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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 4류도 아닌 5류”

입력
2025.02.19 04: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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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고환율·내수침체 '3중고'
정도만 다를 뿐, 예견됐던 일
후진적 정치권력이 경제 망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월 초 자동차 관세 도입을 예고한 가운데 17일 경기 평택항에 수출용 차량들이 세워져 있다.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월 초 자동차 관세 도입을 예고한 가운데 17일 경기 평택항에 수출용 차량들이 세워져 있다. 뉴시스

"그 흔한 국정과제조차 기억이 없네요. 3년간 반국가세력만 외친 것뿐이죠. 후진적 정치권력이 경제를 망친 대표 사례로 기록될 것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발 ‘퍼펙트 스톰’이 우리 경제에 몰아치는 상황에서 만난 대기업 임원의 말이다. 기업은 사면초가 상황에 내몰리는데, 정치권은 그간 산업과 경제를 위해 뭘 했느냐는 반문도 담았다. 실제 미국은 우리 주요 수출품인 철강을 넘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무관세 대상이던 자동차에도 관세를 물릴 태세다. 심지어 불평등 무역과 무관한 부가가치세 등을 언급하며 ‘비관세적 무역 장벽’을 이유로 상호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거의 모든 대미 수출품에 관세를 물리겠다는 선전포고다.

기업들은 비상이 걸렸다. 무엇보다 관세는 뼈아프다. 앞으로 국내외에서 생산돼 미국으로 수출되는 우리 상품은 가격 경쟁력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그간 많은 기업은 임금과 물류비 절감을 위해 아시아, 중남미에 생산 기지를 마련해왔다. 이곳에서 생산한 상품 상당수가 미국으로 수출됐는데, 앞으로는 미국으로 수출돼도 재고로 쌓일 가능성이 커졌다. 미국은 중국산 제품에 대한 10%포인트 추가 보편관세를 이달 4일 공식 발효했다. 우리 기업이 중국에서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하는 품목도 포함된다. 지난해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미국의 관세 부과로 중국의 대미 수출이 10% 줄어들면 한국 국내총생산(GDP)이 약 0.31% 감소한다”고 예고한 배경 중 하나다. 다른 지역 생산품도 같은 운명에 놓였다.

고환율도 기업을 옥죈다. 원재료 수입 가격이 뛰는 것은 일차적이다. 전 세계적 강달러가 더 매섭다. 미국 수출이 막힌 상품을 다른 지역에서 팔아야 하는데, 해당국 화폐 절하(달러 강세)는 ‘관세’ 효과를 낸다. 예컨대 멕시코에서 생산한 상품을 현지에서 판다고 할 때, 페소화 가치가 떨어져 제값을 받지 못하는 식이다. 6개월 전 1달러당 18.6페소였던 환율은 현재 20페소를 웃돈다. 우리 상품의 현지 판매가를 유지하면 페소화 절하만큼(약 9%) 손실이 발생하고, 반대로 그만큼 올려 판다면 경쟁력을 잃는다.

국내 시장으로 눈을 돌려도 역대 최악의 내수침체에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작년 소매판매는 전년 대비 2.2% 하락, 카드 사태가 발생했던 2003년(-3.2%) 이후 가장 크게 줄었다. 2022년부터 3년 연속 감소한 것도 관련 조사를 시작한 1995년 이후 처음이다. 보수적으로 경제를 평가하는 정부도 최근(경제동향 2월호) "내수 회복이 지연되고 있다"고 인정할 정도다.

정도만 다를 뿐, 모두 예견됐던 일들이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지난해 11월 초부터 ‘미국 우선주의’에 대한 우려와 걱정은 수없이 제기됐다. 원·달러 환율도 그 즈음 1,400원 대를 넘나들기 시작했다. 준비하고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때에 대통령은 느닷없이 불법계엄을 선포했고, 조속한 사태 해결에 책임이 막중한 정부와 여당은 불확실성을 연장하고 있다. 그사이 올해 성장률 전망(한국은행)은 1.6~1.7%로 고꾸라졌다.

"기업들은 어떻게든 1류가 되고 2류라도 유지하려 노력하는데, 3김 시대 청산을 외치던 정치권은 외려 (이건희 회장이) 4류라던 그때보다 못한 5류 아닌가 싶습니다.” 그의 한숨 섞인 일갈에 공감한다.

이대혁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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