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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서브스턴스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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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브스턴스'의 한 장면. 엘리자베스는 젊은 시절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유명 배우이나 나이 오십이 되면서 초등학교 동창생만이 관심을 보이는 퇴물 신세가 된다. 찬란 제공
나이에 민감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새해를 맞이할 때면 언제나 나이 한 살을 더 먹는다는 점을 상기한다. 설날에 '떡국을 먹어야 한 살 더 먹는다'는 옛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에게 새해와 나이듦은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설날에 떡국은 안 먹고 영화 '서브스턴스'를 봤다. 전신 성형설이 있었던 배우 데미 무어가 여성의 아름다움과 젊음에 대한 집착에 관한 영화를 찍었다니, 오랜만에 보는 데미 무어도 영화도 궁금했다. 이 정도 호기심으로 영화관에 들어갔다가 정말이지 제대로 혼나고 나왔다.
영화 내용은 이렇다. 한때 톱스타였던 엘리자베스는 50살이 되자 '어리고 섹시하지 않다'는 이유로 연예계에서 외면받는다. 그러던 중 우연히 '더 젊고 더 완벽한 나'를 만들어 낸다는 '서브스턴스'라는 약물을 접한다. 본래의 '나'는 그대로 있고, 일종의 복제품처럼 그러나 더 젊고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새로운 나'가 하나 더 만들어지는 약물이다. 그렇게 엘리자베스는 더 젊고, 더 완벽한 새로운 '수'(Sue)를 만들어냈다. '새로운 나'인 수는 '원래의 나' 엘리자베스의 척수를 빼내어 이를 원료 삼아 살아간다. 하나지만 둘이고, 둘이지만 하나인 이 엘리자베스와 수는 하나의 규칙을 지켜야 했는데, 바로 7일간 돌아가며 활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명이 활동을 하는 동안 다른 한 명은 영양을 섭취하며 쉰다(?).
문제는 '젊고 아름다운' 수가 더 많은 활동을 원한다는 것이다. 외모는 수이지만, 실제 본체는 엘리자베스인 만큼 수는 젊고 아름다운 외모를 갖춘 채 엘리자베스가 과거 젊었을 때 누렸던 인기를 누린다. 반면 나이 든 엘리자베스는 수를 만들어내자 오히려 수와 비교하며 자신을 더 초라하게 느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수는 7일이 너무 짧게 느껴진다. 결국 7일씩 균형을 맞추어야 하는 규칙을 어기게 된다. 몇 시간씩, 하루씩 규칙을 위반하다가 어느덧 통제 불가능한 수준으로 수의 활동량을 무한정 늘리게 된다. 주인공의 젊음과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 끝에 관객이 마주한 것은 끔찍한 괴물의 형상이다(그 과정은 직접 영화로 보길 바란다).
'내면을 가꿔야지 외모에 집착하면 안 된다' 정도의 메시지는 이미 익숙하다. '서브스턴스'도 결국 젊음, 외모에 대한 집착에 대한 영화다. 그러나 이 영화는 이를 보다 적나라하게, 외모와 젊음에 대한 집착을 끝까지 밀어붙여 그 끝을 보여준다. 관객에게 따지는 것 같다. 과연 익숙한 위 메시지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 맞느냐고 말이다. 영화를 보면서 이렇게 괴로운 적이 있던가? 영화가 끝났으면 좋겠다고, 이제 알겠으니 제발 그만하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난생처음으로 중간에 구역질이 나와 영화관 밖에 잠시 나가 숨을 고르고 오기도 했다.
영화는 관객의 안위(?)는 아랑곳 않고 폭주한다. 외모에 집착하는 네 자신을 보라고, 혹은 외모에 집착하는 당신이 만들어내는 것이 무엇인지 한 번 보라고, 도망가지 말고 똑바로 직시하라고 거침 없이 혼낸다. 주인공의 몸은 결국 마지막에 얼굴만 남는다. 서브스턴스는 물질이란 뜻 외에 실체, 본질이란 뜻도 있다. 주인공의 실체는 텅 비어있음을 보여주는 엔딩 같았다.
나이 듦보다는 나를 채우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한 해를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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