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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등장으로 시동 건 '망 이용대가 의무화' 논의, 트럼프에 막히나

입력
2025.02.26 04:3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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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 공정기여' 주장한 카, FCC 위원장 왔지만
트럼프, EU 겨냥해 "해외 불공정 IT 규제 막아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1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의 임명장에 서명하고 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통상 분쟁에 대비해 해외의 '불공정 규제'를 조사하라는 행정 명령을 발표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1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의 임명장에 서명하고 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통상 분쟁에 대비해 해외의 '불공정 규제'를 조사하라는 행정 명령을 발표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등장으로 다시 고개를 들었던 거대 기술기업(빅 테크)의 통신망을 겨냥한 '공정기여' 주장미국과 유럽연합(EU)의 첨예한 갈등 속에 다시 수그러들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빅 테크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트럼프 정부가 연방통신위원회(FCC) 위원장에 대표적 규제론자를 앉히면서 업계 일부에서 빅 테크에 철퇴를 내리칠 것이라는 기대감을 드러냈지만 미국과 EU 사이에 통상 이슈로 마찰이 생기면서 정책 노선 방향이 오히려 반대로 흘러간 탓이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해외의 불공정 세금과 규제로부터 미국 기업과 혁신가를 보호하겠다"면서 해외의 디지털 서비스 분야 규제를 문제 삼겠다는 행정 명령을 발표했다. 구체적으로는 디지털 서비스세와 함께 국경 간 데이터 제한, 망 사용료 부과, 수수료 등을 꺼냈다. 이에 따라 미국무역대표부(USTR)가 망 이용대가 논의를 포함해 국내의 정보기술(IT) 플랫폼 규제 논의를 '비관세장벽'으로 삼고 광범위하게 들여다볼 가능성이 생겼다.



FCC 위원장은 "빅 테크 무임승차 끝내자"... 트럼프 정부는 '통상 공세'

브렌던 카 미국 연방통신위원회 위원이 2020년 국회 청문회에서 증언하는 모습. 카 위원은 2024년 11월 연방통신위원회 위원장으로 지명됐으며 이미 청문 과정을 거쳤기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곧바로 FCC 수장이 됐다.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브렌던 카 미국 연방통신위원회 위원이 2020년 국회 청문회에서 증언하는 모습. 카 위원은 2024년 11월 연방통신위원회 위원장으로 지명됐으며 이미 청문 과정을 거쳤기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곧바로 FCC 수장이 됐다.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는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통신업계의 기대와 엇갈린 흐름이다. 당초 통신업계에선 '빅 테크 규제론자'로 여겨지는 브렌던 카가 FCC 위원장으로 임명되면서 미국 내에서도 인터넷서비스제공자(ISP) 입장에서 '망 이용대가'를 내게 하는 규제가 나올 것이란 기대가 나왔다. 카 위원장은 2021년 뉴스위크 기고를 통해 "빅 테크의 무임승차를 끝내고 공정한 몫을 내게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빅 테크가 망 사용료 부과에 맞서면서 근거로 사용해 온 '망 중립성' 개념을 없애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것도 기대감을 키웠다.

그런데 집권 후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노선이 빅 테크 규제에서 자국 기업 보호로 돌아서는 조짐이 뚜렷해지고 있다. 빅 테크의 통신망 공정 분담을 주장해 온 유럽연합(EU)의 규제가 미국 정부의 첫 번째 표적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EU의 집행위원회가 입법을 추진 중인 디지털네트워크법(DNA)은 사업자 간 망 이용대가 협상에 분쟁 해결 메커니즘을 끼워넣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 명령은 이런 움직임을 겨냥해 자국 기업을 지지하고 새 무역협정의 지렛대로 삼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USTR 활동 우려 속 통신업계, 카의 MWC 발언에 주목

마리오 드라기(왼쪽)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와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이 2024년 9월 '드라기 보고서'로 불리는 '유럽 경쟁력의 미래' 보고서를 들고 있다. 이 보고서 내엔 대형 IT 기업이 통신사와 인프라 비용 분담에 관한 협상을 진행하고, 실패할 경우 중재를 거치도록 권장하는 내용이 담겼다.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마리오 드라기(왼쪽)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와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이 2024년 9월 '드라기 보고서'로 불리는 '유럽 경쟁력의 미래' 보고서를 들고 있다. 이 보고서 내엔 대형 IT 기업이 통신사와 인프라 비용 분담에 관한 협상을 진행하고, 실패할 경우 중재를 거치도록 권장하는 내용이 담겼다.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당장은 미국과 EU가 대결하고 있지만 한국으로 불똥이 튈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 정부 이전에도 USTR은 한국의 망 사용료 의무화 입법 논의를 구글과 메타, 넷플릭스 등 자국 기업을 공격하려는 입법으로 짚고 수시로 반대 입장을 전해 왔다. 국회에서 통신업계의 요청으로 '망 무임승차 방지' 취지의 법안을 여러 차례 다뤘는데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한 이유 중 하나다. 현재는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 간 갈등이 끝난 상태에서 구글, 즉 유튜브를 협상 테이블에 앉히는 게 과제지만 통신사들은 협상력이 충분하지 않다며 어려움을 호소한다.

업계는 3월 3일(현지시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25에서 연단에 설 카 위원장의 '입'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날 카 위원장은 헨나 비르쿠넨 EU 집행위원회 기술주권·안보·민주주의 수석부위원장과 나란히 참석해 '규제와 혁신의 균형'을 주제로 한 통신 정책 관련 발표를 할 예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카 위원장이 빅 테크의 무임승차를 지적하겠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고 본다"면서도 "미국 국내와 해외 정책 노선을 다르게 가져갈 가능성도 있다"고 짚었다.

인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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