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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힘이 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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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여행을 기록해 책으로 만들어 두었다.
지난주 요양원에 모시고 있던 장모가 갑작스러운 고열로 응급실에 실려가셨다. 알츠하이머 환자로 15년 넘게 와상생활을 하고 계셔서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응급진료 진행을 위한 연명치료, 거부 동의서가 눈앞에 놓여지자 이별의 시간이 현실로 느껴졌다. 연명치료 중단 결정이 단순히 치료를 멈추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존엄과 가족의 사랑을 최우선으로 두는 선택이라고는 하지만 남은 가족들이 쉽게 감당할 수 있는 결정은 아니었다.
정신을 추스르고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하나둘 정리했다. 만기가 훨씬 지나 잊고 있었던 상조 서비스의 장례지도사에게 전화를 걸어 이것저것 필요한 절차도 알아가며 유불리를 따지고 있자니 나 자신이 이미 이별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 같아 자괴감이 들었다.
회사 사무실에 앉아 부재 시 해야 할 업무를 조금씩 해두고 짬을 내 장모의 영정을 찾아봤다. 가능한 한 오래되지 않은 것, 좋은 추억이 담겨 있는 것, 사랑이 가득 담긴 눈빛, 화려하지도 투박하지도 않았으면 좋겠고...
언제 긴급전화가 올지 몰라 진동에서 벨소리 모드로 바꿔 놓은 시한폭탄 같은 휴대폰을 양손에 잡고 웹하드에 저장된 사진들을 뒤적거렸다. 평소 찍어온 사진들을 사람, 장소,시간별로 폴더를 만들어 잘 정리해 두었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머릿속에 그리고 있던 사진은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나름 꼼꼼하답시고 원래 폴더에서 꺼내 나중에 잘 찾을 수 있게 '특별' 보관한 탓이다. 불안한 마음은 바빴지만 사진 원본을 찾기 위해 분류해 놓은 사진 폴더들을 하나씩 차근차근 살펴보며 기억을 다시 더듬었다.
바닷가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음 행선지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장모가 바다를 좋아했었나? 산을 좋아했었나?"
장모의 기억이 사라진 뒤로 우리 가족은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은 하루라도 함께 여행을 가겠다고 계획을 세웠다. 거동이 불편해 해외여행은 불가했기에 자동차에 휠체어를 싣고 전국 방방곡곡을 다녔다. 숙박이 힘든 곳에서는 차안에서 같이 쪽잠을 잤고 풍경 좋은 곳이라면 전망 좋은 숙소에서 욕조에 물을 가득 받아 그동안 쌓였던 묵은때를 시원하게 벗겨내기도 했다. 잘 모시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잊기 위해 적극적으로 추억을 수집해 쌓아갔다. 그리고 사라진 기억의 공백은 사진으로라도 메울 수 있기를 바랐다.
사진을 찾아보기 전에는 꽤 많은 곳을 다녔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세어보니 여행 횟수가 열 손가락을 넘기지 못했다. 몇번의 여행을 같이하며 나와 아내가 억지로 쌓아놓은 추억들이 장모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았는지 알 길은 없다. 다만 사진 속 이야기들이 장모의 남은 생을 유지하는 데 작은 힘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마음속에 있던 좋은 추억의 사진은 결국 찾지 못했다. 그 사진은 나의 바람이었을 뿐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대체할 만한 사진을 찾아 인화를 맡기고 액자를 골랐다. 영정을 맞이하는 와이프의 슬픔까지 감당할 자신이 없어 회사로 배송시킨 사진이 도착하던 날 병원으로부터 환자의 상태가 호전되어 일반병실로 옮겼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직 준비되지 않은 이별에 조금 더 시간이 주어졌다. 배송 박스를 뜯어 따뜻하고 촉촉한 눈빛을 서로 교환했다. 그리고 기쁨과 슬픔이 교차된 15여 년간의 기록들을 다시 되돌아보며 잠시 이기적인 위안의 시간을 갖는다.
구산포 해수욕장에서 함께 일출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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