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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고래야 넌 아무 잘못 없단다

입력
2025.02.10 04:30
수정
2025.02.10 08:57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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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부 1차 시추 뒤 "경제성 없다"
"정무적 개입 죄송" 뒤늦은 사과
정책적 신뢰 회복 노력부터 해야

휙_대왕고래실패_썸네일

휙_대왕고래실패_썸네일

또 한 번의 깜짝 발표가 온 나라를 흔들고 있다. 6일 산업통상자원부 고위 관계자는 웨스트 카펠라호가 동해 가스전 '대왕고래' 유망 구조에서 한 달 넘게 진행한 첫 번째 시추 결과 "퇴적층을 1,716m 정도 팠는데 가스 포화도가 생산은 물론 추가 시추마저도 소용없을 만큼 경제성이 없다"고 알렸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이 관계자는 "생각지 못했던 정무적 개입, (경제적 가치에 대한) 비유가 정치권에서 논란이 되는 등 의도치 않았지만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현장에 있던 기자들은 물론 대다수 산업부 관계자조차 예상하지 못했다.

그동안 산업부는 이번에 확보한 시료를 전문기관에 보낸 뒤 5, 6월쯤 분석 결과를 공개할 것이라 했는데 그걸 생각하면 시기도 내용도 충격적이다. 한 공무원은 2024년 6월 3일에 느꼈던 놀라움에 버금갔다고 했다. 그날 윤석열 대통령도 예고 없이 '1호 국정 브리핑'을 했다. 그는 대왕고래에 최대 140억 배럴의 석유·가스가 묻혀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결과를 알렸고, 안덕근 산업부 장관은 그 경제적 가치가 "삼성전자의 시가총액 다섯 배 수준"이라고 맞장구쳤다.

폭탄이 연이어 터졌는데 두 차례 모두 그걸 던진 건 대통령, 장관을 포함한 최고위 공무원들이다. 발표에 대한 근거를 명확히 제시하지 못하니 정책 신뢰도를 기대하기란 무리다.

전문가들은 보통 자원 개발의 1차 탐사에서 의미 있는 결과를 얻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한다. 시추하며 지질 구조, 가스 포화도 등 정보를 모으고 자원이 묻혀 있을 위치의 범위를 좁혀가는 게 일반적이다. 그 과정에서 실패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왕고래는 다르다. 가장 큰 이유는 정무적 개입이다. 국정 지지율이 취임 이후 가장 낮아진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대왕고래를 통해 만회해 보려 했으니 과학적, 기술적 접근은 처음부터 뒤로 밀렸다. 이 상황에 대한 책임은 대통령, 장관에게만 있지 않다.

이들이 설익은 결정을 하는데 한국석유공사, 산업부, 대통령실 관계자들의 잘못은 없었는지 따져봐야 한다. "로또 확률"이라는 산업부 관계자 말대로 쉽지 않은 일이기에 구멍을 뚫기 전 더 꼼꼼하게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세계 3대 신용평가사 S&P, 국내 증권사들도 그랬다. 그런데도 비토르 아브레우라는 지질 전문가의 분석 결과만 앞세워 밀어붙였다. 그랬던 그들이 8개월 만에 고백에 반성에 사과까지 하니 어리둥절하다.

그래 놓고 석유공사나 정부는 '오징어', '명태' 등 또 다른 유망 구조를 시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낸다. 해외 개발사들이 긍정적으로 지켜본다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하지만 정부 스스로 대왕고래의 실패를 선언했기에 그 관심이 계속되리란 보장도 없다. 그런데도 이를 내세워 반대하는 정치권을 압박해 예산을 따내려는 것이라면 이 역시 정무적 개입이다. 시추 자체보다도 과정에서 스스로 신뢰도를 떨어뜨린 큰 잘못을 해놓고 이를 되찾을 노력은 하지도 않고 '흔한 실패를 한 번 했을 뿐'이라는 장관은 뻔뻔하다. ①부실한 검증 ②설득 근거 마련 실패 ③최고 권력자의 무리한 결정에 당당히 '아니요'라 답할 의지 부족 등은 윤 정부 고위 공직자들 책임이다. 동해 바닷속 대왕고래와 그 친구들은 아무 잘못 없다.


박상준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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