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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지는 대치동 엄마들을 조롱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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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언 이수지가 서울 강남 대치동 엄마를 패러디한 영상 '휴먼페이크다큐 자식이 좋다'의 한 장면. 유튜브 '핫이슈지' 캡처
코미디언 이수지가 서울 강남 대치동 엄마를 패러디한 영상이 연일 화제다. 영상에서 제이미(4)의 엄마는 명품을 입고 고가의 외제차로 아이를 학원에 태워다 준다. 아이가 과자 개수를 세자 영재라는 기대감에 들떠 곧장 수학 학원을 등록한다. 그런가 하면 아이의 배변 훈련에 문제가 있다는 원어민 강사 얘기에 절망하며 당장 배변 훈련 과외를 알아본다. 대치동 엄마들의 판박이 패러디에 대중의 공감과 조롱이 동시에 쏟아지면서 해당 영상 조회 수는 공개 한 달 만에 800만 회를 넘었다.
대치동 엄마는 어쩌다 조롱의 대상이 됐나. 이들조차 현실에 밀착한 패러디에 실소한다는 반응이 많다. 의대 광풍이 몰아친 지난해 대치동 엄마를 여럿 만난 적이 있다. 알고 보면 마냥 웃을 일이 아니다. 제이미맘은 네 살짜리 아들의 사소한 행동에도 ‘영재적인 모멘트’를 외치며 사교육을 시키지만, 현실의 대치동 엄마들은 ‘대입을 위한 모멘트’를 중시한다. “다른 아이들은 이미 1년 전부터 입학시험(레벨 테스트)을 준비한다는데, 저희 애만 안 시키면 들어갈 학원이 없어요.” 4세부터 의대반에 들어가기 위한 과외를 받아야 하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내 아이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지독한 경쟁에서 뒤처질까 두려운 부모의 불안으로 읽혔다.
제이미맘의 황당한 배변 훈련이나 제기차기 과외도 현실에선 우습지 않다. 리더십 훈련이나 줄넘기 교습은 대치동을 넘어 이미 전국 대표 사교육 중 하나다. 대치동 엄마들의 항변이 이어졌다. “학교 회장 경력이 입시에서 중요해지고, 줄넘기가 수행평가인 현실에서 공정한 경쟁이 이뤄진다고 생각하세요?” “타고난 재능으로 아이가 잘 크길 기도하는 건 복권을 사지도 않고 당첨을 바라는 것과 같아요.” “의대에 가기만 하면 평생 편안한 삶이 보장되는데 초등학교 때 시작하지 않으면 나중에 기회조차 없을 수도 있어요.” 어느 하나 그냥 웃어넘길 수 없는 얘기다. 대치동 엄마들이 아이의 성공을 위해 맹목적으로 사교육을 좇는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들은 불평등한 사회 구조가 낳은 기형적 교육 시스템을 누구보다 잘 간파한 입시 전문가다.
이수지의 패러디는 대치동 엄마들을 조롱하지 않는다. 이수지는 대치동 엄마로 대변되는 사교육 열풍과 열풍을 불러일으킨 불공정한 사회 구조를 영리하게 포착해 이를 풍자한다. 이수지의 패러디가 철저한 고증으로 인물보다 인물을 둘러싼 세계를 깊게 보여 준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여론은 엉뚱한 방향으로 흘렀다. 비슷한 시기 두 자녀의 강남 학원 라이딩 영상을 공개한 배우 한가인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대치동 엄마들은 조롱과 혐오에 못 이겨 입던 패딩을 내다 팔았다. 이수지가 벗기고 싶었던 건 대치동 엄마의 패딩이 아니다. 이수지는 사교육 광풍을 벗겨 내고 이면에 자리한 부조리한 한국 사회의 민낯을 드러내고자 했다. 지나친 경쟁사회의 아이들이 비인간적인 사교육 시장으로 내몰리고,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을 재빠르게 체득한 부모들이 이를 대물림하는 끔찍한 현실 말이다.
이수지가 직접 진화에 나섰다. 그는 5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영상에 대한 반응이) 내가 의도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부담감도 있고, 오해도 있어서 조금 아쉬웠다”고 밝혔다. 대치동 엄마가 아닌 이들을 키운 사회를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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