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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부작용 여성이 더 높고, 유방암 남성 사망률 더 높고···“성차의학 아직 걸음마 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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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분당서울대병원 성차의학연구소장(소화기내과 교수)이 5일 경기 성남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성차의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대한성차의과학회 초대 회장을 맡고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제공
“지금 생각하면 황당하죠. 옛날엔 소아에게 쓸 약물 용량을 어른 기준으로 생각했어요. 10㎏ 어린이에게 줄 약의 양을 60㎏ 성인 용량의 6분의 1로 계산한 거예요. 어른과 아이의 대사활동 등이 다르다는 게 알려지면서 바뀌었지만, 남녀 차이를 연구하는 성차(性差) 의학은 아직도 걸음마 단계입니다.”
김나영 분당서울대병원 성차의학연구소장(소화기내과 교수)은 5일 “남녀는 체질량과 생식기능, 성호르몬, 성염색체와 같은 유전자 등이 다르기 때문에 성별에 따라 질환의 발생이 다를 수 있고, 같은 질환이라도 다른 증상을 보인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날 경기 성남시 소재 분당서울대병원에서 만난 김 교수는 “의학계에서 ‘여성은 작은 남성이 아니다’라는 인식이 생긴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며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생각하지 않은 의약품이 여성 환자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힌 사례도 여럿”이라고 설명했다.
김 소장에 따르면, 미국 회계감사원이 1997~2001년 사이 부작용 때문에 시장에서 퇴출한 의약품 10종 중 8종의 경우 여성이 겪는 부작용이 남성보다 더 컸다. 소화불량에 쓰였던 시사프라이드가 대표적이다. 시사프라이드는 소화를 돕고 메스꺼움을 없애는 효과가 우수했으나, 여성에게서 부정맥과 심장마비 등이 나타났다. “조사해보니 시사프라이드는 심박동을 길게 하는 작용이 있었어요. 남성보다 심박동 간격이 긴 여성이 약을 복용할 경우 심장박동 간격이 더욱 벌어지면서 심장마비 등이 온 겁니다.”
불면증 환자에게 널리 처방되는 수면제 졸피뎀도 남녀 간 차이를 간과한 약품 중 하나다. 미국에서 졸피뎀 복용 이후 교통사고가 발생하는 문제가 잇따르자 관련 연구를 진행했는데, 같은 용량의 졸피뎀을 복용하더라도 여성은 해당 약물이 체외로 배출되는 속도가 느린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은 체지방이 많기 때문에 지방에 잘 흡수되는 졸피뎀이 더 오랜 시간 체내에 머물며 인지기능 등을 낮춘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식품의약국(FDA)은 여성에게는 졸피뎀의 처방 용량을 남성의 절반으로 줄이도록 했다.
김 소장은 “남성 위주로 진행된 임상시험 결과가 여성에겐 맞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개개인의 특성을 고려한 맞춤의학이 미래 의학의 모습인 만큼 질병 진단, 약물 처방 등에 있어서 남녀 간 차이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성차의학은 남녀 모두의 건강을 위한 학문”이라고 강조했다. 질환의 진단과 치료가 남성 중심으로 발달하면서 상대적으로 여성이 피해를 본 것처럼 여성 질병이란 이유로 간과하다가 치료시기를 놓치는 남성도 많기 때문이다.
실제 국내 70대 남성의 18%가 골다공증을 갖고 있지만, 치료받는 이는 전체의 16.2%에 불과하다. “국내에서 매년 100여 명 정도 남성이 유방암에 걸립니다. 전체 환자 중에서 약 0.4% 정도 돼요. 그런데 호르몬과 결합하는 호르몬 수용체의 분포가 달라서 고위험 유방암 발생 위험이 더 높고, 상대적으로 늦게 진단되는 탓에 5년 생존율은 여성보다 낮아요.”
남녀에 따라 유병률이 차이 나는 경우도 있다. 그중 하나가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감염이다. 통상 남성의 감염률이 4~7% 높은데 이는 여성이 더 많은 사이토카인 수용체를 갖고 있어서다. 사이토카인 수용체가 많을수록 면역력이 높아진다. 여성과 관련한 X염색체에는 사이토카인 수용체가 1,000개 이상 있는 반면, 남성과 관련한 Y염색체에는 100개 정도밖에 없다.
“같은 질환이어도 남녀에 따라 다른 증상으로 나타나는 점도 성차의학의 중요성을 뒷받침하는 사례”라고 김 소장은 설명했다. 일례로 심근경색의 경우 남성에겐 가슴 통증이 주된 증상이지만, 여성은 속이 쓰리거나 가슴 답답함이 주요 증상이다. 대장암의 경우 여성은 오른쪽에서, 남성은 왼쪽에서 암이 더 많이 발병한다. 그는 “여성은 남성보다 5~7년 늦게 대장암이 발병한다”며 “현재 대장암 국가검진은 50세 이상 남녀를 대상으로 진행되는데, 대장암 발병 시기가 빨라지고 있기 때문에 남성은 45세, 여성은 50세로 관련 기준을 바꾸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이어 “위암은 남성이 여성보다 두 배 더 발병률이 높지만, 치매는 여성이 더 많이 걸린다”며 말을 이었다. “질환에 따른 남녀 격차는 많이 알려졌으나 왜 이런 차이가 나는지에 대해선 크게 밝혀진 게 없어요. 환자 개개인의 특성을 고려한 ‘정밀 의료’로 가려면 그 한 축으로 성차의학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의료현장에 적용돼야 합니다.”
2023년 국내에선 처음으로 병원 내 성차의학연구소를 설립하고 소장을 맡았던 그가 지난달 창립한 대한성차의과학회 초대 회장에 오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김 소장은 “질환 발병의 남녀 차이와 원인 등을 밝히는 데 의학‧간호학‧약학‧기초과학을 아우르는 연구를 수행해 나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10여 년 전에 이미 성차의과학이 자리를 잡은 미국‧유럽과 달리, 아시아에서 성차의과학 학술단체가 출범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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