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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로 몰려간 극우 유튜버, 폭력 사태 방관하는 경찰

입력
2025.03.05 04: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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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 유튜버들의 학내 난동 잇따라
“학내 진입은 신중”… 뒷짐 진 경찰
강력한 폭력 방지?대응 조치 나서야

극우 성향의 한 유튜버가 지난달 26일 서울 이화여대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찬성 집회 참가자의 피켓을 빼앗아 찢고 있다. 신남성연대 유튜브 캡처

극우 성향의 한 유튜버가 지난달 26일 서울 이화여대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찬성 집회 참가자의 피켓을 빼앗아 찢고 있다. 신남성연대 유튜브 캡처


극우 성향의 한 유튜버가 지난달 26일 서울 이화여대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찬성 집회 참가자의 피켓을 빼앗아 씹어 먹는 시늉을 하고 있다. 신남성연대 유튜브 캡처

극우 성향의 한 유튜버가 지난달 26일 서울 이화여대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찬성 집회 참가자의 피켓을 빼앗아 씹어 먹는 시늉을 하고 있다. 신남성연대 유튜브 캡처

“재수 없어 이 X아, 꺼져!” 지난달 26일 이화여대 캠퍼스에 난입한 극우 유튜버들은 “나가라”고 외치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 찬성 집회 참가자들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이들은 ‘탄핵 찬성’ 손 팻말을 빼앗아 씹어 먹는 기행을 벌이는가 하면, 촬영을 제지하는 여학생의 멱살까지 잡았다. 결국 몸싸움이 일어나고 부상자가 발생했지만 상황은 통제되지 않았다. 주변에서 지켜보던 지구대 경찰관 한 명이 현수막을 붙잡고 드러누운 유튜버들을 설득해 일으켜 세웠을 뿐. 학생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할 대학은 그렇게 무법천지로 변했다. 극우 유튜버들은 이날 촬영한 영상을 올리면서 폭력 사태에 울부짖는 학생을 ‘익룡좌’라 조롱했고 “빨리 만 원씩 보내주세요, 빨리. 피디 가방 뜯어졌어요”라며 후원금 재촉도 잊지 않았다.

이날의 난동은 예고돼 있었다. 최근 대통령 탄핵 찬반 집회가 대학가로 번지면서 극우 유튜버들은 쇼핑하듯 이 대학 저 대학 몰려다니며 충돌을 빚어 왔다. 민주화 운동의 상징을 들쑤셔 이슈 몰이를 하고 동조 세력을 결집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미 서울대와 고려대에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난입한 터라 이화여대에서도 소동이 예상됐지만 학교 측은 경찰에 사전 협조를 구하지 않았다. 경비 직원들만 지키던 정문 통제선을 극우 시위대가 순식간에 밀고 들어간 뒤에도 경찰은 교문 밖에 머물렀다.

3일 서울 동작구 중앙대학교 정문에서 탄핵 반대 집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3일 서울 동작구 중앙대학교 정문에서 탄핵 반대 집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1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에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 참가자들이 갈등을 빚고 있다. 뉴스1

지난달 21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에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 참가자들이 갈등을 빚고 있다. 뉴스1


경찰은 학내 진입에 신중한 입장이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 이후 경찰의 대학 내 진입은 금기시돼 왔다. 당시 경찰은 이른바 ‘백골단’을 앞세워 학내로 난입했고 곤봉과 최루탄으로 시위대를 폭력 진압했다. 체포한 학생들을 폭행, 협박, 회유한 것도 모자라 끔찍한 고문을 가한 것도 경찰이었다. 민주화 과정에서 자행한 반민주적 행태가 경찰 스스로를 금기에 가둔 셈인데, 이를 핑계로 학내 폭력 사태를 방관하는 동안 또다시 학생들이 피해를 입고 있는 상황이 기막히다.

경찰의 ‘신중 모드’ 속에서 서울대 등 일부 대학은 학내 집회에 다수 외부인이 참여해 충돌과 혼란을 빚을 경우 경찰에 해산을 요청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학생들 사이에서 극우 세력에 의한 폭력 사태를 경찰이 적극적으로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교수 단체들도 학내에서 모욕과 폭력을 행사하는 범법자들에 대한 사법당국의 조치를 촉구하고 나섰다. 다만, 경찰의 학내 진입이 용인되고 관행화할 경우 궁극적으로 학내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거나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아직은 크다.

1991년 6월 경찰 백골단이 서울 시내에서 열린 학생 집회를 진압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91년 6월 경찰 백골단이 서울 시내에서 열린 학생 집회를 진압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극우 시위대의 잇단 대학가 난동 사태는 단순히 금기를 깨는 차원을 넘어 경찰이 과연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대학과 그 구성원을 폭력과 선동, 모욕과 협박으로부터 보호할 의지가 있는지를 묻고 있다. 극우 유튜버들의 난동으로 불안에 떠는 학생들이야말로 불법 계엄이 불러온 국가 경제적 위기의 직접적인 피해 당사자이자, 할부로 청구될 계엄의 대가까지 두고두고 갚아야 할 억울한 세대다. 이들에게 평화로운 캠퍼스만이라도 보장해주는 것이 그나마 국가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역할 아닐까.

서부지법 난입 폭력 사태 당시 경찰의 미흡한 대처가 피해를 키웠음을 경찰도 인정한 바 있다. 경찰은 지금이라도 외부 선동 세력의 학내 출입 통제, 폭력 사태 방지 및 즉각적인 대응, 강력한 처벌에 주저 없이 나서야 한다.


박서강 기획영상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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