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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기업과 한국경제의 미래

입력
2025.02.12 04:30
25면

예전부터 한국 교육의 핵심적 특징은 주입식 교육으로 인식되어 왔다. 치열한 입시 경쟁은 시험 문제를 빠른 시간 내에 효과적으로 풀 수 있는 '기법'을 알려 주는 사교육 시장의 급성장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창의성이라고는 눈을 비벼도 찾기 어려운 척박한 교육 풍토에서도 혁신 기업들의 창업과 성장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현실은 참으로 신기하다.

흔히 국내에서는 가업 승계 등의 현실적 어려움으로 장수기업이 적다는 게 문제로 지적되나, 오히려 유럽에서는 장수 기업이 너무 많은 것을 문제로 생각한다. 2000년 기준 스웨덴의 시총 상위 50개 기업 중 1970년 이전에 창업된 기업은 하나도 없다. 반면, 국내에는 창업 1세대가 공정거래법상 자산 총액 5조원 이상인 공시대상 기업집단의 총수인 경우가 상당히 많다. 네이버, 넥슨, 넷마블, 다우키움, 두나무, 미래에셋, 셀트리온, 에코프로, 카카오, 쿠팡, 크래프톤, 하이브 등 일반 대중들도 익숙한 테크 기업들이 혁신 과정에서 도태된 전통 기업들을 대체하면서, 일상 생활과 한국 경제의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자국어로 개발된 검색엔진을 가진 나라는 미국, 중국, 러시아, 대한민국 등 4개에 불과하다. 트럼프 정부 출범으로 살짝 시들해진 ESG 열풍도 혁신 기업의 출몰이 더딘 유럽에서 미국, 중국의 혁신 기업에 대한 무역 장벽의 일환으로 대두되었다는 시각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네이버, 카카오, 쿠팡이 구글, 아마존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과의 경쟁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기특하고 다행스럽다. 작년 기준으로 네이버가 창업 25년만에 매출 10조원을 달성한 것은 한국 경제와 산업 구조 변화에 있어 중요한 이정표다. 쿠팡이 매출 40조원을 달성했으나, 네이버는 직매입이 대부분인 쿠팡과 달리 50조원에 달하는 이커머스 판매금액 전체를 매출로 잡지 않고 수수료 4~5%만 매출에 반영하므로, 매출의 4분의3은 유통을 제외한 검색, 광고, 클라우드, 콘텐츠 등 기술중심 IT 서비스업에서 발생한다. 계열사 중복 상장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카카오와 달리, 미국 기업처럼 단일상장체제를 유지하고 있고, 한국 상장기업/기업집단의 고질적 거버넌스 문제인 지배주주일가 소유 개인회사에 대한 일감몰아주기 등 사익편취성 거래도 없다. 주가도 코로나 기간 중 최고점에 비하면 부족하지만, 극심한 부진 속에 있는 국내 증시 상황을 고려하면 최근 흐름은 긍정적이다.

한국 경제를 선도하던 제조업 분야는 인력난, 개발도상국 들과의 경쟁심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리도 선진국들처럼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서비스업 중심으로 경제구조가 바뀌어야 하는데, 한국 IT 산업이 한국 및 세계 경제에서 더 큰 역할을 하려면, 도전적인 글로벌 전략과 기술 개발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인공지능, 클라우드, 로보틱스 등 미래 산업에서 리더십을 강화해야 한다. 최근 중국 딥시크의 등장으로 엔비디아 주가가 폭락하는 등 AI 시장 판도에 심상치 않은 조짐이 보이고 있다. 이 와중에 한국 대표 테크 기업들이 다시 한 번 큰 역할을 하기를 기대해 본다.


김우진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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