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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벽에 부딪힌 남녀의 사랑 노래... 뮤지컬로 돌아온 '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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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칼럼니스트인 박병성이 한국일보 객원기자로 뮤지컬 등 공연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격주로 연재합니다.
뮤지컬 '원스'. 신시컴퍼니 제공
2007년 아일랜드 영화 '원스'가 개봉했을 때 이 영화를 뮤지컬 영화로 볼 수 있을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형식적으로는 싱어송라이터인 주인공이 버스킹이나 녹음, 공연의 방식으로 노래를 들려주는 음악영화. 하지만 전개 방식은 정확히 뮤지컬 문법을 따른다. 각 노래는 극적 상황에서 인물의 심정을 대변하며 드라마를 이끌어 간다. 뮤지컬 DNA를 가진 영화 '원스'는 5년 만에 뮤지컬로 제작됐고 그해 토니상 주요 부문을 휩쓸었다.
뮤지컬 '원스'는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프리쇼'를 펼쳐 보인다. '원스'는 아일랜드 펍이 배경인 원세트 무대로 진행된다. 무대 위로 관객들을 초대해 기타와 벤조, 만돌린, 바이올린 등이 어우러진 흥겨운 아이리시 포크송을 들려준다. 아일랜드 민속음악을 현대화한 아이리시 포크송은 흥겨운 리듬 속에서도 스산함 같은 아일랜드의 고단한 역사의 흔적이 느껴진다. 아일랜드 노래의 과장된 유쾌함에는 오랜 피지배국으로서의 설움과 아픔을 견뎌내려는 끈질긴 생명력이 담겨 있다. 뮤지컬 '원스'는 아이리시 포크송 같은 작품이다.
뮤지컬 '원스'. 신시컴퍼니 제공
본격적인 극이 시작하면 남자 주인공 '가이'가 '리브(Leave)'를 버스킹하고 있고 그 앞에 여자 주인공 '걸'이 유심히 듣고 있다. 체코 출신의 여자는 처음 본 남자에게 진공청소기 수리를 부탁하고, 악기점 피아노로 연주를 들려주며 그가 작곡 중인 노래를 함께 부른다. 그리고 수리점인 그의 집까지 방문해 그의 아버지와 친해지고 그의 노래를 감상하고 방까지 구경하기에 이른다. 깊은 절망에 빠져 있던 남자는 자신의 노래를 믿고 가능성을 말해준 여자를 통해 불과 몇 시간 만에 희망을 품게 된다. 이 어수선한 분주함을 만들어낸 건 여자가 남자의 노래 속에서 기타와 노래, 자신마저 버리려 하는 남자의 절망을 보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여자의 마음과 닮아 있어 눈에 띄었던 절망을.
여자는 남자의 노래가 진심으로 좋았다. 여자는 남자에게 노래를 완성해 헤어진 연인이 있는 뉴욕으로 가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타고난 긍정성과 추진력으로 그의 노래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돌진한다. 전자기기 수리점 2층에 멈춰 버린 남자가 더 넓은 곳에서 아티스트로 자유롭게 노래할 수 있도록 그를 움직이게 한다. 그러나 정작 여자 자신은 어린 딸과 나이 든 엄마를 부양해야 해서, 믿을 수 없는 남편이 다시 잘해보자는 말을 부질없이 믿으며 꿈과 사랑을 향해 나아가는 마음을 멈춰 세운다.
남자의 음악 작업은 여자의 친화력과 추진력으로 고비를 넘겨 순조롭게 진행된다. 남자의 음악이 완성되어 갈수록 그를 보내야 하는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여자는 안다. 여자는 남자의 적극적인 사랑 고백을 모르는 척 외면하다가 그와 소통되지 않는 체코어로 마음을 고백하고, 울음 같은 노래로(넘버 '더 힐') 남몰래 슬픔을 토해낸다. 멈춰 있던 남자를 날아가게 해 준 건 여자지만, 남자의 도약은 여자에겐 또 다른 절망이 된다. 여자도 함께 날아가고 싶지만 현실이 발목을 잡아 남자에게 달려가는 마음을 애써 주저앉힌다.
뮤지컬 '원스'. 신시컴퍼니 제공
뮤지컬 '원스'는 남자와 여자의 사랑 이야기를 낮은 소리로 매우 섬세하고 안타깝게 그려내는 작품이다. 여자의 선택이 안타깝지만 대책 없는 사랑보다는 가족에게 책임을 다하는 선택이 성숙하게 느껴진다. 관계가 깊어짐에 따른 두 사람의 심정 변화는 싱어송라이터 남자의 노래를 통해 전달된다. 남자는 첫 장면 버스킹 곡 '리브'에서는 떠난 연인에 절망하지만 1막 마지막에 펍에서 부르는 '골드'는 새롭게 찾은 소중한 사랑을 노래한다. 1막 악기점에서 부른 남자가 작곡 중이던 노래 '폴링 슬로울리'는 떠나간 연인을 향한 노래였지만, 2막 남자가 떠나면서 선물한 피아노를 연주하며 듀엣으로 부를 때는 여자를 향한 노래로 변한다. 극 중 싱어송라이터가 작곡한 노래가 인물의 감정을 이끌며 극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남자와 여자의 사랑이 현실의 벽에 부딪혀 결국 이루어지지 못하는 서글픈 내용을 담고 있지만, 내내 씩씩하고 당당했던 여자처럼 작품은 시종 유쾌한 톤으로 진행된다. 체코 사람들의 언어를 표현한 어색한 말투와 펍 사장이나 체코 동료들의 코믹한 성격이 극을 유쾌한 분위기로 이끈다. 무엇보다도 배우들이 직접 연주하는 '액터뮤지션' 방식의 신나는 아일랜드 음악이 극의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데 일조한다. 흥겨운 아일랜드 음악 속에 성숙한 이별을 보여주는 '원스'는 5월 31일까지 코엑스 신한카드아티움에서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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