은 변화를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가시적 성과가 두드러진 분야가 바이오다. 지난해 국산 항암제로 처음 미국 허가를 받은 ‘렉라자’는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의 결실로 평가받는다. 소규모 바이오 기업이 보유한 기술의 가치를 중견 제약사가 포착해 도입했고, 해외 빅파마에 이전해 임상시험과 허가 과정을 함께 완주한 덕에 신약이 세상에 나왔다. 기업이 외부 자원을 활용해 혁신에 드는 비용을 줄이고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오픈 이노베이션은 돈이 많이 들고 실패 위험이 큰 신약개발의 새로운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오픈소스의 확산이 AI 산업에서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오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과학기술계는 오픈 데이터의 중요성에도 오래전 눈을 떴다. 온라인에 흩어져 있는 데이터를 분석, 가공하면 가치 있는 정보를 추출해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 개발에 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특히 다양한 분야에서 합법적, 체계적으로 확보된 공공 데이터는 사회문제 해결에 유용한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여러 국가가 공공 데이터 개방을 확대하는 정책을 펴온 배경이다.

레거시 학술지의 장벽을 허물기 위해 등장한 오픈 액세스 저널은 게재된 논문을 누구나 비용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게 해 학술 정보의 접근성, 지식의 공공성을 크게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중 일부가 돈만 내면 출판 윤리를 어기거나 내용이 부실한 논문까지 실어주면서 이른바 약탈적 학술지로 변질되는 부작용이 나타나긴 했지만, 연구개발 생태계가 한층 더 개방적으로 돌아가도록 만드는 데 기여한 것만은 분명하다.

과학기술의 개방성은 연구개발 과실이 폐쇄성을 고수한 쪽으로 쏠리지 않도록 해 궁극적으로 균형 있는 발전과 의미 있는 혁신을 이끌 토대가 된다. 오픈 트렌드는 산업과 경제 분야로도 확대돼 공유숙박, 공유오피스, 나아가 공유경제 같은 온라인 기반의 개방형 비즈니스 시장을 창출하며 영향력을 입증해 보였다. 덕분에 이젠 재화나 공간을 다수와 나눠 쓰는 데 익숙해졌고, 소유와 공유의 경계가 헐거워졌다.

개방성은 과학을 넘어 사회 전반의 대세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중국발 오픈소스의 등장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 거대한 변화의 흐름을 꾸역꾸역 거스르며 독보적인 속도로 퇴행 중인 이들이 있다. 탄핵심판에 나와 궤변을 쏟아내는 대통령을 폐쇄적인 진영 논리에 기대 지키려는 일부 정치인과 극우 지지자들 말이다. 불법계엄 대통령이 혐오해 마지않는 중국의 기술 진보에 세계가 들썩이고 있다. 이 역시 음모론으로 치부할 건가.

임소형 미래기술탐사부장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