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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생' 트럼프가 던진 알래스카 방정식

입력
2025.03.12 04: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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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NG 가스관 참여 압박한 트럼프
경제성 없지만 관세 카드 가능
시간 끌며 통상 정책 주시해야

6년 전인 2019년 당시 알래스카를 안내하는 곰 사진. 알래스카=박상준 기자

6년 전인 2019년 당시 알래스카를 안내하는 곰 사진. 알래스카=박상준 기자


"LNG(액화천연가스)관도 빨리 놓이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돈이 많이 든다 하니 누가 선뜻 나설지 모르겠어요."

2019년 미국 알래스카 여행 중 만난 현지 가이드는 북쪽 끝에서 남쪽 끝으로 뻗어 있는 송유관을 가리키며 가스관 얘기를 꺼냈다. 1968년 최북단 푸르도 베이 지역에서 천연가스 광구를 찾은 뒤 지역 경제 발전을 위해 가스관을 간절히 바랐지만 50년 넘게 성과가 없어 안타깝다고 했다.

가스가 묻힌 곳은 툰드라1라 여기서 생산해도 실어 나를 수 없어 최남단 니키스키의 얼지 않은 항구까지 관을 통해 약 1,300㎞를 이동한 뒤 액체로 바꿔(액화) 배로 옮겨야 한다. 게다가 1년에 몇 달 정도 땅이 녹았을 때만 공사를 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초기 비용만 450억 달러(약 65조6,500억원) 이상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환경 보호 이슈에 초점을 맞춘 버락 오바마 행정부 등 민주당 정권에서는 대규모 자원 개발에 반대했다. 가이드는 그나마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됐으니 방법을 찾지 않겠느냐며 기대했다. 하지만 트럼프 1기 때는 성과가 없었다.

6년이 흐른 2025년 3월 4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두 번째 임기의 첫 번째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에서 "나의 행정부는 알래스카에서 세계 최대 규모 중 하나인 천연가스 파이프 라인을 건설하고 있다"며 "일본, 한국 그리고 다른 나라들이 수조 달러씩 투자하면서 우리의 파트너가 되기를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 정부나 기업이 투자를 약속했다고 알려진 건 없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달 워싱턴DC에 갔을 때 미국 측이 프로젝트 참여를 바랐고 실무협의체 구성에 합의했을 뿐이다.

트럼프는 취임과 함께 외친 '4대 미국 우선주의 정책 과제(America First Priorities)'의 하나로 에너지 자립을 꼽고 미국 내 자원 개발에 열을 올리면서 뜨거운 감자를 한국에 던졌다.

공을 넘겨받은 한국 정부나 기업들은 골머리를 앓고 있다. 무엇보다 돈 되는 사업이라 보기 어렵다. 2011년 영국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과 미국 코노코필립스, 2016년 미국 엑손모빌 등 세계적 기업도 손을 뗐다. 설사 사업에 뛰어 들어도 최소 7, 8년 동안 공사가 진행되고 그사이 LNG 가격이 하락할 수 있다는 점도 불안하다. 조선업계(쇄빙선)나 철강업계(강관)가 이득을 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지만 미국의 인력, 자재를 먼저 투입할 가능성이 높다는 예상도 있다. LNG 수입처를 늘려 수급 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도 먼 미래 이야기다.

그럼에도 트럼프가 쏟아붓는 관세 폭격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쓸 수 있는 협상 카드가 마땅치 않다 보니 알래스카 LNG 가스관이라도 써야 하는 상황이다. 국내 대기업들은 전임 조 바이든 정부 때 대규모 대미 투자 계획을 내놓아 당장은 또 다른 투자를 약속하기 쉽지 않다.

절대 서둘러서는 안 된다. 최근 트럼프의 통상 정책이 오락가락하다 보니 미국 내에서도 곳곳에서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취임 100일 즈음에서야 윤곽이 보일 것이라는 전문가들이 많다. 우리 정부나 기업들은 ①관심은 있다 ②하지만 너무 큰 사업이라 따져볼 게 많다 ③시간을 더 달라며 버텨야 한다. 시간 끌기, 못 본 척하기, 딴청 피우기도 써야 한다. 우리의 상대는 트럼프이기 때문이다.

1 툰드라
선류 이끼, 지의류 식물, 작은 초본류 식물, 키 작은 관목 등의 식물이 자라는 맨땅이나 바위 지대
박상준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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