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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내 지켜낸 꽃, 봄을 선물하는 사람들

입력
2025.03.02 12:00

부천시 단장할 봄맞이 꽃 기른 '여월 꽃 양묘장'
폭설 속 피어난 23만 송이... "시민들에게 기쁨 주길"

경기 부천시 여월 꽃 양묘장에서 박주원 실무관(53)이 크리산세멈을 들어 보이고 있다. 작지만 추위에 강한 크리산세멈은 박 실무관이 가장 좋아하는 꽃이다. 부천=강예진 기자

경기 부천시 여월 꽃 양묘장에서 박주원 실무관(53)이 크리산세멈을 들어 보이고 있다. 작지만 추위에 강한 크리산세멈은 박 실무관이 가장 좋아하는 꽃이다. 부천=강예진 기자


한 송이의 꽃만 펴도 봄이 온 줄을 안다. 지난달 24일 경기 부천시 여월 꽃 양묘장엔 다가오는 봄 도심을 수놓을 꽃들이 가득했다. 3명의 실무관이 겨우내 길러낸 23만 송이다.

여월 꽃 양묘장은 3월 출하를 목표로 지난해 10월 꽃 모종을 심은 후 5개월간 가꿨다. 비올라부터 오스테오스펄멈, 크리산세멈, 데이지, 팬지까지 다섯 종이 이곳에 뿌리내렸다. 모두 겨울 추위에 강하고, 야생에서도 오래 견딜 수 있는 품종이다. 특히 올해 처음 심은 크리산세멈은 아담하고 화려해 봄을 닮았다. 오는 5일 출하되는 꽃은 부천의 관공서, 도로, 학교의 화단을 단장한다.


여월 양묘장에서 기른 비올라(왼쪽부터), 오스테오스펄멈, 크리산세멈, 데이지, 팬지. 오스테오스펄멈은 본격적인 개화 전으로 꽃망울만 맺혀 있다.

여월 양묘장에서 기른 비올라(왼쪽부터), 오스테오스펄멈, 크리산세멈, 데이지, 팬지. 오스테오스펄멈은 본격적인 개화 전으로 꽃망울만 맺혀 있다.



오후 4시, 천장의 차광막이 덮이며 꽃밭에 그늘이 지고 있다. 추운 겨울엔 차광막 아래 이중 비닐막도 함께 덮어 보온성을 높인다.

오후 4시, 천장의 차광막이 덮이며 꽃밭에 그늘이 지고 있다. 추운 겨울엔 차광막 아래 이중 비닐막도 함께 덮어 보온성을 높인다.


크리산세멈밭 안에 온도계가 꽂혀 있다. 출하 시점인 3월에 개화하도록 기르는 게 실무관들의 첫 번째 목표다.

크리산세멈밭 안에 온도계가 꽂혀 있다. 출하 시점인 3월에 개화하도록 기르는 게 실무관들의 첫 번째 목표다.


건강한 꽃을 기르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적절한 온도. 비닐하우스 안은 10~15도를 유지해야 한다. 실무관들은 하루에도 10번 이상 실내 온도를 확인한다. 특히 냉·난방시설이 없는 여월 양묘장은 오롯이 태양열로 온도를 조절한다. 해가 넘어가는 오후 4시엔 비닐하우스 천장을 차광막으로 덮는다. 낮 동안 받은 열기를 밤새 가둬 놓기 위해서다. 매주 월요일이면 일주일 날씨를 확인하는 게 습관이 됐다는 송은숙 실무관(56)은 “비닐하우스 안에서도 구역마다 온도가 달라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풍향 관리도 소홀할 수 없다. 겨울의 차갑고 거센 북서풍을 맞은 꽃들은 냉해를 입기 쉽다. 바람의 세기를 수시로 확인하고, 찬 공기를 바깥으로 빼내는 순환기를 작동시키는 이유다. 주 1~2회 물을 줘 적절한 습도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뿌리가 빨아들일 흙 속 수분이 부족하면 성장이 어렵고, 지나치면 병해충이 생긴다.


송 실무관이 데이지에 물을 주고 있다. 꽃 종마다 필요한 수분량이 달라 작업 시간에 차이를 둬야 한다. 송 실무관은 “꽃마다 ‘초 단위’로 따진다”며 웃었다.

송 실무관이 데이지에 물을 주고 있다. 꽃 종마다 필요한 수분량이 달라 작업 시간에 차이를 둬야 한다. 송 실무관은 “꽃마다 ‘초 단위’로 따진다”며 웃었다.


박 실무관이 데이지를 살펴보고 있다. 부천시 곳곳 화단에 심어질 꽃들은 4월까지 약 두 달간 볼 수 있다.

박 실무관이 데이지를 살펴보고 있다. 부천시 곳곳 화단에 심어질 꽃들은 4월까지 약 두 달간 볼 수 있다.


송 실무관이 관수(꽃밭에 물을 대는 작업) 후 데이지를 쓰다듬고 있다.

송 실무관이 관수(꽃밭에 물을 대는 작업) 후 데이지를 쓰다듬고 있다.


이번 겨울은 유난했다. 하루 새 10도 안팎을 오가는 기온 변화로 온도 조절을 위해 창문을 여닫는 횟수가 예년보다 3배는 잦았다. 지난겨울 기록적인 폭설엔 비닐하우스에 수북이 쌓인 눈이 녹길 기다리며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 눈이 햇빛을 차단해 실내 온도가 급격히 떨어졌는데 안전사고 위험이 있어 무작정 비닐하우스 위로 올라가 눈을 치울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시련을 딛고 꽃들은 피어났다. 실무관들의 정성 덕에 작년 10월에 심은 23만 본 모종 전부 출하될 예정이다. 딸을 시집보내는 것 같다는 송 실무관은 “물 줄 때마다 꽃에게 말해요. 예쁘게 잘 먹고 나가서 아름다움을 뽐내라~”고 했다.


시민들이 팬지밭에서 맨발 걷기를 하고 있다. 부천에 거주하는 조경아(59)씨는 “하루 중 양묘장 오는 시간이 제일 기다려진다”며 “꽃을 아름답게 가꿔준 실무관들에게 고맙다”고 했다.

시민들이 팬지밭에서 맨발 걷기를 하고 있다. 부천에 거주하는 조경아(59)씨는 “하루 중 양묘장 오는 시간이 제일 기다려진다”며 “꽃을 아름답게 가꿔준 실무관들에게 고맙다”고 했다.

한편, 부천시는 이번 겨울 동안 여월 양묘장을 실내 맨발 걷기 코스로 국민들에게 무료 개방했다. 꽃의 성장 과정을 혼자 보는 게 아쉬웠다는 박주원 실무관(53)은 “꽃을 구경하며 행복해하는 시민들을 보며 뿌듯했다”고 했다. 출하로 인해 1일 종료된 맨발 걷기 코스는 내년 봄꽃 재배 시기에 맞춰 올해 12월쯤 개장될 예정이다.

삽으로 흙을 떠내느라, 관수 작업 시 수압을 견디느라 어깨와 무릎 안 아픈 곳이 없다는 송 실무관은 모자 속 땀을 닦아내며 말했다. “고되지만 꽃을 보면서 행복해하는 시민들을 상상하면 책임감이 생겨요.”


송 실무관이 양묘장에서 비올라의 병충해 유무를 살피고 있다.

송 실무관이 양묘장에서 비올라의 병충해 유무를 살피고 있다.


글·사진 강예진 기자 ywh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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