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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 몽골서 한국 찾아와 생명 찾았다… '효성 독수리 오형제' 도운 사람들

입력
2025.02.16 07:0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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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진 상태 발견된 독수리 구호를 후원
'윙태그'·위치추적기 등 장착해 돌려보내
"생물다양성 보전이 기업 활동의 토대"

편집자주

세계 모든 기업에 환경(E), 사회(S), 지배구조(G)는 어느덧 피할 수 없는 필수 덕목이 됐습니다. 한국일보가 후원하는 대한민국 대표 클린리더스 클럽 기업들의 다양한 ESG 활동을 심도 있게 소개합니다.


효성그룹 임직원과 자연과사람들 관계자들이 2024년 2월 2일 경남 김해시 화포천습지에서 '윙태그'(Wing Tag)를 단 독수리 '효성 2호'를 날려보내고 있다. 자연과사람들 제공

효성그룹 임직원과 자연과사람들 관계자들이 2024년 2월 2일 경남 김해시 화포천습지에서 '윙태그'(Wing Tag)를 단 독수리 '효성 2호'를 날려보내고 있다. 자연과사람들 제공


"독수리는 방치된 동물의 사체를 먹어 치워 전염병 확산을 억제하는 '자연의 청소부' 입니다. 이 때문에 개체 수가 줄어들면 결국 인간의 건강에도 악영향을 끼쳐요. 지구상 모든 생물은 생태계 유지에 각자의 역할이 끈과 같이 연결돼 있는 것이죠."

효성그룹과 함께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인 독수리 구호에 앞장서고 있는 환경단체 자연과사람들 곽승국 대표의 말이다. 그는 2023년 12월, 2024년 1월 부산시 낙동강 하구 등지에서 탈진한 독수리 세 마리를 구조해 낙동강하구에코센터로 보냈다. 이들이 건강을 회복하자 날개에 '윙태그'(Wing Tag)를 달아 효성 임직원과 함께 '세계습지의 날'이었던 2월 2월 경남 김해시 화포천습지에서 날려보냈다. 윙태그란 고유 번호가 들어간 표식을 새의 날개에 부착해 이동 경로를 추적하고 연구·보전하는 데 쓰는 것이다.

이들은 '효성 1·2·3호'라고 이름 붙였다. 효성은 2023년 11월부터 자연과사람들이 국내산 농축산물을 매입해 화포천습지를 찾는 철새에게 먹이를 제공하는 데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곽 대표는 2010년 이곳에서 철새에게 먹이를 주기 시작해 2012년부터는 주 2회 소·돼지·닭고기와 부산물 등을 한 번에 400㎏가량 주고 있다. 곽 대표가 말하는 '독수리 식당'을 연 이후 몽골에서 겨울철 이곳까지 날아오는 독수리 개체 수는 해마다 늘어 올해는 최대 600여 마리로 추산된다.

곽 대표에 따르면 이들이 중국이나 북한에 머무는 경우는 드물다. 독수리 가운데 겨울철 몽골에서 한국까지 날아오는 종인 '벌처'(Vulture)는 대부분 동물 사체를 먹이로 삼는다. 살아 있는 동물을 사냥해 먹이로 삼는 흰머리독수리 등 '이글'(Eagle)과는 다른 종이다. 이들이 유독 한국을 많이 찾는 이유는 "동물 사체를 전통 약재로 활용하는 중국에서는 야생 상태에서 먹잇감을 구하기 어렵고 북한은 식량 사정이 열악해서"라고 한다.

세 살 이하 어린 개체가 대부분인 것도 이들의 특징이다. 곽 대표는 "한겨울 영하 50도까지 내려가는 몽골의 강추위에 시달리고 먹이 경쟁에서도 밀린 아기 독수리가 상승 기류를 타고 빠르면 8일 만에 이곳까지 온다"고 했다. 이들은 먹잇감이 부족한 북한 지역은 이틀 정도면 지난다고 한다. 가끔 위치추적기(GPS 트래커)를 단 독수리가 평양, 북한 제2의 도시인 강원 원산시 인근에 2, 3일 동안 머무는 모습이 포착되는데 축사나 양계장 주변으로 추정된다.



한국서 겨울나기도 만만치 않네...

효성그룹 임직원이 2024년 2월 2일 경남 김해시 화포천습지에서 '윙태그'(Wing Tag)를 부착한 독수리 '효성 1호'를 날려보내고 있다. 자연과사람들 제공

효성그룹 임직원이 2024년 2월 2일 경남 김해시 화포천습지에서 '윙태그'(Wing Tag)를 부착한 독수리 '효성 1호'를 날려보내고 있다. 자연과사람들 제공


하지만 한국에서도 이들의 겨울나기는 만만치 않다. "우여곡절 끝에 온 뒤에도 먹잇감을 찾지 못해 탈진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환경파괴는 물론 1990년대 말 이후엔 농가에서 축사나 양계장 근처의 두엄 밭에 폐사한 가축을 던져 넣는 일이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낙동강 하구에 서식하는 겨울 철새는 1970년대엔 약 100만 마리였지만 최근엔 약 13만 마리에 그치고 있다. 이들 철새 사체가 나오면 독수리의 먹잇감이 될 수 있는데 그마저 줄어든 셈.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 이후 습지가 줄어들면서 철새 수는 더 감소했다고 한다. 곽 대표는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탈진한 독수리는 사람이 다가가도 도망치지 못할 정도라서 구조하는 것"이라며 "대부분 6kg 안팎으로 정상 체중(10~12kg)의 절반 정도인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겨울철 한국을 찾는 독수리 떼는 화포천습지뿐 아니라 경남 고성군 등 전국 10여 곳에서 관찰되며 총 2,500마리 정도로 추정된다. 이들에게 먹이를 주고 구조한 개체는 부산 낙동강하구에코센터, 진주시 경남야생동물센터 등으로 보내 살을 찌운 뒤 이곳 습지에서 날려보낸다. 독수리 무리가 있는 곳에 풀어줘야 생존율이 높아지는데 매년 11월 말부터 이곳을 찾는 이들은 늦어도 4월 초에는 몽골로 향한다.

최근에도 이 같은 일이 있었다. 지난해 12월, 올해 1월 낙동강 하구에서 독수리 네 마리가 탈진 상태로 발견된 것. 곽 대표와 활동가들은 이들을 낙동강하구에코센터로 보내 원기를 회복시킨 뒤 1월 23일 화포천습지에 놓아줬다. 효성 1·2·3호에 단 것과 같은 윙태그와 함께 GPS 트래커도 단 두 개체엔 효성 4·5호란 이름을 붙였다. 한국에 왔다 구사일생한 '효성 독수리 오형제'가 나온 셈.


효성 1·2·3호가 한국 다시 찾지 않은 이유는

효성그룹 직원들과 낙동강하구에코센터 관계자들이 1월 23일 경남 김해시 화포천습지에서 '윙태그'(Wing Tag)를 부착한 독수리 '효성 5호'를 날려보내고 있다. 자연과사람들 제공

효성그룹 직원들과 낙동강하구에코센터 관계자들이 1월 23일 경남 김해시 화포천습지에서 '윙태그'(Wing Tag)를 부착한 독수리 '효성 5호'를 날려보내고 있다. 자연과사람들 제공


앞서 윙태그를 달아 날려보낸 효성 1·2·3호는 이번 겨울엔 한국에 오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곽 대표는 귀띔했다. 환경단체 활동가, 조류학자 등이 윙태그를 단 독수리 개체 정보를 한반도 독수리보전네트워크에 공유하는데 이들을 발견했다는 보고가 없었다는 것이다. 곽 대표는 몽골로 돌아간 효성 1·2·3호가 성체가 되면서 현지의 먹이 경쟁에서 살아남았기 때문으로 여겼다.

효성그룹 임직원 20여 명도 이날 행사에 힘을 보탰다. 효성은 세계습지의 날을 앞두고 매년 열리는 '화포천 습지 독수리 친구되기 생태축제'도 후원하고 있다. 행사에 참석한 이들은 독수리 구호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 카메라와 망원경 등으로 탐조(探鳥)하는 재미도 맛보고 있다. 온순한 벌처가 덩치가 작은 철새의 눈치를 보다 피하는 경우도 볼 수 있다고 한다.

"생물다양성이 보전되는 환경이 곧 기업 활동의 토대이자 지속 가능한 발전의 목표"라는 게 이 같은 효성그룹의 ESG 경영철학이다. 이를 지속가능한 가치 창출로 이어가 인류의 풍요로운 삶에 이바지한다는 구상이다.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은 "지속가능경영이 조직 문화의 뿌리가 되도록 전 임직원을 대상으로 ESG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며 "차별화된 기술과 제품 개발을 위한 그룹 차원의 대대적인 노력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할 것"이라고 말했다.


효성 기업 이미지(CI). 효성그룹 제공

효성 기업 이미지(CI). 효성그룹 제공


김청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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